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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관의 임검

어느 곳으로 가도 보다 강화되는 Inspection에 임하는 자세

by 전희태
G%C7%D7%C0ǰ%F8%BF%F8(1194)1.jpg 항구의 공원 언덕으로 야외학습 나온 초등학교 어린이들

호주의 검역은 무선검역 요청 전보와 허가 답신만으로 검역업무가 끝나는 게 아니라 무선으로 요청한 본선의 상황을 검토하여 우선은 지체 없이 부두에 접안해도 좋다는 접안 허가를 의미하는 GRANTED 를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도 이곳 도착 사흘 전에 이미 그 신청을 내었고, 그 날짜로 부두접안 허가가 나왔었다. 그러나 접안 후에 실제로 방선하여 임검을 한 후 검역증을 교부하는 게 원칙이다.


좀 늦은 아침 운동을 끝내고 선미 쪽으로 나가다 보니 쓰레기를 모아 뒤치다꺼리를 해놓은 모양이 영 마음에 안 들게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종이 박스들을 많이 내다 놓았는데 제대로 정리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팽개쳐져 있다. 심지어는 비닐에 싸여 있는 상한 키위의 모습도 몇 개 그 박스 안에 포장되어 있던 상태 그대로 버려져 있는 것도 눈에 뜨인다. 얼른 방으로 돌아와 땀만 닦아 낸 후 식사하러 내려가 일부러 조리장을 불러, 그 이야기를 해주며 얼른 치우라고 지시한 후 밥을 먹으려는데, 어느새 검역관이 승선해 왔다는 당직사관의 보고가 전해져 온다.


통신장에게 응대하도록 연락을 하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면 늦을 것 같아, 식사를 미루고 내가 직접 응대하려고 사무실로 갔다. 젊은 호주인 검역관이 서류를 꺼내어 뒤적이며 기다리고 있다가 선장의 직접 접대 해옴에 예를 표하며 맞이 해준다. 아직 공무원의 일과 시작인 아침 9시가 되려면 한 시간 30분 이상 남아 있는데 나타난 검역관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우선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되는 이들의 사명감이 깃든 태도이다.


본선 후부에 쓰레기를 오늘 아침 일과 중에 뒤처리 하려고 쌓아 놓은 것이 있다고 먼저 선수 쳐서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종이 박스들을 깨끗이 비닐에 싸서 정리를 해놓으란다. 나의 짐작대로 그는 이미 본선에 올라오면서 쓰레기를 집하하는 장소인 후부 갑판에 가서 혼자 점검을 하여 좀 전 내가 살펴본 후에 바로 조리장에게 지적하며 대응하도록 지시했던 사항을 체크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본선에서 쓰레기 처리 과정을 선장부터 잘 알고 대처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인 셈이니 결과적으로 우리 배를 적발하지 않고 잘 봐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주게 된 셈이다.


이런 경우 본선의 책임자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경우 그들은 그 사항을 지적사항으로 하여 본선의 당직자나 선장으로부터 자인서를 받아내어 처리하려고 할 것이고 그리 되면 모르긴 해도 제법 되는 벌과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이곳을 기항하며 쓰레기 때문에 잔소리하고 계속 감독한 첫 번째 이유가 그런 지적을 받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뜻이 컸었는데, 예측했던 일이 발생했으면서도, 입건은 안 되고 넘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검역관은 검역에 관련된 본선 증서와 서류까지 면밀히 점검한 후, 현장으로 옮겨 취사실, 냉동고, 건식품의 보관 상태와 쥐나 바퀴벌레의 흔적이 있는지 등을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검역 통과증을 발부해주었다.

이번 케이스 같은 경우를 미국에 기항하며 만났다면 어땠을까?

몇 년 전 미국 서부 컬럼비아 강의 어느 항구에 기항 했을 때의 일이 새삼 기억난다. 노인네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 세어서 그런 일에 투입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미 정년퇴직을 넘겨도 한참이 지났을, 배에 오르내리기조차 불편해 보이는, 전직 해기사 출신이라는 노인네가 승선하더니 갑판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확인시키며 500 불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떼를 쓰는데, 속이 꽉 막힌 그 아저씨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 벌과금 부과를 막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선박에서의 쓰레기 처리 규정은 어쩌면 육상에서의 규정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엄격한 것 같다. 아니 엄격하다. 또 엄격해야 한다, 이는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서 해양이 최후의 보루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선원들 인식은 그를 뒤따른 커버를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염두에 두고 해내야 할 일이 쓰레기 뒤처리라는 걸 이렇게 시행착오의 일을 당하며 깨치게 되는 거겠지.


우리가 검역관의 승선으로 검역업무에 바빠하고 있는 동안에도 타선박의 입출항은 계속 이어지니, 마침 우리 뒤쪽의 부두인 1번 선석으로 접안하기 위해 터그보트를 옆에 달고 들어오던 현대 상선의 현대 프로스페리티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배를 불러 이런 상황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밖에 투묘 중에도 이번 항차 PSC 준비를 한다고 바쁘다는 이야기를 했던 배라는 점과 지금 바쁘게 접안을 위한 작업에 몰두해 있는 상황임을 알기에, 그냥 잘 하고 있겠지 하는 마음에 번거롭게 부르려던 일은 그만 두었다.

그 배도 우리 배와 마찬가지로 무사히 검역관의 승선 임검이 끝나기를 바래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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