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

모든 선원들이 귀향을 그리워하는 이유

by 전희태
%BE%C6ħ1(7655)1.jpg 아침을 맞이하며


염려하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북위 20 도와 30 도 사이의 겨울철 동지나해에서 만나는 바람과 파도의 출현에 은근한 두려움을 품으며 달리고 있다. 다행히 운이 따라주었는지, 북위 15 도선을 넘어서서 계속 북상하는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바람, 파도 모두 우리 배를 괴롭히지 않는 좋은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속력을 내어주지 않는 것은 아마도 평소보다 만 톤이나 더 실린 무거워진 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번 항차를 뒤돌아 보게한다. 가장 짧은 항차 일수에 제일 많은 짐을 실은 수지타산이 맞아 든 짭짤한 항차인 것으로 결론을 내게되니 마음 한 켠이 뿌듯하다.

요사이는 하루 한 번 매일 같이 집으로 전화를 하는데 그때마다 전화를 받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금년 초 힘들게 마음 고생하던 때와 비교되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심정이 절로 들곤 한다. 아내가 수술을 하려고 할 때부터 시작하여 수술을 마치고 난 후, 또 그 후유증에 고달파 하던 모습과 환부가 완전히 도려내지었는지 여부를 맘 졸이며 검사한 결과를 기다리던 때로 생각이 미치면, 지금 아내의 활발한 모습은 정말로 축복 받은 일 임에 틀림없다.

나의 겨울 옷과 필요한 생필품을 갖고 태안으로 마중 올 예정인 그런 아내가 마냥 기다려진다. 어릴적에 소풍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던 초등학교 아이들과 진배없이, 기쁜 흥분에 들 떠 있음을 옷 매무새 고쳐가며 슬며시 인정한다. 그런데 이런 작은 흥분 된 마음을 나 혼자만 가진 것이 아니다. 전 선원 모두 나름대로의 가족을 만나는 기쁨의 감정을 품고 대비하며 입항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려주는 좋은 지표가 있다.


지금 우리 배가 하루에 쓰는 청수량은 대략 얼마라고 추정이 되어 있고, 그 양의 일일 변동량도 큰 차이가 없이 매일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신조선이요,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청수로 만들어 주는, 조수기(造水機)까지 잘 장비되어 있어, 물을 쓰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는 배이기에 청수 사용하는 걸 제한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예전의 청수가 모자라는 상태를 경험 시키며, 배를 타던 시절로 부터의 전통은 매일의 청수 소모량을 계속 점검, 항해일지에 적도록 하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청수의 긴급한 모자람에 대비하기는 한다.

헌데 국내항에 입항하기 하루 이틀 전에 재어 보는 청수 소모량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늘어나 있는 것으로 늘상 감지 할 수 있는 것이 그 지표인 것이다.


즉, 전 선원들은 그간 미뤄 두었던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며, 입항하여 만나게 될 가족들과 즐겁게 재회하려는 준비를 너나 없이 모두가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그들의 모습이 외모에 별 신경을 안쓰고 지내던 항해중을 벗어나, 입항이 가까워지면서 그야말로 때 빼고 광내는 순진한 사람들로 변모하는 모습은 경이로룰 지경이다. 사실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세계 어디서나 즉시 전화 연결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니, 예전 같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가족간의 단절은 이미 엷어진 옛이야기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산다는 의미를 짙게 느낄 수 있는 스킨쉽 적인 직접 만남의 기회는, 예전이나 다를바 없이 오직 입항이 되어야만 이룰수 있는 것이니, 그런 소중한 기회를 위해 몸단장 하느라 시간 보내는 동료들을 비웃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해, 나는 그런 상황을 꽁트로 구성하여 회사 사보에 실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 글의 제목을 < 이번에는 꼭 이루리라!> 뭐 그런 정도로 썼던 것 같다.

IMAG0642.JPG 아내와 나 - 어느새 20여년전 사진

내용은 집을 떠난 오랜 항해 끝에 국내항에 들어와, 입항 수속을 끝내고, 첫 상륙을 하면서, 아내와 재회하는 그 순간, 주위의 눈길을 도외시 한 채,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이 달려들어 아내를 꼭 끌어 안고는 소나기 같은 입맞춤을 퍼붓는 재회의 행사를 할 것이라고, 나라는 주인공이 동료들에게 다짐하여 선언하는 걸로 시작했었다. 며칠 후, 입항하게 된 날. 이미 선언했던 용감한 모습을 나는 연출시켰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세관 박스를 통과하여(당시는 세관 검색이 좀 까다로왔다.) 고대하고 있던 아내를 만나자, 그대로 끌어 안으며 열렬한 키스를 퍼부으니 주위의 동료나 관리등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며 박수까지 쳐주었다. 그러나 반전을 이루는 다음의 내용들로 끝맺음을 시켰다.


환호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감았던 눈이 뜨여지며, 정신이 들었다. 아침이면 도착 할 항구를 향해 달리고 있는 입항 전날 밤의 배안 내 침대 위에서 나는 땀에 젖은 허탈한 얼굴로 꿈에서 깨어난 채 멀뚱이 누워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아쉬운 끝 마무리를 지어 놓고 마음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얼마나 서운했던지.....

사실 그 글을 썼을 때, 내 실제의 작심도 꼭 그렇게 해보리라 다짐 해봤지만, 용기(?)가 부족하여 일을 벌이지 못하였고, 지금도 공중의 앞에서는 그때나 똑 같은 실정이다.


그로부터 어언 세번의 세상 탈바꿈을 이룰수 있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공원이나 전철 또는 극장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태연히 끌어 안고 뽀뽀하는 젊은 연인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내가 처음 배를 타던 그 시절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꿈에서나 이뤄보던 일이었건만... 격세지감이 온몸을 훑어 지난다.


아직도 많은 선원들은 입항 전 날, 고작 몸을 씻어내어 단장하는 일로 가족과의 만남에 대비하는 것이 그저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대중 앞에서의 스킨쉽이 결코 부러울지언정 스스로 실행해 볼 용기는 돌려 세워 버렸고, 오히려 그들이 너무 쾌락적인 자유분방함에 빠져 있다고 걱정하는 순수한 사람들이 우리들 - 선원들 - 이기 때문일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외항에 도착하여 투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