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혼을 돌아가면 ...>중간 점검.
우리나라에서 호주를 기항하기 위해 다니는 바닷길 길목 중에 파푸아 뉴기니 동북쪽 비스마르크 해 언저리를 지나게 될 때면 LONG ISLAND라는 이름을 가진 섬을 만나게 된다. 해도상에 그려진 모습을 보면 기다랗게 누워있는 섬으로 좀 깊게 파인 등고선이 낮게 표시된 곳을 섬의 중앙부에서 보게 되는데 이는 화산 폭발로 생긴 분화구에 생겨 있는 호수라는 걸 직감할 수 있는 모습이다.
언제부터 인가 자주 다님으로써 점점 낯이 익어버린 이 부근을 지나칠 때마다,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 섬의 꼭대기에 머무르고 있는 구름들을 보며, 독특한 그 형상에서 섬 안에 갇혀 있지만 풍부한 물이 있는 호수를 상상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하니 살아가는 내 모습을 대입해 보며 친근감을 키워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그 섬에 대한 정보는 그 섬의 중앙부에 커다란 호수를 품고 있을 거라는 해도상에 그려진 그림 정보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만나게 되는 변화무쌍한 구름 모습 이상은 없건만, 그렇듯 만남의 홧수가 점점 더해질수록 늘어나는 묘한 반가움이 그곳을 내 이상향으로 만들어 반가운 해후의 항해를 즐기게 하는 것이다.
사실 그 섬에 대한 더 이상의 앎은 없기에, 관련 수로지(水路誌)를 뒤져서 그 섬에 대한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해야 할 만큼 그 섬의 존재가 해도상 위험하거나 긴히 다루어야 할 만큼의 안전을 저해하는 일도 없는 곳이므로 더 이상의 정보는 갖거나 찾지 않고서도 늘 반가운 마음으로 안전하게 해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거기에서 모든 문명의 생활을 버리고 동화 같은 자연의 삶을 살면 어떨까?를 상상해보는 재미 역시 갈수록 늘어나, 당직 중인 주위 사람들에게도 상상에 동참해 보라고 부추기기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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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는 항행의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따라 상상의 재미 역시 달라지고 있으니, 내 왕국을 세웠다가 허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곳을 지나치곤 하였다.
캐이프 혼(Cape of Horn)을 돌아가면 무엇이 있는지를 추구해 봄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미 찾은 것도 같고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 더 있을 듯싶은 마음 때문에 그리 제호를 붙이며 태어났던 페이퍼 <케이프혼을 돌아가면 뭐가 있나?>였다.
이제 <싸이월드>의 사내 결정으로 그 페이퍼가 없어지게 되면서 블로그로 넘겨진 환경으로 변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 삶의 이야기를 조그맣게나마 계속 얹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이어지므로 야박스레 떨쳐내질 못하고 써 나간 게 어언 1000호가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간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가?
생각하고 뒤돌아 보면 무척 변한 게 많구나! 이해되면서도 하루 이틀로 반복하며 살아온 경험은, 매일이 그 날 같아 보였으니, 변한 걸 모름에 빠져드는 생활로 일관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1000호를 채우면서도 아직 돌아가야 할 케이프 혼 뒤 쪽을 확연하게 보여주질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마음 들기에 따져 보았었다.
<케이프 혼>을 찾아가는 방법은 동서남북 반대의 방향 어느 쪽으로 가도 결국은 만날 수 있는 둥근 지구의 한 곳이네. 그러니 이미 어느 쪽으로 든 지 돌아가 주는 여정을 나도 모르게 보여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무렵 명퇴라는 명제가 나를 찾아와 그 바닥을 떠나게 되었는데.....
어쩌다 요즘 다른 직종의 직업인들과는 달리 명퇴당했던 우리가 다시 예전 직책으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좁게나마 생겨나, 혹여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운 직종-선원-으로 비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가져 본다.
이제 새로운 안목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가능할 때까지 그 이야기를 이어 볼 참이다. 그리 긴 세월은 아닐 터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다시 배를 타고 떠나서 새롭게 보고 들으며 경험하고 돌아온 내년의 연가 때쯤이나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