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난통(南通)을 출항
5. 난통(南通)을 출항
어제 새벽에 아침 운동을 겸해 선수루를 둘러볼 때에 그럴싸하니 보아주었던 윈드라스(권양기)였는데, 실은 그 파워가 길이 27.5미터인 한 개의 앵카 샤클을 끌어올리는데 왼쪽 것은 7분 오른쪽 것은 9분이 걸린다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윈드라스 파워는 앵카 체인 1샥클 올리는데 3분 이내에 할 수 있도록 설비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헤아림이 있었다. 이번 항해를 마칠 때까지 닻을 사용할 경우가 몇 번 있을까?이다. 닻을 올리며 겪는 늦은 권양속도는 그만큼 애간장 태우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원 교대와 선용품의 선적, 하륙 등을 위해 싱가포르에 중간 기항할 때에 한번 사용할 것이고, 그다음은 마지막 항구인 치타공에 도착하여 제반 수속을 하려 할 때 또 한 번 쓸 것이고, 아마 마지막 폐선장에 도착해서는 닻은 쓰지 않고 그냥 몸체(선체)로 육지에 올릴 것이므로 결국 최소 두 번은 사용할 것이다.
이제 그 정도의 사용상 어려움은 각오하고 떠나야 할 결심을 굳히며 다음 현황 파악으로 옮긴다.
MOORING WINCH와 HATCH COVER 개폐용 동력인 유압계통이 한 라인으로 되어 있어서 시간에 쫓기는 입출항시 등, 급하게 사용할 경우 문제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경우는 하역작업이 끝나는 그때마다 즉시 해치커버를 닫아주어 나중 출항 시에는 계류용 윈치로만 쓰도록 조작해두면 되겠다는 결론을 떠올렸다.
3월 말 일로 기간이 만료되는 24인승 구명벌(LIFE RAFT) 한 개와 선수에 있는 6 인승 구명벌(LIFE RAFT)한 개에 대한 개방 검사를 회사가 정비업체에 의뢰했었기에 그 물건들을 하륙하러 찾아온 업자들에게 물건을 내려주도록 한다.
사실 이번 항차가 마지막 항해이니까, 어쩌면 구명벌이 그 정도의 기간이 넘은 상태로 떠난다고 해서 실질적으론 큰 문제를 야기시킬 거란 생각은 안 하지만, 그래도 인명 안전에 대한 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게을리할 수가 없는 일이니 회사는 적법하게 처리한 것이다.
우리 회사가 앞장서서 그런 일을 처리해주는 상황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회사에 따라서는 폐선하는 경비절감을 이유로 본선에서 어찌 적당히 넘길 수 있는 방법을 택하도록 은근히 강요하는 곳도 있는데 정식으로 해주니 현장의 마음은 그만큼 가벼운 것이다. 저녁때 하륙시켰던 구명벌들이 제대로 안전 점검이 완료되어 두 개의 새로이 발급된 증서와 함께 배로 되돌아왔다.
새벽 두 시경에 모든 하역 작업이 끝나고 예정했던 아침 10시의 출항이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우선 열려 있는 해치커버를 모두 닫아주도록 하여 나중 출항 시 계류 윈치와 사용이 중복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을 진행시키며 대리 점원의 승선을 기다린다.
두 명의 도선사가 승선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청년들이다. 본선의 컨디션 상황을 설명하며 선속을 최대 10노트라 알려 줄 때는 좀 미안한 감이 든다. 제대로 된 매뉴버링 속력으론 좀 미약한 편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자기의 말만 하느라고 내 알림의 이야기에 좀 등한하고 있었다. 우리 배의 앞에 에스코트하는 터그가 한 척 있고 가까이 접근하는 소형선들을 쫓으려고 스피드를 가진 보트까지 있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그냥 흘려 넘기며 들어준 거다.
-올 라인 렛고!
드디어 출항을 위한 첫 명령이 떨어졌다.
그 두 사람의 파이로트와는 선수루에 특별 경계 팀을 운용하면서 상하이 쪽과 난통 쪽을 이어주는 SUTONG 대교 밑도 지나며 다섯 시간 가까이 함께한 후 헤어진다.
이어서 그들과 교대하여 이번에는 상하이 쪽 소속 해양 도선사 한 명이 승선한다.
