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부두 비트의 그늘에서 쉬고 있는 개
이윽고 방파제를 통과해 항내로 들어서며 통선 선원이 우리들 여권을 걷더니 곧 왼쪽에 있는 체크포인트를 찾아가 통선을 댄 후 내린다. 가오슝항을 출입하는 어선을 포함한 작은 선박들이 이곳에 들려 검사를 받고 들어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여권을 받아 든 관원이 배로 올라오더니 한 사람씩 여권사진과 인물을 비교해 보고는 떠난다.
잠시 후, 통선선원이 입항 허가증이라도 받았는지 서류를 들고 통선에 타면서 배는 즉시 안쪽 통선장을 향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항 입구 컨트롤 타워에는 0 이란 숫자를 표시해주고 있었는데 주위에 있는 팻말을 보니 그곳에 1 이란 숫자가 떠올라있을 때는 출입이 금지된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보인다. 이윽고 한진과 현대 컨테이너 부두를 지나서 지난번 정기 통선으로 들락 이던 통선장에 들어섰다.
통선장에는 몇 대의 통선이 부두에 대어 있고 부두에는 노란색의 택시 두 대가 서 있다.
한참 일할 시간인 오후 과업 시작 무렵이지만 방금 통선으로 도착했다가 떠나버린 어느 배 선원들의 수선스럽던 모습이 사라진 부두는 조용해져 있다.
그런 오후 1시의 뙤약 볕에 한 번쯤 만났을 듯한 더위에 늘큰해진 검은 개 한 마리가 내 눈치를 보며 가까이 다가선다. 곁눈질은 하지만 관심 없어하는 내 모습에 몸을 돌리더니 갑자기 몸을 숙이며 제 온몸을 다리로 긁어 대기 시작한다. 지난번에도 보았던 것 같은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아마도 개벼룩이라도 있어 가려운 모양이겠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던 대리 점원의 말을 기억해내며 두리번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기 시작하는데 어떤 친구가 가까이 오더니 “패스 포드?” 하며 찾는다.
얼른 여권을 꺼내 주며 눈치를 살핀다. 그 친구 여권을 들고는 옆의 건물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곧 노란색 택시의 운전석 문을 열더니 떠나간다. ZD-708 그게 그 택시의 번호이다.
한 20여분 기다리다가 그래도 별일이야 없겠지만, 지루한 마음과 미심쩍음에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본다. 수속 중이니까 한 시간 정도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해온다. 대리점에서 일을 시킨 택시 운전사가 맞기는 맞았던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 시간 좀 넘게 하고 있으니 그 택시가 다시 들어온다. 얼른 그 앞에 서니 타라는 시늉을 한다. 별 말없이 세 사람은 타고 차는 떠났다. 곧 부두 출입구에서 방금 수속을 끝내서 받아 쥔 상륙증을 보여주며 그곳을 빠져나온다.
지난번 이곳에서 치과를 가던 때를 기억해내며 그때와 겹치는 주위 광경을 떠 올려가며 가만히 차창 밖을 내다본다.
항문에서 피가 나온다는 필리핀 선원을 네거리에 있는 응급병원인 邱 병원에 내려주고 나를 실은 차는 치과 의원을 찾아간다.
그곳도 지난번 찾았던 곳이다. 이미 구면인 간호사와 눈인사를 나누고 잠시 기다리니 의사가 들어온다. 내 상태를 이야기하고 치과의자에 앉아서 뒤로 젖혀진 상태로 아! 하고 입을 벌린다.
지난번 여기서 치료한 자리가 덧난 것인데 알고 보니 그 치아가 반이 갈라져 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마취 주사를 맞고 잠시 기다렸다가 눈치를 보니 발치를 하려는 것 같아 이야기를 하여 될수록 이를 뽑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그러면 이가 다시 아플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거울을 들려준다.
아 벌린 입안은 붉은 피로 흥건한데 뽑으려 한다는 이의 혀가 있는 쪽에서 방금 힘없이 붙어 있는 이가 보이고 그 뒤로 하얗게 깨끗해 보이는 이가 서 있다.
그 힘없는 이를 핀세트로 들어내니 그냥 쉽게 떨어져 나온다. 물론 아픈 감각도 없다.
이제 와 같이 서있던 바깥쪽 치아도 빼어야 한다는데 나는 반대를 하였다. 그때만 해도 내 치아가 반쪽이 났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마치 안쪽 덧니가 고장이 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남은 이는 그냥 살리는 쪽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남은 치아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곳이 박테리아 소굴이라 또 아플지도 모르겠다는 의사의 말에 한 두 달 정도만 견디면 한국에 가서 치료하겠다면서 그때까지 아프지 않게만 해달라고 하며 치료를 거기까지만 받기로 했다.
약을 이틀 분 주는 것을 떼를 쓰다시피 하여 아마도 소염제인 듯한 약을 며칠 분 더 받아 들고 치과를 나섰다. (Cephalexin Tab. 250MG과 진통제)
이제 필리핀 선원이 있는 邱병원에 가니 이미 처방이 끝나 약을 받으려 하고 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사전 준비로 그 검사는 오늘은 안되고 내일부터는 주말이라 안되고 다음 주 목요일 오후나 되어야 검사가 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한다.
이미 약까지 처방해준 터이라 상태가 어려운 것인가 물으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의사들의 대표적인 대답을 하며 어찌할 것인가를 묻는다. 분위기가 검사를 안 하는 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든다. 그럼 처방한 약에 대한 사용법을 알려 달라니 이건 좌약으로 절대로 먹지 말란다. 처방된 병명은 치질이다.
우리는 환자 본인의 말만 듣고 치질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치질은 이런 식으로도 나타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