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수로에서의 조선(操船)

협수로 통항시, 선장의 직접 조선(操船)

by 전희태
낮에 섬들이 있는 곳을 지나며 - 이런 곳을 지날 때는 낮에는 괜찮으나 밤에는 신경이 쓰인다.

좁은 수로나 중요한 길목을 통과할 때 보면 꼭 다른 배를 만나게 되어 신경을 쓰며 지나치는 일이 많다.

그런 곳이 다른 배에게도 역시 통과하지 않고는 항해의 완성이 안 되는 길목이라 자연히 배들의 모임이 잦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곳에서는 선장이 브리지에 올라가서 직접 조선을 하여 조심스레 항과 하여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한다.


직접 조선(操船)이라고 하여 일부 영화에서와 같이 선장이 직접 조타륜을 잡고 폼(?)나게 운항하는 게 아니라 조타륜은 조타수에게 맡기고, 혹시 긴급한 사항 때문에 있게 될지 모르는 엔진 사용을 위해 기관실을 S/B(Stand By : 준비)시키고, 당직 항해사관을 대동한 후, 주위 사항을 가감하여 기관사용이나 타각의 지시를 항해사나 조타수에게 내려서 운항하는 게 선장의 직접 조선이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두 바다가 서로 만나는 지브랄탈 해협이나, 걸프만 입구인 호르므스 해협 같이 대부분의 좁은 수로해역은 도착 몇 시간 전부터 전후방에 나타나는 배들을 유심히 살피며 그 수로를 관장하는 당국의 지시를 따라 항해해야 한다.


이곳 조마드 수로는 규모도 작고 아직 관장하는 당국도 없지만, 그래도 호주와 아시아 간을 왕래하는 선박들로 인해 언제나 바쁜 항로상 수로이기에 최소한 입구 도착 한 시간 정도 전에는 브리지에 올라가 직접 조선을 준비하곤 한다. 조마드 수로 입구 도착 15 마일 전에 연락해 줄 것을 해도와 야간 지시록에 지시하였는데 생각보다 조금 빨리 달렸는지 23시에 전화 벨이 울린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브리지로 올라간다. 아직 조마드의 등대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보름이 며칠 지난 밝은 달빛 아래 잔잔한 해면 위에 누워있는 그런 대로 운치 있어 보이는 섬 그늘을 향해 항해를 계속하는 중이다. 앞쪽에 배가 한 척 우리와 선수를 맞댄 상황으로 북향으로 올라오고 있어 서로가 좌현대 좌현으로 통과하자고 VHF 전화로 약속은 하였지만, 워낙 좁은 간격의 지나침이 예상되어 쌍안경을 들어 열심히 살핀다.


그 배의 선수가 좌현으로 돌았다가 다시 우현으로 트는 일이 반복되는 형편이, 양현등과 마스트 등의 모습으로 관찰 된다. VHF 전화를 걸어 왜 그러느냐니까 등대섬과 1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려고 그런 다는 식의 말을 받으며, 좌현대 좌현 통항은 계속 유효하다고 확인 받았다.


우리 배와 무사히 비껴가기 위해 미리 취했던 약간의 우현 변침 조정이 원래 그어 놓았던 자신의 침로선에서 선위를 약간 오른쪽으로 빠지게 만드니, 조마드 등대섬과 그 주변의 산호초가 너무 가까워 진 것으로 착각하여 - 위험이 가깝게 느껴지니까 - 약간 왼쪽으로 벌리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선수가 흔들리는 조선을 하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항해 당직 사관들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반대쪽에서 접근하는 타선에게 아주 위험한 결단을 촉발 시킬 수 있기에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상대선의 그런 행동에 의아한 마음을 품게 되고 피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느낄 때, 반대쪽 배의 당직사관도 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배와 똑 같은 마음으로 행동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상대선도 협조동작을 하도록 요구하는 국제 해상 충돌 예방법의 큰 뜻에는 부합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마치 인파가 많은 길거리에서 앞에 오는 다른 사람을 피하려고 옆으로 비켜설 때, 상대방도 내 맘 같이, 피하는 행동을 같이 취하다 보면, 오히려 서로를 부딪치게 만드는 일을 만드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사실 그런 순간 마지막까지 두 사람은 계속 가까워지며 취한 행동이기에, 어느 순간 그냥 어깨를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를 비교해 볼 때, 사람들의 몸이 잠시 부딪치는 건, 서로가 멋쩍어하며 피차 눈웃음으로 지나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지만, 선박간의 그런 모습은 충돌이라는 커다란 사고라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배를 불러내어 주의를 환기시키며 <RED TO RED>(좌현등이 빨간색등이므로 빨간 불을 서로에게 보이는 좌현대 좌현으로 지나자는 뜻)를 강조한다. 이윽고 유의하며 통과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 배의 더 뒤쪽에서 본선의 선수 우현에서 좌현으로 약간씩 빠지는 또 다른 배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번 배는 좌현대 좌현으로 조마드 수로 내에서 서로 지나가자는 것을 말보다 앞서 행동으로 나타내주는 모습이다.우리도 이미 얕은 곳과 위험한 포인트는 다 벗어난 상태라, 침로를 우현으로 5도 더 주어 상대가 안심하고 우리와 좌현대 좌현으로 지나치며 안전하게 조마드에 진입 할 수 있도록 배려 해주었다. 물론 우리가 조치한 그런 협조 사항은 상대선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세 시간 가까이 브리지에 서서 조선을 끝내고 난 후, 방으로 내려오니, 다리는 뻐근하니 천근만근 가깝고 푸석하게 부은 느낌마저 주는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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