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좀 끼었지만 그건 수평 적으로 보인 상황이고, 수직 적으로 보는 머리 위의 하늘은 별빛을 숨긴 채 푸른 어둠으로 나타나 있다.
그 속에 품어 준 음력 27일의 그믐달이 가느다란 비수 마냥 새벽의 하늘에서 찌르기라도 하려는지 날카로운 모습을 힐끗힐끗 보여주고 있다.
3~4 마일 정도 떨어진 육지의 불빛 역시 옅은 안개로 인해 뿌연 눈 막음의 불투명하고 칙칙한 어둠을 뚫어 내느라 힘겨워하는 듯싶다.
그런 안개 때문일까?
오늘은 새벽이면 나타나서 뭐라고 마이크에 대고 떠드는 스피커의 증폭된 소리와 함께 그물질을 하든 어선의 나타남이 아직은 없다.
스치어 지나가는 바람결에 슬그머니 일어서려는 파도가 남겨 주는 찰싹 이는 소리만이 뱃전의 외판을 두드리며 지나고 있을 뿐이다.
2 마일 안팎으로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위에 흩어져서 닻을 내리고 있는 정박선들이 내뿜어 주는 갑판상에 환하게 켜진 등불 빛 만이 그곳에 배가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의 희뿌연 명암을 들어 내주고 있다.
그런 불빛을 뿜어 낼 수 있는 힘을 부여하려고 그 배들이 만들어 내는 기관음 역시 살아있는 자신을 표현함 이련가?
갑자기 웅웅 거리는 발전기의 작동 소리가 해면을 타고 넘어와서 내 귓가를 간질이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선미를 돌아서 다시 선수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데, 보다 먼저 돌려진 시선 안으로, 우리 배의 꽁무니 쪽을 가깝게 스치듯이 지나치고 있는, 한 어선의 붉은색 항해등 불빛이 나카나고 있다.
순간 깜짝 놀라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난간 가까이 다가서며 핸드레일 너머로 그 배를 내려다본다.
POOP DECK의 밝은 조명등 불빛 아래 갑자기 노출되는 내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된 그 지나가는 어선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쳐다볼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지나치고 있는 거다.
이런 새벽의 어둠 속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어쩌면 선외에서 배로 침투하려는 도둑(해적)을 지키려고 당직 서고 있는 선원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저런 짐작들을 떠올리며, 더하여 흘끔거리는 곁눈질로 그 배의 행동을 지켜보게 되니, 빠르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짐짓 멈칫거려지고 있다.
이윽고 그 작은 어선이 무사히 우리 배의 선미를 지나 안전하게 제 갈 길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무렵, 지나치는 바람결에 코끝을 간질이며 약간은 퀴퀴함을 풍기는 항구의 냄새가 내 감각의 움직임 패턴을 후각 쪽으로 돌려준다.
운동하고 있는 폐활량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공기 같다는 상념에, 머리를 돌리어 바다 쪽에서 흘러드는 새로운 공기 쪽을 향해 심호흡을 시도한다. 깊게 들여 마신 코끝으로 사람 사는 항구의 냄새가 옅어져 가는 감각 되어 느껴진다.
바로 옆에 있는 공기들인데 질이 다르다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마는, 기분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깊은 심호흡을 다시금 해 본다.
이윽고 바쁜 운동의 보폭으로 복귀한 발걸음은 감각을 다시 시각 위주로 바꿔 주면서, 선수 쪽을 향해서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