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그 해 만났던 포항의 두 모습
포항 입항이 내일로 다가온 시점의 아침나절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포항에 집중적으로 내린 호우로 인해 사람도 여럿 상하고 전기도 끊긴 채 고생이 많다는 뉴스를 가지고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로 오늘이 아내의 54번째 생일인 것을 깜박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안부 이야기로 알게 되었다.
결혼 후 지금에 이르도록 매년 잘 기억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아내의 생일날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 좀은 멋쩍고 미안하다.
자신의 생일을 동료들이 축하해 준다고 해서 오늘 회사로 나가련다는 이야기를 듣고야
-어이쿠, 미안해요. 당신 생일 정말 축하해요!
호들갑을 떨며 축하의 말을 한 것이다.
-아니 괜찮아요. 여러 사람이 축하해 주는데요.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을 넘겨준다.
지난번 연가가 끝날 무렵까지도 계속된 아내의 수술로 인해 마음이 착잡하니 의기소침해 있었을 때를 생각하면 아내의 지금 컨디션은 정말로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다. 별의별 억측과 고민과 슬픔과 계속 마음을 담금질 해대는 상상에 괴롭던 그 기간이 지금은 어느새 잊혀지고 아내의 건강 회복이 마냥 즐겁기만 한 걸 보면,
인생에서 망각이란 어떤 때는 되게 섭섭한 기능도 있지만 반대급부의 기능도 무시 못 할 정말로 중요한 뇌 기능의 하나인 것도 틀림없는 성 싶다.
내일 입항에 모레 접안 시킨 후 집에 갈 수 있다는 예정을 알리며 전화 통화를 끝내었다.
저녁 식사 식탁에서 포항에 퍼 부은 장대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몇 년 전 포항의 고속버스 터미널 옆에 있던 시궁창 같은 생활하수가 뒤섞여 꺼멓게 흐르던 개천(양학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듯 포항을 자주 찾으면서 내 머리에 입력되어 있는 이 도시의 환경문제점을 반추해 본다.
-포항은 한 번 쯤 큰 비를 만나게 되면,
-그 냇물을 그대로 깨끗이 정화시켜서,
-물고기가 사는 환경으로 만들고,
-그걸 유지하는 방법을 강구 해주면
-깨끗해진 도시환경을 유지할 수도 있을 텐데.....
-이번 비를 그렇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온다.
몇 년 전,
사그라져가던 태풍이지만 포항을 가까이 지나쳐 간 후의 그해 여름 어느 날 아침나절. 그 냇물은 며칠 동안 장대비로 쏟아졌던 폭우로 인해 불어 난 황토 색깔의 누런 물을 바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얼마 후 오후로 들어서며, 푸른 하늘이 보일 때쯤엔 맑은 물이 흐르며 송사리까지 나타나서 헤엄치던 태풍일과 후의 산뜻한 모습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한참을 그 요술 같은 신기한 모습에 빠져 서성거리며 살펴보느라 내 갈 길을 더디게 했었다.
그렇게 아침에 보았던 맑은 물은, 몇 시간을 넘기지 못한 바로 그날 오후에는 다시 시꺼멓게 썩은 물 되어 천천히 흐르고 있어 그 물가 어디에서도 송사리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냇가를 기웃거리며 송사리를 애타게 찾아보던 그 오후. 내 마음도 그렇게 꺼멓게 흐르는 물에 분탕질 당하며, 휩쓸려 죽었을 송사리에 대한 미안함이 아직도 어제인 듯 생생하니 각인되어 있다.
개울 옆에서 고속버스 터미널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어느 좌판 아저씨가 썩은 물가를 서성거리는 나를 보고 말을 걸었었지.
-아저씨, 송사리 찾아보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아, 예... 우물거리던 나에게
-좀 전에 저 꺼먼 물에 다 휩쓸려 버렸는데요.
그 좌판 아저씨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건네준 말이었다.
오늘 식탁에서의 담소로 그 해 여름의 이야기를 그렇게 꺼내봤는데, 이번 포항의 강우량이 600 미리라는 전국 일등이 되면서 전 도시가 마비된 일을 겪었다는 소식까지 후속 뉴스로 전해지니 진짜 포항의 이야기를 입 싸게 식탁에서 올린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금년도(98년)의 9호 태풍 YANNI는 제주도를 오른쪽으로 하여 지나친 후 남해에서 동해 쪽으로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을 들이치며 상륙하여 포항지역으로 빠져 나갈 때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비와 바람으로 퍼부어 수십 명의 인명피해와 추수가 며칠 남지 않은 풍년의 벌판마저 휩쓸어 간 모양이다.
그래도 육지를 빠지고 나서는 미안하다는 표현이라도 하려든 것이었을까? 곧 저기압으로 강등되면서 빠른 속력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이미 저지른 죄과가 그래도 용서될 수 있는 건, 태풍의 휘몰아치는 힘이 바닷물의 상하층을 바꿔주었기에 남해안의 적조현상을 막아준 일이다. 공로라고 칭찬의 말이라도 해줘야겠네.
후기: 양학천은 그 후 2003년경부터 완전히 복개공사가 실시되어 덮어 버리기가 시작됐는데, 지금은 그렇다 치고 언젠가 세월이 흐른 후, 복개 부위를 철거하여 깨끗한 물이 흐르는 도시공원 하천으로 환원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