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에 방지한 화재사고

동승한 가족의 도움으로 큰 사고를 막다

by 전희태
첫디카사진.jpg 디카로는 난생 처음 처음 찍혀 본 사진. (홍콩선적 해난선박의 선원들을 구조해주고 찍은 사진)

이번 항차 두 사람의 가족이 동승을 했다. 그중 통신장 부인은 신경이 날카롭고 꼼꼼해 보이는 성격의 꼬장꼬장한 중년의 아주머니이다. 그렇게 보아준 첫인상대로 다른 사람이면 무심히 넘겼을 일을 잘도 챙겨주어 우리 배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어제 오후 늦게 저녁 식사의 뒤치다꺼리도 다 끝난 주방에서 행주수건이 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일을 냄새 하나로 두 층이나 더 올라가 있는 자신(남편)의 처소에서 알아내어 어쩌면 큰 재난으로 변할 수도 있는 화재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주방 근무자들이 쓰고 난 행주를 삶은 세탁으로 빨아 낸 후, 전기 히터 위 공간에다 줄을 걸어서 급속으로 건조시키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고 깜박 잊어버리고 있던 사이, 그 행주들은 강제 순환으로 들어오던 에어컨디셔너의 바람에 휘둘림을 당하게 되었다. 처음 젖어 있던 때에는 그런대로 자신의 무게로 덜 흔들리던 행주가 점점 말라가면서 가벼워지니 휘날리는 동작이 커졌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직 식지 않은 달구어진 상태의 열판 위로 떨어진 행주가 타기 시작하였고, 발생하는 연기는 배기가스 배출구를 통해 선외로 빠져나가던 중 일부가 그 층쯤에서 살짝 빠져나온 냄새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의 옅은 연기였지만 그녀는 탄 냄새를 알아내어 남편(통신장)으로 하여금 선내를 살피어 연기 나는 곳을 찾아내도록 귀띔을 해준 것이다.


냄새나는 곳을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통신장의 발걸음이 주방에 도착할 무렵 히터위에서는 연기 발생 과정은 끝나고, 금방 불길이 확 붙어 타오르기 시작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통신장이 얼른 소화기를 들어 평소 훈련으로 익숙한 초기진화부터 실시하여 불을 끄게 되니, 큰 화재로 발전할 수 있던 위급한 상황을 막아 준 셈이다. 하기야 조금 더 심하게 연기가 났더라면 매연 화재탐지기가 감지하여 경보를 울렸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계의 힘에 앞서 그 미세한 냄새를 무심히 넘기지 않은 그들 부부 두 사람의 행동으로 초기에 큰 사고가 미연으로 방지된 것이다.


화재 탐지기의 성능을 넘어서서, 초기 화재 소화 작업까지 멋지게 실행한 것을 보며, 어제의 일에 더불어 오늘을 '통신장 부부'의 날들로 선언해도 좋을 듯 싶어진다.


어제는 며칠 전 갑판상 통풍구 임시철거 작업 중에 안전사고로 인해 손가락 끝이 절상된 외상 환자의 용태가 악화되어 상처부위를 꼭 꿰매주어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수술 바늘 재고가 제대로 없는 형편에서 일반 바느질 바늘을 사용하여 그 상처를 거뜬히 봉합시켜준 것이다. 그래서 더욱 고마운 통신장이었으니까...


오늘은 개코 닮아서 그렇다고 통신장이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화재를 예방하게 만든 그 아내의 감각이며 하여간 그들 두 사람의 활약을 다시금 경하해 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하루였다. 앞으로도 이런 분들이 계속 이어서 동승가족으로 승선 한다면, 처음 타보는 배 생활에서 안전사고나 일으키어 그 사고의 피해 주인공이 될까봐 우려하는 동승가족제도에 대한 걱정은 그대로 기우임을 증명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든든한 참모를 가지게 되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지휘관임을 새삼 확인하며, 내가 이미 그런 지휘관으로 되어있는 기쁨을, 그들 부부와 함께 커피 한 잔의 향을 즐기며 은근히 만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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