배는 그렇게 양자강의 흙탕물을 순조를 타고 잘 내려왔지만 이제 다시 들기 시작하는 물에 맞닥뜨리며 속력이 저조해진다.
더딘 속력이나마 흐르는 시간에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상하이로 들어가는 길목도 지나쳤고, 드디어 양자강 하구에 도착한다.
강 하구의 강한 조류를 감안하여 배를 밀려가는 반대편에다 도선 모선을 두고 안전하게 접근할 때 도선 모선을 떠난 도선 보트가 다가온다.
-도선사 무사히 하선했습니다.
도선사를 배웅하려 갑판으로 내려갔던 3 항사의 보고를 들으니, 종일 밀려 있던 피곤 함이 밀물이 다가오듯이 갑자기 몸을 덮쳐 오는 기분이다.
이제부터는 도선사의 도움 없이 앞길에 나타날 바글거린다는 표현이 알맞은 어선들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내가 담당하여 계속해야 할 판이다.
이미 강하게 들기 시작하는 조류는 10노트쯤의 선속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제 흐르는 방향으로 마구 밀어붙인다.
어둠 속이지만 배가 밀리는 걸 느낄 정도로 선위의 변화가 극심하여 원 침로에다 30여 도를 더 메겨서 정침 하는 조타 명령을 내려준다.
갑자기 전화벨의 낮은음이 조용한 브리지의 정적을 깨며 울려 나온다.
별다른 보고 사항이 없을 이런 시간에 누군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전화벨을 울리는 거지? 그런 식으로 생각을 굴려보지만 아무래도 편하지 않은 소식이 전해질 것이란 짐작에 슬그머니 짜증이 나서고 있다.
사실 이런 경우의 전화는 별로 원치 않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편이 많다는 걸 내 경험은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응답의 말을 주고받고 있는 3 항사의 전화 통화에 귀를 기울인다.
이 배의 브리지에 올라와 처음 만나게 된 긴급상황은 그렇게 전달되어 왔다.
통화를 끝낸 3 항사가 기관실에서 온 연락인데 주기에 이상이 생겨 투묘한 후 고장개소를 체크하여 수리한 후 출항해야 할 거라는 일기사의 보고라고 말을 전한 것이다.
귀로는 3 항사의 전언을 들으면서도, 눈으로는 각종 계기의 지시 침들이 흔들리는 모양을 확인하려고 머리를 들어가며 계기 보드를 살핀다.
마침 주기관의 회전수를 표시해주는 지시 침이 90까지 올라갔다가 체머리 흔드는 사람 마냥 계속 뒤뚱 이는 모습으로 80까지 떨어짐을 반복하며 어둠 속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직 항로 입구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고 어선도 많으니 좀 더 안전한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냥 쓸 수 있는 알피엠으로 줄여서 계속 나가도록 하자고 전해라.
3 항사가 기관실로 전화를 걸어 그런 명령을 전한다.
내 지시대로 기관실에서는 알피엠을 낮추어 계속 전진을 하도록 엔진을 써준다.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어느 정도 항해의 위험상황도 해소되고 항로도 벗어났으며 투묘할 수 있는 투묘 지도 가깝게 다가와 있다.
TRAFFIC 당국을 불러 본선이 엔진 이상으로 투묘하겠다고 하니 안전하게 투묘하고 보고하라는 전언을 준다.
투묘할 준비가 다 되었으니 기관실에서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자고 전하는데, 전화를 받은 기관장은 지금 상황에선 그대로 계속 움직여 아침 밝은 다음 드리프팅(엔진을 세우고 그냥 물 위에 떠있는 상황)하며 수리해도 될 것 같다는 새로운 보고로 응답해 온다.
그것은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 固所願)이라, 그렇다면 더 이상 투묘에 연연할 필요는 없어 보이니, 아침까지 계속 항해하여 좀 더 육지와 어선과 모든 어려움과 많이 떨어진 곳에서 기관수리를 하도록 하자는 기관장의 말에 기꺼이 동의해주기로 한다.
아침 출항 때부터 브리지를 지켜 서느라고 식사 때나 겨우 오르락 거리던 당직 상황이 종료되며 쉴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찾아온 거다.
당직을 삼항사에게 넘겨주며 브리지를 떠나려는 데 갑자기 다리가 후둘 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껏 모르거나, 잊고 있었던 신체의 피로한 긴장감이 옅어 지며 나타나게 되는 신체적인 반응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