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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1. 2018

배와 배 사이로 침로 긋게 되는 이유

좁은 수로에서 항해할 때는


하루의 아침은 햇님의 출현으로 인해 밝아오면서 시작 된다

    

            

 어슴푸레 한 여명이 다가올 시간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어둠의 지배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 새벽이다. 음력 18일의 달빛을 차단하고 나선 구름이 하늘 가득하니 모여들면서 여명 또 한 싸잡아 붙잡힌 채 초조히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하여 어둠은 발버둥 치듯이 귀밑을 지나는 바람 소리 끝에 매달려 가며 숨 가쁜 휘파람 소리 내며 물러서기 시작한다.

             

 남쪽 나라(남반구)로 들어선 후부터 계절은 북반구와는 대조되는 겨울철로 되면서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날이 쇠었을 시간이건만 아직도 그냥 머무르고 있는 어둠을 위해 구름까지 돕고 나선 형국의 남쪽 바다의 새벽이다.    

             

 그렇게 눈에 익지 않은 어둠을 억지로 헤치며 브리지 바깥 윙 브리지를 도는 운동을 시작한다. 주말이라 그랬을까?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기가 싫어 비몽사몽 간을 헤매다가 겨우 털고 일어나 브리지로 올라온 새벽시간인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꺼내 들며 우선 어둠 익히기를 위해 발 밑에 있을지 모를 걸리 적 거리는 방해물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새벽 운동을 위해 갑판상을 돌기 시작한다.                


 오늘은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날로 정해 놓고 있었기에, 머릿속으로는 그 기도문을 외우며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고통의 신비 5단을 다 바쳐 갈 무렵, 머리를 들어 눈길을 선수 쪽으로 향한다. 사라져 버린 줄도 모르게 어둠은 어느새 물러나 있고 수평선마저 흐릿하니 떠 오르고 있다.


 한데 검게 보이는 커다란 배의 실루엣이 오른쪽 선수에서 느닷없이 눈에 들어서고 있다. 순간적으로, 충돌? 하는 의구심으로 인해 가슴이 철렁 하니 내려앉는다. 

    

 -아니야 그럴 리 없는 거야!

 도리질 치는 마음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세히 살피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다.                

 자세히 살피면서 안전하게 지나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며 뛰든 가슴이 안정되었기에, 기도문도 다시 이어가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옆을 지나칠 때 세어 본 그 배의 해치(선창 개구부) 수는 우리와 같은 아홉 개이니 크기가 비슷한 케이프 사이즈의 배다. 호주에서 석탄을 잔뜩 싣고 올라가는 배로서 굴뚝에 그려진 회사 마크의 모양을 봐서는 우리나라 국적선은 아니다.    

             

 여러 가지의 부착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배위 갑판에서 걷는 운동을 계속하는 동안의 눈길은 거의 발 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렇기에 새벽녘 운동 중에는 의식적으로 한 번씩 힐끔거리는 눈길을 돌려 바깥쪽 수평선을 보게 되는데, 오늘은 그런 상황이 좀 늦어져서 너무나 가까이 접근했을 때 발견하게 되어 놀랐던 것이다.  

              

 다시 옮겨준 발걸음이 어느새 배를 반 바퀴 돌아 왼쪽으로 들어서면서, 이번 역시 선수 쪽을 보다가 다른 배의 시커먼 그림자를 한번 더 만난다.     

꼭 같은 놀람을 되풀이하면서 확인하는데 이번 배도 짐을 잔뜩 실은 BULKER(살물선)이다.     

            

 그 배 역시 왼쪽을 안전하게 지나치게 되었을 때 모습을 헤아리니 해치가 일곱 개다. 파나막스 형 배다. (PANAMAX, 5~6만 톤 정도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배로서 파나마 운하를 지나다닐 수 있는 배들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배를 이르는 말.)  

           

 이 새벽 우리 배는 그렇게 두 척의 만선 하고 북상하던 배들의 침로 한가운데를 용감하게 가르며 접근하여 남하한 셈인데, 두 척 모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본 게 아니라 아주 가깝게 다가 온 연후에 알아보게 되어 놀란 가슴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항해 당직 중이던 일항사는 레이더로 이미 그 배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고, 그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다 갖추고 항해를 한 셈이라 큰 걱정을 할 필요야 없는 일이었다.     


 내가 놀란 마음으로 브리지 안에 있는 일항사의 모습을 살펴보았을 때, 그는 이미 쌍안경을 들고 있었고 상대선의 방위도 살피며 이미 대처를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항해당직자의 입장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마주치게 되는 선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 단 이야기도 되는 것인데, 이는 한눈팔고 있는 사이에도 배와 배는 계속 서로 가까워지는 거고 이때 혹시라도 양쪽 배의 당직자가 모두 상대선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도 끔찍한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조용하지만 분주한(?) 새벽을 보내고 있는 여기는 솔로몬 해 한가운데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에서 호주를 가려면 필연적으로 지나다녀야 하는 항로선을 그어 주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필연적인 많은 배의 통항으로 인해 서로의 침로가 가까워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기도 하다. 당직 중 한눈을 팔거나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다 가는 의외의 큰 사고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그 넓은 바다 위에서 왜 배들은 서로 충돌을 하는 걸까? 이상한 눈길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의문이 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들의 목적항과 출항항을 잇는 뱃길의 결정은, 수심이 안전하고 거리가 최단인 곳을 선호하게 되어 있으니, 같은 해역을 항해하는 모든 배들의 침로는 좁은 곳에선 비슷하게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좁은 길목은 같은 시기에 여러 척의 배가 몰리는 병목현상이 잦은 곳인 그만큼 서로가 충돌할 수 있는 만남이 많아지는 것이고, 거기에다 당직자들이 제대로 당직을 서지 않는 등한한 상황이라도 더해지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는 거다.


 그러므로 좁은 수로에선, 선장이 꼭 조선에 책임을 지도록 선교에 위치하여야 하는 의무를 강제 당하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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