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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미역국을 먹으며

배안에서 맞이한 생일

by 전희태
DSCF0031(2786)1.jpg 생일축하 장미바구니 - 배에서는 꿈도 못꾸지만...

1998.12. 8

항해중인 배 안에서 아침 식사를 미역국으로 받아 들며 생일을 자축하고 있다. 지금부터 57년 전에는 어머니가 미역국을 잡수셨던 바로 그날이요, 역사적으론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여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다. 늘상 먹던 된장국 대신 미역국이 차려진 아침식사로 생일이라는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가볍게 흔들어 주는 선체의 진동을 생일 축가라도 불러주는 가족들의 손짓으로 느끼기로 하며 미역국을 후르륵 입안 가득 채워본다. 미역의 독특한 향을 즐기며, 매년 생일을 맞이 할 때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생일이여 빨리 찾아오라! 며, 반갑게 기다렸던 세월도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생일이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기쁘기 만한 일은 아닌, 그런 분위기로 아침을 맞이한다.

남은 세월이 지난 시절보다 훨씬 짧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슬픈 것 같은 마음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억울해 한 들 아무런 도움이 될 일이 아니니 마음을 다잡아 남은 순간이나마, 헛되이 보내거나 아쉬움을 더하지 않게 살아가자 다짐하며 미역국을 또 한 입 떠 넣는다.

지난번 하동항을 떠날 때 처제를 통해서 구입했던 광양 감을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돌아가게 모듬으로 내어, 생일 선물로 전 선원들의 점심 식탁에 올려 주도록 했다.


이제는 이렇게 생일 날의 즐거운 음식 나눠먹기 등을 스스로 하면서 사람들과의 유대도 더욱 다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지만, 오늘따라 만나는 얼굴마다의 <선장님, 생신을 축하 합니다!>라는 인사가 왠지 쑥스럽기만 하다. 생일이면 생일이지 내가 언제부터 생신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버거워진 것이다.


이번에 연가로 내릴 사람들의 교대자 명단이 왔다. 헌데 일항사는 없고 2항사가 있다.

새로 온다는 2항사는 지금 이항사보다 일 년 후배로서 졸업 때 항해과 일등을 한 친구이란다.

또 한 명의 사명 교대자인 기관수는 전에 우리 배를 탔던 사람인데 동료들 간에 화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던 인물이어서, 연가 후 다시 배승 시킨다고 했을 때 거절했던 친구이다. 이번에 다시 보낸다고 하니 할 말이야 많지만, 더 이상 거부한다는 말도 하기 싫어 그만두기로 했다.


어딘가 선원인사부서와 우리 배의 관계가 좀은 껄끄러운 느낌으로 여겨지는 마당에 자꾸 이야기해서 좋을 것도 없겠다는 판단에서 한 결정이다. 예전의 인사부서 멤버가 모두 바뀐 사람들로 채워져,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르기에 그런 생각은 나의 일방적인 짐작일꺼라 여기긴 하지만, 싫다는 사람 또 보내려는 인사는 사실 싫다.


어쨌거나 오늘, 나와 같이 우리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기억시켜 둘 방법으로 선원명부를 여기에 덧 붙여본다.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희)귀하지, (태)어나며 선내신문 가진OOOOO호

이 제 부터는 (의)로운 일도 발굴하고 (철)학적인 삶에도 도움이 되게

손 수 참여 해오는 (동)료 선원 여러분의 (진)솔한 마음을 기다립니다.

장 차 우리에게 남겨질 (원)대한 꿈의 결실을 (준)비하기 위해서

윤 활유 같은 살신성인의 (용)기 갖추고 (덕)망도 한 켜 두 켜 쌓아 올리며

안 팎으로 닦이어 질 (상)큼한 우리들 모습을 (동)경하시라 벗님네들이어

박 수소리 (우)레 같다고 갑론을박 안 할테니 (종)종 들려 힘찬 격려를

서 슴없이 치 달리는 (광)야의 거칠음 조차 (재)활용하는 한솥밥 동지여

김 매음에 땀 흘린 (동)녘 땅 아낙네들 열(렬)심히 가정도 이끌어 오신

우 리들의 어머니여! (성)공한 자손 우리라는 걸 (만)시지탄 눈치 챘네요.

장 보고 드높던 기개 (해)상 왕으로 군림한 역사 (정)확히 우리도 재현!

박 장대소 웃음 있어 (재)벌 부럽지 않고 종일토록 달리는 (우)리 생활 속

맹 위를 떨쳐오는 (의)심스런 바람도 (수)줍게 만들어 돌려보내며

주 먹 안 써도 이겨내고 (봉)사정신 투철하고 (효)도심 마저 강한 뱃님 네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우)리 모두는 (영)락없는 대한의 아들딸이다.

송 송 돋는 땀방울을 (종)일토록 흘려도 (필)수적인 인내심은 우리의 덕목

김 서린 (창)안보다는 (용)감함이 밖에서 더욱 빛나는 앞장선 선구자여

김 치와 된장 신토불이 (송)이버섯 감칠맛 (연)연히 이어진 우리의 전통

황 해가 옆 마당인 (정)의의 뱃님네야 (희)희낙락 웃음으로 사랑합시다.

김 새는 소리 내지말고 (종)점 도착까지 (필)연으로 만난 인연 보전 하면서....

우리는 한솥밥의 스무 명이랍니다....


맨 앞은 성이요 중간에 괄호 친 것이 이름이다

20 명의 성씨가 각각 14개의 성으로 이중에, 김씨가 5명으로 제일 많고, 박씨와, 장씨가 각 2 명, 그 외의 성으로 맹,서,손,송,안,우,윤,이,전,주,황,이다.


대한민국 성씨들 참 많이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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