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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을 바라보는 마음

by 전희태
987C91.jpg 날씨가 나빠지려고 어두워지는 바다와 하늘


배에서 닻을 내리고 정박 중일 때, 바람이나 파도 등의 외력에 의해 닻이 끌리는 상황을 주묘(走錨)(주 1*)라 하는데 이는 투묘 중인 선박에서 제일 먼저 대비하고 당직에 임해야 하는 위험한 안전사고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이곳 가오슝 외항에 머무르고 있던 중에서 가장 세게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풍속 40노트의 도전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움직이지만, 풍향 풍속 계기의 분주한 눈금 모습으로 찾아와서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그래도 푸른 하늘도 보여주며 햇빛도 쏟아져 내리는 곳이 있어 그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었는데…

이 바람이 얼마나 더 오래 불어줄 건지를 예상하는 마음은 초조감의 극치를 향하고, 한 시간이라도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숲길에서 뱀을 만나 도망치는 듯한 초조함을 연속하게 만들고 있어서 방 안에 앉아 있지만 한 번씩 거세게 달려가는 바람 소리가 휘-잉 귓가에 거슬리는 여운을 남기며 쉴 틈을 주지 않으려 한다.


어제 아침의 기상도에는 이곳 대만 주위가 강풍경보로 나와 있었지만 별 바람 없이 밤을 지났는데 새벽 5시 정도부터 바람이 슬슬 일기 시작하더니 그예 아침 8시 현재 40노트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풍속을 보여주며 내 애간장을 태워가고 있다.


이런 정도의 바람에는 아직 주묘(走錨)하는 일이야 없을 것으로 믿기는 하지만 계속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가며 혹시나 하는 코너로 몰아붙이며 어느새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10시 40분부터 나오는 기상도를 수신해 보니 지금 이곳은 강풍경보 구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바람은 계속 불고 있고, 방 안에 앉아 있으면 평소와는 달리 발전기만 가동한 최소한의 기관 소음 발생 상황 때문인지 조그마한 바람 소리에도 호들갑을 떨어 마음 졸이게 만드는 형편으로 크게 들리는 것이다.

11시 30분쯤 되면서 기상도의 상황을 따르려는지 풍속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다.

40노트에서 10노트가 줄어든 30노트 정도 되는데도, 이제는 그 씽씽 거리는 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그것만으로도 초조감을 많이 누그러뜨려 준다.

이제 시간이 더 지나 오후로 들어서면 낮아지는 파고와 함께 소리도 평온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 지루한 끝 모르는 투묘 대기 중인 상태에서 너무 만네리즘에 빠져 편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무슨 일이라도 내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으라는 뜻으로 날씨가 변덕을 부려준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며 한결 안정된 기분으로 점심 식사를 위해 브리지를 떠날 무렵.

닻을 내리고 있는 해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하얀 파도의 바람꽃이 시들기 시작하니 나를 찾아왔던 초조감도 같이 옅어져 간다. 어휴~




주 1* (주묘) : 투묘 중인 닻의 끌림. 닻이 선체를 투묘지에 고정시키지 못하고 바람이나 조류에 떠 밀리어 움직이게 된 위험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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