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로운 동참자

기다림을 같이 하려는 배들

by 전희태


986ȣ1.jpg 방금 투묘를 끝낸 컨테이너 선 LOS ANGELES EXPRESS 호.



OOCL ATLANTA가 떠난 후 비어 있던 자리에 다른 배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하며 다시 빈자리 메꾸기를 계속하는데, 오후 들어 컨테이너선 한 척이 슬며시 들어오며 참여하고 있다.


엊그제 컨테이너를 잔뜩 싣고 들어왔던 배인데 지금은 그때 보여 주었던 컨테이너를 모두 양륙 하고 빈 배로 들어서고 있다. 이 배도 우리 배처럼 싣고 온 짐을 여기서 다 풀어주고 빈 배로 기다림을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닻을 드리울 알맞은 자리를 찾으려는 듯 투묘 준비를 한 채 우리 배 옆 1.3 마일 정도를 지나치고 있는 그 배를 쌍안경으로 열심히 관찰한다.

회사 로고는 Hapag Lloid라고 그려져 있고, 선수의 배 이름은 LOS ANGELES EXPRESS 라는두 단어의 기다란 이름이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선미 외판에 쓰인 선적항 란을 살피니 HAMBURG이다.

함부르크( HAMBURG)항이라는 선적항 이름을 보며 독일 국적의 배라는 걸 그냥 알아 버린다.


아울러 그 항구 함부르크를 내가 처음으로 기항하였을 때 보여 주었던 그들의 환영 행사가 내 추억의 보고에서 불현듯이 빠져나오고 있다.


예전 범양상선에 근무하던, 80 년대 후반 시절이었다. DWT 240,000 톤의 제법 커다란 광탄 선인 오션 유니버스(OCEAN UNIVERSE)호를 타고 그곳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의 거리가 되는 항로 길목에서 굽이치는 강줄기를 따라 몇 구비 돌은 후 다시 정침을 할 무렵이었다.


좌현 강안에 설비된 YARD ARM(기류 게양대)에 우리 배의 국적을 따른 태극기와 함께 입항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기류들을 게양해 놓고, 스피커를 통해서는 애국가의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함부르크 항구를 찾아오는 배들을 정중한 손님으로 환영하는 독특한 행사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갑자기 코 끝이 찡해지며 거친 파도를 헤치고 대양을 건너왔던 항해가 마냥 소중하게 느껴지며, 아울러 환영의 중심에 들어서게 된 나와 우리 배, 또 그 배경이 되어 준 조국에 대한 형용할 수 없었던 뿌듯한 자신감에 흥분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것이다. 그런 경험을 갖지 못하고 있는 지금 본선의 당직 사관인 초임 3등 항해사에게 그때의 광경이나 당시 내 심정을 자랑스레 들려준다.


그러고 있는 동안 우리 옆으로 가까이 온 LOS ANGELES EXPRESS는 닻을 내려주는 촤르르 하는 굉음을 아스라이 우리들의 귀속으로 전해주고 있다.

혹시 드라이 도크를 하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배도 여기서 다음으로 찾아가야 할 차항을 기다리려고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불경기의 악순환 고리는 아직도 끝간 데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관을 넘나드는 운동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