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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분수를 모르는 추월선

항해사들은 늘 본선의 성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by 전희태
추월선.jpg 본선 우현쪽에서 좌현쪽으로 앞서서 빠져 나가는 배. 이 배는 본선보다 월등히 빠른 속력으로 쉽게 앞서서 가버린 상황이라, 이야기의 배와는 상관 없는 선박이다.

선명 M/V LUNA VERDE, 선적항 MANILA .

크레인 네 대가 설비된 화물선이 000도로 북상중인 본선 선수의 왼쪽 10도 정도의 방향 2 마일 거리에서 009도의 침로로 만들더니 계속해서 비스듬히 우리의 앞쪽을 가로질러 오른쪽 방향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그런 행위를 하는 그 배를 보는 마음이야, 어디서 저런 배가 다 있어? 이지만, 아직은 우리의 앞쪽에 있는 배라 우선적으로 본선의 선수를 왼쪽으로 틀어준다. 빨리 오른 쪽 방향으로 들어가서 안정을 취하도록 협조 동작을 취해준 것이다.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우선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동을 취하는게 법조문을 따지기 이전에 해야 할 바람직 한 일이기에 취한 행동이다. ARPA(Automatic Radar Plotting Aids : 자동 충돌 예방 항법 장치)를 위시한 전자장비로 계속 그 배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그 배의 상대적인 성능을 계속 체크하며 실제 성능의 수치도 비교해가며 따져본다.


본선보다 월등하게 빠른 배도 아닌데, 아니 오히려 느린 배인데, 타선의 선수를 무단 횡단하는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였기에 아무래도 더욱 더 주의 깊게 감시하게 된 것이다. 어느새 본선은 미리 그어 놓았던 예정한 침로상에서 왼쪽으로 제법 벗어나 있다. 원침로에 올리기 위해 진침로 009도로 정침 시켜도 별 이상 없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시행 시켰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달렸을 즈음, 계속해서 슬금슬금 뒤로 쳐지기 시작하던 그 배는 어느새 우리 뒤 0.5 마일로 떨어져 간다. 이제 뒤로 쳐진 상태가 계속되면서 더욱 거리가 벌어졌으니, 서로간의 충돌 위험성은 없어지는 상황에 들어선 것이다. 따라서 좀 한가하게 그 배를 체크해도 되겠지만, 아직 까지는 눈길이 미치는 범위에 들어 있으니, 눈밖으로 완전히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고 당직 서라고 당직사관에게 지시 한다.


역조류를 심하게 받으며 속력이 11놋트 까지 떨어져 있었든 동안, 잠깐 앞선 듯 했던 그 배는 결국 본선보다 빠르지도 못한 속력으로 제법 빠른 척 폼을 재보며 우리에겐 많은 숙제를 안겨 주었던 셈이다. 본선 당직사관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남의 앞을 가로질렀다는 불만을 토로 했지만, 중요한건 앞질러 간 것 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잘못 판단하고 있던 그 배 당직사관의 당직관이다.


너무 근접해서 선수를 크로싱(가로지르기) 한다는 것이 충돌, 접촉 사고를 발생 시키는 근본적인 원인 제공을 만든다는 걸 그는 모르거나 아예 그런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대양에서 만나는 타선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에서 제일 먼저 취할 행동은, 설사 반가운 아는 사람이 타고있는 배일지라도, 반가운 인사를 보내기에 앞서, 우선은 충돌 할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구조물이란 인식을 언제나 머리속에 입력하고 응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에 따르는 모든 안전 조처를 취하고 난 후, 반가운 인사도 나누며 다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상식을 우리들은 당직 수칙의 하나로 언제나 요구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배의 당직사관은 당시 자신의 배가 우리 배보다 조금 앞에 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우리의 침로를 앞에서 가로 질러가는 무모한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만약 우리 배에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당직사관이 있어서, 앞에 있는 배이니까 무사하게 우리 앞을 가로 질러 갈 수 있겠지~ 식으로 간단하게 판단하고 등한한 당직에 임하게 되었다면, 우리 배의 빨랐던 만큼의 속력에 의해 두 배는 얼마 못가서 어~ 어~ 하며 반갑지 못한 입맞춤을 했을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나 아닌 다른 모든 구조물은 언제나 나와 충돌을 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물표란 점을 항상 머리에 담아두고 당직을 수행하라고 당직사관을 교육 시키는 동안, 분수 모르고 촐랑거리던 배는 보이지 않는 저 뒤쪽 바다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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