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항문에서 선홍색의 붉은 피가 나온다는 필리핀인 조타수를 데리고 나도 치과에 갈 겸 상륙을 한다.
이미 출항 수속을 다 끝내고 떠난 마당에 단지 갈 곳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다시 입항 수속을 하고 상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 전체를 다 입항 수속하는 게 아니라 상륙자들만 따로 입항 수속과 임시 상륙증을 발급받아 병원을 가려는 것이다.
출항 전에 이용한 대리점에 연락하니 아픈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그대로 상륙을 실행하기로 하고 회사에도 그렇게 연락하여 추인을 받은 상태이다.
VHF로 12시 30분경 통선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서류를 준비하여 세 사람이 내렸다.
병원 갈 사람 두 사람과 혹시 필요할지도 모를 보조원으로 3 항사를 대동한 것이다.
갑판 위에서 내려다보면 별로 파도도 없는 것 같은 해면인데 막상 갱웨이 계단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통선-도선선-은 선수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제법 흔들면서 우리의 하선을 기다리고 있다.
통선의 선수가 우리 갱웨이 스텝의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왔을 때 준비하고 있던 몸을 깡충 뛰어서 그 배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세 사람이 무사히 옮겨 타고 통선은 선수를 돌려 항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리 배의 옆을 떠나며 새삼 밖에서 보는 우리 배의 모습을 관찰하며 방금 떠나는 선미의 흘수도 챙겨본다.
8미터 조금 넘는 흘수에 프로펠러의 끝단이 조금 보이더니 물결에 따라 잠겼다가 나왔다를 반복하는데 마치 꺽다리 사람이 짧은 바지를 입고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주로 브리지에서 관찰하던 주위에 있던 다른 배들의 모습을 이제는 해면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는 형태로 확인해 본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을 익히며 어쩌면 상륙이란 상황을 즐기기로 하는 데 갑자기 잘 달리도록 조종하고 있는 통선 선장에게 조수로 일하는 친구가 뭐라고 소리쳐 속력을 늦추게 한다.
통선 선장은 즉시 엔진의 파워를 낮추어 속력을 떨어뜨려 준다. 소리친 친구가 선미로 나가 바쁜 동작으로 뭔가 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는데 보니 낚싯줄이다.
이윽고 점점 짧아지는 낚싯줄 끝에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끌려 오더니 드디어 물 위로 들어 올려지는 걸 보니 커다란 고기이다.
노란색이 많이 느껴지고 머리통이 뭉툭하니 크고 몸은 날씬하고 꼬리도 아주 맵시 있게 생긴 녀석은 예전에 호주의 어류도감에서 만난 기억이 있는 아주 맛있는 고기로 적혀있던 녀석임을 알아보겠는데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피가 약간 흘러나오는 주둥이에서 공갈 낚시를 빼어서 20리터 페인트 통으로 만들어진 수납통에 거꾸로 처박아 넣으니 날씬한 꼬리지느러미가 위로 올라 온 채 몸부림친다.
순간 녀석의 몸부림이 주효하여 통을 쓰려 뜨리어 갑판으로 빠져나온 녀석이 바닥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바다를 향해 뛰어내릴 태세이다.
순간 그곳에 제삼자로 구경하고 있던 우리의 3 항사가 얼른 그쪽 갑판으로 옮기어 두 다리로 벽을 만들어 주어 녀석이 바다로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막는 동작을 취한다.
두 사람이 막은 발길에 의해 갑판 한가운데로 밀린 녀석은 이제 마지막 탈출의 기회가 막힌 채 다시 사람의 손에 잡혀서 처넣어졌던 깡통에 다시 넣어진다.
제삼자인 우리 배의 삼항사는 직접 몸을 움직여 녀석의 탈출을 막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또 튀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 이왕이면 머리라도 한대 때려 완전 기절을 시켜 넣어주지 하는 한 술 더 뜨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녀석이 멋지게 탈출하여 제 목숨 부지하는 일에 응원을 보태지 않고, 3 항사는 몸으로 나는 마음으로 녀석의 탈출을 막는 일에 동조하는 걸 보니 나나 3 항사 모두는 역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던 사람의 그룹에 속하는 모양이라 여기며 씁쓸한 고소를 입가에 담는다.
카메라를 들고 나왔으면 어쨌든 몇 컷의 사진을 찍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병원에 가는 길이 아니라면 들고 나왔겠지만 아프다고 병원 가는 주제에 카메라를 들고 나오기가 그래서 안 한 일이 자못 후회된 오후다. 통선은 이미 속력을 다시 올리며 항내를 향해 달리고 있다.
(歡迎 光臨 中華民國 高雄港)이란 입항선을 환영하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네온사인으로 만들어 내부 방파제 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무렵 외항에서 약간씩 흔들리던 통선은 이제는 내항을 달리며 조용히 통선장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