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하여 앞장서는 일

자기 배에 대한 자부심

by 전희태


China-Fortune1.jpg 우리 배에게 추월을 당하던 때의 CHINA FORTUNE(中華寶運)호의 모습.



우리 배가 담피어(DAMPIER)항의 EAST INTERCOURSE ISLAND 부두를 출항하기 전에 또 다른 부두인 파커스 포인트 (PARKERS POINT) 부두에서 선적을 완료하고 먼저 출항한 배가 있었다.


그 배가 한낮인 12시경에 부두에서 떨어져 출항 항로로 접어드는 걸 보여주고 있었을 때, 우린 마지막 트리밍(TRIMING)을 위한 드라프트 서베이(DRAFT SURVEY)를 시행하느라 잠시 작업이 중단되고 있었다.

이윽고 TRIMING의 마지막 단계인 8번 창에다 철광석을 부려주고 난 후인 15시경 부두의 적하기(LOADER)는 스파우트(SPOUT)를 끌어올려 수납하기 시작하여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알렸고, 이미 모든 출항 준비를 끝낸 우리 배에선 선수미에 예인선의 줄을 잡아주고 8번 창의 해치커버를 닫아주면서 곧 계류삭을 걷어 들이는 일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접안에서의 마지막 작업을 바쁘게 마무리 짓고 요 근래 이루어 낸 최단 시간의 선적 기록을 만들어 내며 출항하였지만, 그 배는 이미 그 모습을 우리들의 시야에서 지워 놓은 채 멀리 사라져 버린 후였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찾아왔다.

항해 당직을 위해 어둡게 조명을 조정해두고 있는 브리지 내에서, 작동 중인 환한 레이더스코프 화면 위에서는 선수 방향 2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을 우리에 앞장서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배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체크한 결과 낮에 파커스 포인트를 출항한 배로 판명되었고, 우리 배와의 속력 차이가 0.5~1노트 정도 떨어지고 있어서 열 시간 정도 흐르면 추월할 수 있겠다는 짐작을 갖게 한다.


바다 위에서 만나는 모든 선박은 일단 동료의식을 유발하는 사물이지만, 이렇게 같은 방향을 향하여 비슷한 속력으로 움직이며 특히 동형 선박일 경우에는 어느새 동료이기에 앞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대로 인식되는 것이 뱃사람- 특히 항해사-들의 마음이다.


이 배와의 상황도 어느새 그런 범주에 들어서게 되어 오늘 하룻밤을 지나고 아침이 되면 아마도 우리 배가 따라붙어 추월을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상을 한다.


-추월 시 상대선의 옆쪽에 너무 바짝 붙지 않도록 2 마일 이상 떨어져 항행하도록 할 것.

나이트 오더 북(Night Order Book 선장이 야간에 항해 당직자들에게 내려주는 비망록)에 그런 말을 기재한 후 브리지를 떠난다.


예상했던 대로 하루 밤이 지난 아침.

식사 후 브리지에 올라가니 바로 우현 쪽에 가까이에 달리고 있는 그 배가 뚜렷이 보인다. 이미 추월이 시작되어 우리가 앞장서 가는 침로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저 배를 추월하여 안전하게 될 때까지 조심하도록 해라!

어쨌든 경쟁에 이기고 있다는 약간의 그러나 흐뭇한 우월감을 가지며 당직사관에게 지시한다.


해상에서 선박 간에 추월의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충돌이나 접촉의 사고가 나게 되면 우선은 추월선의 책임이 피추 월 선보다 더 많은 책임이 부가되는 것이 국제충돌 예방법의 관행이기에 당직 마지막 순간까지 조심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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