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배들이나 투묘지에서 만나는 일상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얼른 일어나 잠깐 커튼을 걷어 본 창밖으론 어둠이 걷히기 전이지만 반쪽의 달이 어슴푸레 비치고 있어 맹탕 어둡지만은 않은 새벽이다. 아직 육지나 닻을 내리고 있는 정박선의 불빛이 비쳐 보이지 않고 있어 찾아 가는 뉴캐슬 외항까지는 한두 시간 정도 더 달려야 될 것으로 여겨진다.
두 항차 만에 찾아온 뉴캐슬에 이제 닻을 놓으려고 조용히 접근을 시도 할 시간이 슬금슬금 다가서지만, 어둠은 아직도 아니라는 식으로 창밖에서 좀 더 기다리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하면 나를 깨우라 차트(해도)위에 그려 넣어 지시한 위치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하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깨워서 일어나기 보다는 내 스스로 먼저 일어나 부르기도 전에 찾아가곤 하던 브리지이다. 오늘이라 예외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지, 옷을 찾아 입고 브리지로 올라간다.
-선장님, 좀 일찍 올라오셨네요.
바쁘게 당직중이던 일항사가 어둠 속에서 인사를 한다.
-뭐, 다왔잖어?
-그리고, 하버 컨트롤에는 이티에이 보고했지? 하고 말을 부치니
-예, 6시에 도착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한다.
레이더의 화면을 들여다 본다. 외항에 기다리고 있는 배들이 많지 않아 흰점으로 나타나는 정박선의 모습을 7 개까지 세니 끝이 난다. 내일 오후에는 접안한다던 대리점의 통보가 충분히 그대로 진행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예전 호주에서 노조파업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는 무사히 도착하더라도, 투묘 대기 할 정박지를 찾기가 힘들게 레이더 화면이 흰색의 점들로 꽉 차 있곤 했었다.
먼저 도착하여 투묘한 후, 입항하는 순서를 기다리는 배들로 가득찬 레이더 스코프를 은근히 걱정되는 심정으로 들여다 보면, 그 모습이 흰점들인데, 그 흰점이 외항을 나타내는 스코프상에 가득 차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그 당시는 노조가 행하는 일(파업등)만을 스크랩하여 알리는 신문 기사란이 따로이 있을 만큼 노조수도 많고 노조의 파워도 기세등등하던 세월이었다.
광산에서 석탄을 채광하여 항구까지 옮기고 배에 실어 수출하는 각각의 과정을 관장하는 노조의 숫자가 20 여군데가 넘으며, 그 중의 한 노조만 파업을 해도 수출에 차질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외항에서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면, 닻을 내린 후 낚시라도 잘 되는 곳을 처음부터 선호하여 투묘지를 선정하곤 했었다. 그런 관습이 굳어져 지금도 도착 즉시 들어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여건이 좋은 곳을 찾아가서 투묘하는 풍조를 가지고 있다.
오늘은 하룻밤만 자고 부두에 들어갈 예정을 알고 온 것이다. 그래도 느긋하게 고기도 잘 잡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가서 투묘하기로 작정하고 안전을 위해 초미속으로 접근을 계속한다.
10 마일 밖 항계선을 들어선지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원하던 장소를 찾아가 투묘를 완료했다. 이어서 곧 하버 컨트롤에 도착 보고를 했지만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아진 후이다. 평소 한산하던 아침 식사시간 때와는 달리 오늘따라 거의 모든 사관들이 투묘후의 뒤처리를 끝내고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모인다.
'자네들 아침밥 챙겨 먹이려고 이 시간까지 끌어서 투묘를 한 것이지.'하는 농담을 걸어 좀 시간이 걸린 투묘 시간을 변명 해본다. 그만큼 배에서는 항해 중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적고 식사를 해도 제각각 와서 하기에 더욱 썰렁한 아침식사가 대부분이다.
오늘은 투묘작업 시간이 늦어지며 모두가 아침 식사 시간이 좀 넘도록 깨어있은 셈이니, 자연히 식사를 하려고 모이게 된 것이다. 바쁘게 식사를 마치고 정박기간이 하루 밖에 안 되므로 빠르게 일과를 진행한다.
기관부의 과업으로 기관실의 주기관 랜턴스페이스 청소와, 오후에는 레이더 마스트의 균열된 부분의 용접 작업을 하기로 한다. 갑판부는 해치폰툰 스탠션의 머리조심용 주의판인 <타이거 마크 마킹>(노란색 바탕에 검은 줄 사선으로 표시된 위험 주의 요함을 나타내는 마크) 과 6번창 창내에 해수 발라스트가 실려서 젖어있던 선창을 말리기 위해 해치 폰툰을 열어 자연 통풍 시키는 일들이 진행된다.
레이더 마스트는 기관 사용중, 크리티칼 알피엠(CRITICAL RPM 디젤엔진 주기관의 위험 회전수)에 가까워지면 그 진동이 갑작스레 널을 뛰던가, 아니면, 춤추는 것과 같은 동작으로 선체를 흔들기 때문에 선체 부착물 중 약한 부분들의 용접부위를 금이 가게 만드는 일이 있다. 그런 부위 중 항해등과 각종 신호등이 장착 된 마스트와 보조 마스트 스텐션의 보강 부분을 이룬 브라켓이 찢어진 곳이 생겼고, 파이프로 된 가로지지대에 부분적인 뒤틀림에 의한 파이프의 절단된 부분도 생겼는데 이를 이어서 용접하는 일이다.
그냥 찢어진 부분을 맞대진 상태 그대로 용접하는 방식으론 영구적인 수리가 되지 못하므로 이번 귀항하면서는 약한 부분에 다시 덧대어 보강하는 더블링 용접을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새벽에는 맑았던 날씨가 오후에 들어서면서 흐리기 시작하여 하룻밤의 정박이지만 고기를 잡아 회도 맛보며 즐기겠다고 벼르고 있던 꾼들의 마음을 실망에 빠지게 한다. 바람이 있고 비가 와서 낚시 줄이 끌리어 고기가 물리지 않는다며, 저녁 식탁을 뜨자마자 선미갑판으로 나가 낚시를 던지며 설치던 사람들이 말한다.
생각하고 찾아든 낚시터인데 바람과 비로 인한 물살 때문에 공치게 되누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에는 고기 잡은 이야기가 나올 거라 믿는 구석도 마음 한가운데 가지며 잠 자리로 찾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