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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신세대

별을 보고, 해를 보고 항해하던 시대에서 GPS로 항해하는 시대로

by 전희태
유니막부근.jpg 유니막 수로 부근 더치하버가 있는 섬.

어제 한밤 중에 유니막 패스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내가 처음 실습선으로 배를 타기 시작한 63년도 무렵만 해도 이곳을 통과하는 일이란 게 마치 비장한 각오를 하고 전장에 나서는 군인 같은 심정이 되어 대권 항법을 구사하면서 찾아와야 하는 험난한 곳이었던 것은, 우선 이곳을 항해할 만큼의 항해장비 등 모든 것을 갖춘 큰 배의 숫자 자체가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치는 풍족치 못했던 우리나라 해운계의 궁색했던 점이 큰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원양항해에 임하는 모든 국적선은 이곳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60년대에 느꼈던 그런 어려움은 그야말로 지나간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어제 밤의 동진(東進)으로 유니막 패스를 통과하며, ‘아! 이제 미국에 다 와 가는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곳이지만, 반대로 미주에서 극동으로 오면서, 서진(西進)으로 이곳을 들어 설 경우 ‘아! 이제 북태평양 저기압의 쓰레기통에 들어서서 날씨와 씨름 질을 시작해야 하는구나.’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는 황천항해를 언제나 생각해두는 것은 여전히 그때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항해에 임하면서 마치 이곳 항해를 못해본 자는 용감한 뱃사람에 아직 입문도 못한 것으로 간주하던 그런 풍토도 그때는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사용하던 항해 계기라고 해봐야 변변한 것이 별로 없고, 있다고 해도 고장이 잦은 고물 배의 고물 계기였으니 육감과 경험으로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이었겠는가?


지난 항차와 이번 항차를 통해 두 번의 유니막 통과를 갖게 되는 삼항사에게 이곳의 통과 감상을 물으니 지난번에는 첫 삼항사로 승선하여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워서 감상을 느낄 여유가 없었단다. 이번 항차 겨우 브리지가 눈 안에 들어오는 듯싶은 심정에 경치 감상을 할 만한데, 그만 어두운 밤에 통과하니 그것 또한 여의치 않아 아쉬울 뿐이란다.


30 년, 한 세대 전인 1960년대만 해도 상용으로 사용되는 전파항해기기는 연안에서 레이더가, 육지에서 2-300마일 떨어진 곳까지는 로란, 데카 등으로 선위 산출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처럼 지구의 어느 곳에 있어도 위치가 확인되는 GPS 같은 전천후 전파 항해계기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따라서 대양 항해시는 기상 상황에 구애받는 천측 항법을 구사하며, 그야말로 눈감고 달리는 추측항법(DEAD RECKONING)을 곁들여서 달렸으니, 낮에는 시간 따라 태양을 관측하여 정오 위치를 내었고, 아침저녁의 일출, 일몰시에는 미리 계산해 두었던 별들의 위치와 고도를 참조하여 수평선을 깨끗이 확인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 내에 실측을 바쁘게 끝내야만 위치선들이 구해졌다. 이들을 푸로팅 차트에 옮겨 하루 서너 번의 실측 위치를 구하곤 하였다.


날씨라도 나쁘면 며칠씩 눈 뜬 장님 신세로 전락하여 선속과 항주 시간, 해류도, 측심선등을 참고하며 추측 항법으로 항해하다가 기상이 회복되면 부리나케 육분의(六分儀, 섹스탄트 Sextant)와 스톱워치를 들고 해와 별의 관측과 계산으로 부산을 떨곤 하였다. 따라서 며칠씩 추측으로 그려 넣던 위치를 천측에 의해 실제 위치를 내어서 바꿔 넣어질 때의 그 기쁨을 요사이 항해사들은 결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금성이란 별이 있다. 하늘에 있는 별 중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별이기에 -밤이나 새벽이 아닌 엄연히 태양이 떠 있는 시간에도- 좀 어렵긴 해도, 섹스탄트 위에 올려 관측할 수가 있는 별이다.

며칠 계속되던 흐린 날이 바뀌어져 해가 나오던 날, 그 방법으로 위치선을 찾아내어 비슷한 시간에 구한 태양의 위치선과 교차시켜 확실한 선위를 구해낸 적이 있다. 담천(曇天)에 의해 답답해하며 피를 말리던 위치에 대한 목마름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내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줬던 그 날은 지금도 잊지 못 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아무 때나, 어떠한 곳에서도, 선박의 위치확인이, 가능한 전천후 계기인 GPS가 있기에 아주 편한 마음으로 대양 항해에 임하고 있다. 그런 너무 편리함이, 우리 생활에 나태(懶怠)함을 불러들인다는 우려를 갖는 세대와, 쓸데없는 늙은이들의 공연한 푸념(?)이라 치부하는 젊은 세대 간에, 이따금 조그마한 오해들이 생기기는 하지만. 풍요와 편리 속에 태어난 신세대의 현실은 그런 옛날을 살아온 나와 같은 늙은 항해사들에게는 그저 부러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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