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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님, 닻이 급히 끌리고 있습니다!

당직 항해사의 보고를 대하는 선장의 자세

by 전희태
%B1׷%A1%B5彺%C5%E6%C1%A2%BEȼ%B11(2842)1.jpg 투묘대기 후 내항으로 옮겨져 부두에 접안한 모습

어제 초저녁 닻이 끌렸던 일로 인해 밤새 잠을 자면서도 그 사실이 머릿속에 남아있어 뒤숭숭하니 선잠 속을 헤매다가 눈을 떴다. 그래도 습관대로 새벽 세 시에는 어김없이 깨어났다가, 자리에 다시 눕기 전에 창밖을 유심히 살펴 주묘가 또 있을까 걱정스레 살피니 바람도 많이 잦아드는지 배 옆을 스쳐 지나는 파도가 그렇게 흉물스럽지가 않다.


안심한 마음으로 오늘은 게으름 피우며 아침까지 늦잠을 자련다고 작정하며 자리에 다시 누웠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따르릉 울린다.


-선장님, 닻이 굉장히 빨리 끌리고 있습니다.

이항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알았어, 곧 올라가지.


좀처럼 믿기지 않는 마음을 서두르며 잠옷 대신 입고 있던 남방셔츠에 그냥 바지만 얼른 걸치고 방을 나선 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대충 빗질해주며 브리지를 향한다. 조타실로 들어서기 전에 바깥부터 살피니 마침 항해등을 켜주고 조금씩 움직이는 배가 한 척 눈에 들어온다. 출항하는 배라는데 커다란 Bulker(살물선)로서 우리 배가 들어가야 할 크린톤 부두쯤에서 떠나 나온 배일 것으로 짐작된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살펴본 바다나 바람이 생각보다는 많이 잦아들고 있어 도저히 닻이 끌릴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의아심이 생긴다. 일단 다시 한 번 위치 확인을 차분히 하여 GPS 와 육지, FAIRWAY BUOY를 가지고 낸 위치들을 서로 비교해 보라고 좀 흥분해 있는 이항사에게 지시하며 레이더에 접근한다.


6 마일 거리로 놓여진 X-BAND 레이더의 환한 화면에 두 척의 정박선과 새로이 출항하는 선박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있는데 BUOY(부표)들의 모습은 희미하여 계속 관찰한 경우가 아니면 잘 모를 정도로 감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로 보여 준다.


-죄송합니다. 제가 출항선을 FAIR WAY BUOY로 착각하여 닻이 끌린 걸로 잘못 알았습니다.


위치 확인차 CHART ROOM(해도실)에 들어갔다 나오던 이항사가 뒤통수를 긁으며 죄송하다는 표현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며 자신의 주묘 보고가 잘못 되었었음을 사과하며 미안해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X X, 그런 것도 구별 못해? 하며 우선 쥐어박는 선장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 판단을 위한 확인 작업만을 계속 하였다.


이윽고 이항사의 판단 잘못에 기인한 보고였다는 결론을 내리며 안심한 마음이 되었고, 어쨌거나 자신의 당직에 열심히 임하여, 비록 잘못 판단을 하긴 했지만, 위험한 경우에 취할 조처를 선장이 즉시 할 수 있도록 연락한 점은 높이 사서 한마디 해준다.


-그래도, 수고했어. 본의 아닌 허위보고(?)를 했지만 위험하다고 판단 될 때는 우선 보고부터 하는 자세가 꼭 필요한 일이니 잘 한거야~ 수고해라.


어제 초저녁에 발생했던 주묘사건에 대해 신경을 과도하게 쓰고 있었음도 감안하고 선박의 안위와 관계된 일은 언제 어디서라도 책임자인 선장에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 설령 결과로서 아무 일도 발생치 않았더라도 보고한 일은 잘한 일로 남는 것이니 질책성 언급은 피하고, 오히려 잘했다고 다독여주며 계속 당직을 잘 서도록 유도해준 후 브리지를 내려온 것이다.


아침 8시가 되니 바람도 확연히 수그러들며 파도도 생선의 잔 비늘처럼 예쁘게 무늬를 만들어주고 있다. 예정하고 있던 기관 작업(피스톤 발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있다. 대리점으로부터 접안 계획이 변함없음을 연락 받자말자 기관장에게 오늘 하루 안에 기관정비 작업을 끝내도록 단서를 부치며 작업 허가를 내주었다.


기상상황이나 현지 항만 규칙과 기타 모든 안전사항을 감안하여, 본선의 자체 인원만으로 단기에 이루어내야 하는 런닝 리페어(Running Repair)는 이렇듯 주위의 눈치를 봐가며 실시해야하는 어려움을 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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