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나의 리오그란데 방문은 배를 타고 항구를 찾아와서 투묘하여 기다린 경우였다면 그 위치가 남위 32도 12분. 서경 53도 02분. 위치를 중심 한 1마일 원 안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이곳에서 승선하여 교대해줘야 하는 입장인 데다 어찌 되어 내가 먼저 도착하여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 되면서 항구가 아닌 시내에 머무르고 있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기다림으로 인해 며칠을 묵어가며 보내야 하는 시간이 생겼다. 일부러 관광을 위해 찾아와 둘러볼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어지는 그 기다리는 시간이니 주위를 둘러 보리라 작정을 해 본다.
어쨌거나 리오 그란데라는 이름은 지구 상 몇 곳이 더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이곳이 어딘가 정겨움이 묻어 있고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하는 그리움이 배어 있는 곳이다.
30여 년 전.
강한 조류의 영향으로 부두에 묶어 놓은 계류삭이 선내 윈치에서 풀려나면서 선수를 저만큼 부두로부터 벌어지게 하는 일이 발생하여 혼쭐 빠지게 놀라며 계류삭을 정리해봤던 기억이 새삼스런 곳이기도 하다.
전 선원이 참여하여 다시 윈치를 돌리며 합심해서 끌어당기는 수선을 피워가며 겨우 원위치로 안전하게 붙잡아 매었던 기억이 그런 아기자기한 리오그란데란 이름에 대한 내 추억의 시작이다.
그때는 물론 배를 조선하여 입항하는 바닷길로 찾아 들은 경우로 콩을 싣고 떠난 것이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 공로와 육로를 이용하여 직접 배를 찾아와서 승선한 후 역시 콩을 실은 상태로 해로를 따라 빠져나가기 위해 찾은 것이다.
예정과 달리 계속 늦어지는 접안 시간 때문에 배를 만날 수 없는 나는 시내의 한 곳 호텔에 머무르게 되어 시간이 많은 관광객 같은 마음으로 시내 관광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빈터만 나면 만들었나 싶게 많은 작은 공원이었고, 어떤 것은 숨어 있듯이 주위에 파묻힌 어울림으로 별로 눈에 안 뜨이게 서있지만 어떤 것은 첨탑도 높다랗게 위용을 자랑하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성당의 모습으로 이곳이 가톨릭이 많은 신자를 거느린 나라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헌 도시와 새 도시가 함께 어울려서 서로를 양보하며 사는 것을 미덕인양 보이는 건지 적어도 수십 년은 넘어 보이는 건물에 페인트 칠을 하여 리모델링 한 모습도 많았다.
전기 줄이 얼기설기 두텁게 들이닥친 오래된 건물의 외양이 그래도 의연하게 기죽지 않고 살아 생동하는 모습을 느끼게 하였지만 제법 큰 성당의 외양을 사진 찍으려 하다가 너무나 수없이 얽힌 전선 때문에 망쳐진 스카이 라인이 아쉬워 그 성당의 사진 찍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신구의 뒤섞인 공존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시내를 의연히 활보하여 자동차와 같이 운송수단으로 아직도 활발히 쓰이고 있는 마차들의 모습이다.
말의 양 눈의 바깥쪽으로 안대를 세워서 앞쪽만을 보도록 옆으로 나가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지만 달리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의도를 잘 따라 불평 없이 거리를 제대로 구보로도 달리고 있었다.
마차는 두 바퀴짜리로서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을 싣거나, 짐을 잔뜩 실은 채 달가닥 거리며 잘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묵고 있는 HOTEL VILLA MOURA의 창 밖이 환해지는 듯싶고 떠들썩한 말소리도 섞여 있어 새벽이 찾아왔나 커튼을 들치고 내다본다.
삼거리가 합쳐진 모퉁이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무장한 괴한으로 보일 정도로 헬멧으로 앞가림을 한 두 사람을 태운 오토바이가 그들이 지껄이는 큰 소리의 말들을 거리에 뿌리며 지나치며 내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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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들의 안하무인 격의 떠들썩거리며 지나치는 모습에서 예전 산토스에 기항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 오른다.
승용차를 운전하며 네거리에서 교통 신호 대기 중일 때 오토바이를 타고 접근한 괴한들이 총으로 위협하여 할 수 없이 강도를 당했었다던 그 교민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며 그 모습이 비교되는 이들의 모습에서 무서움을 발견한 것 같다.
하나 이곳에서도 은행에 들어가려면 일방통행의 회전 도어를 통해야 하고, 그러기 전에 손에 들은 물건은 미리 경비원에게 물건만 넣게 되어있는 작은 회전 틈새를 이용하여 넘겨주어 그들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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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사에 패스해야 은행 문에 들어설 수 있고 그 후에 검사시킨 물건을 다시 받아 들게 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나라의 치안이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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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도시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250년 정도의 역사를 가졌다는 데 시내에 있는 옛날식의 붉은 벽돌로 지은 10여 층이 넘는 건물을 골격은 그대로 둔 채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모습에서 무조건 부시고 새 건물로 짓는 우리네와는 다른 감각을 보며 그것만큼은 부러울 만한 일로 치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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