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리의 안전한 출항 준비를 함.
4. 두리호 안전한 출항 준비를 함.
배의 나이만을 생각해서도 그렇지만, 추위에 움츠렸던 마음이 품게 된 부정적인 안목으로 봐서도, 두리는 어딘가 모자람이 많은 어정쩡한 모습이긴 해도, 나름대로 거주구역을 정돈하고 다듬은 모습도 있어서 승선 첫인상을 그런대로 호감 쪽으로 돌려세워주고 있었다.
어쨌거나 세월을 따라서 바람직한 역사도 만들며 지나간 28년을 살아왔을 두리호.
그녀의 마지막 가는 곳까지 동행해 줄 만남을 위해 집을 떠나든 날은 하늘도 맑았지만 대기도 초봄을 무색하게 만든 따뜻했던 형편이라 다시 귀국하는 때만을 겨냥해서 추위 대비를 소홀히 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었다. 그런데 이를 호되게 나무람이나 하듯 상하이 공항은 제법 쌀쌀함으로 마중하고 있었다.
이제 그 추위를 다 떨쳐내고 포근한 잠자리를 파고 드니 편안해진 마음은 덜컹거리는 하역 작업의 소음마저 자장가 삼아 들려주며 그대로 고른 숨에 빠져 들게 하였다.
새벽이 찾아왔다. 습관대로 눈도 저절로 떠졌다. 몸을 일으켜 간단히 세면을 하며 몸매를 고친다.
물안개에 의탁했던 어둠이 슬며시 옅어지며 여명이 자리 교대를 해줄 무렵 단출한 옷차림 되어 선실을 나섰다. 선내를 내 나름대로 한 바퀴 돌아보려는 발걸음을 아래층으로 옮기기 시작한 거다.
당직 중이던 낯선 얼굴의 미얀마 선원들이 공손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 온다. 그들은 이미 교대해 오는 새 선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나를 향해 서슴없이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만나는 대로 답례를 해주며 갑판으로 나갔다. 거의 모든 중국 바닷가 항구가 갖고 있는 듯한 특유의 흐릿한 안개를 품은 새벽이 싸늘한 한기를 내뿜으며 대들듯이 다가선다.
밤새도록 쿵쾅거리며 퍼내 주던 철광석을 이제는 저 아래쪽 더욱 깊어진 선창 바닥 위에서 퍼 올리는 GRAB의 분주한 모습이 흔들리며 떠 오르고 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이런 뿌연 날씨와 닮아있는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양자강 흐름을 따라 떠나야 하는 일만이 남는다.
밀물로 드는 물 따라 강 상류 쪽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던 작은 배들의 모습이 점점 뜸해지는 게 아마도 물때가 바뀌는 모양이다.
중국의 속내를 닮은듯한 들여다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장강(양자강)의 물길 따라 제 갈길 찾아 쉴 새 없이 우리 옆을 스치듯 지나다니던 크고 작은 선박들의 바쁘게 달리는 모습들이 좀 뜸해지고 있는 거다.
선수 쪽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돌리는 눈길 속으로 퍼뜩 이 배의 한 가지 특징이 들어선다. 대부분의 CAPE SIZE 선박은 선수 갑판이 주갑판에 이어진 채 약간의 RISING FLOOR 형식을 도입하여 약간의 물매를 가진 평평해 보이는 선수루인데 비해 이 배는 FORECASLE DECK가 한층 더 솟아 있어 그야말로 탄탄한 성곽처럼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은 철판을 더 써서 배를 만들었겠지만……
60년대 한국 해양대학 연습선(실습선)이었던, 당시 국내에서 몇 등 안에 드는 큰 배로 위용(?)을 자랑하던 반도호 실습을 하면서 친근해 있었던 쓰리 아일랜드형(*주 1) 선박의 선수루를 보는 것 같은 다정함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위에 설비된 윈드라스(권양기)의 모습까지 그럴 싸 하니 든든하게 여겨지지만, 사실 현대의 조선술에서 스리 아일랜드형의 선박 건조는 기피하고 있는 타입인 듯 거의 만나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해서인 듯싶다.
*주 1 : THREE ISLANDER 형 선박
선박의 갑판상에 솟아 있는 세 부분인 선수부와 중앙부 그리고 선미부에 각각 선수루, 선교루, 선미루를 만들어서 마치 밋밋한 선체 갑판상 세 부분을 솟아나게 설비하여 그 구조물들의 실루엣이 나란히 서있는 세 섬과 같은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선 운항 준비를 위한 메모 사항.
여러 가지의 선박 안전 점검과 그에 따른 장비의 개방검사를 돈을 들여 시행해가며 마지막 항해를 준비.
안 할 수 있다면 그냥 못 본채 넘겨버려서 그만큼의 경비를 절약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항차라도 안전하게 끝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중간에 기항하는 싱가포르에서 안전점검도 대비하여 두 개의 라이프 라프트 개방검사와 SSCEC (SHIPS SANITATION CONTROL EXEMPTION CERTIFICATE. 구서 면제 증서) 발급을 위한 모자라는 장비를 구입하는 데 구색을 맞추기 위해 미화 770달러를 지불함.
즉 본선은 아직도 원양항해에 종사하는 경우이니 선박 및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그런 점검이나 안전상황이 요구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므로 법에 맞게 준비를 진행한 것임.
본선은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와 접안 한 난통(南通)항에서 교대를 위해 서울을 떠나 찾아와 부두와 시내에서 기다렸던 교대 선장과 3 기사를 받아주곤 밤새도록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 철광석 양하 작업에 임하였음.
밤이 지나 아침이 되니 출항할 수 있는 날짜가 정해지며 하루를 더 묵은 후 오전에 출항할 수 있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그 계획대로 순조로이 진행된 작업은 바쁘게 출항 작업에 우리를 매달리게 했다.
그런 와중에 탱크에 물을 넣어줘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저성능을 과시하는 발라스트 펌프의 작동으로 흘수의 예상한 조작이 불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파이로트 레더를 도선 보트에서 원하는 수준까지 내려주는 일이 힘들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그것도 또 다른 비상의 방법으로 해결하여 한밤중에 무사히 그들을 내려주고 출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