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집을 떠난 후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며칠씩 생각지도 못했던 호텔 생활까지 하다가 이제 겨우 배를 바라고 호텔을 나서니 이번 여행의 종착지가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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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처음 대면하든 저녁 무렵.
어스름 저물어 가는 석양의 잔광에 살짝 노출된 선수가 부두의 끝 앞쪽으로 삐죽이 나와 있다. 검은색 선체 바탕에 흰색으로 쓰여 있는 선명을 보며 반가움에 앞서 내 마음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는 미흡한 무언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갸웃하게 만든다.
배에 승선하고서도 전에 타던 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반갑기는 하면서도 그런 미흡한 마음은 계속 나를 의아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젯밤에 선적작업은 다 끝이 났지만 출항은 아침에 하기로 한 항만당국의 처사로 새벽 6시부터 설치기 시작한 이안(離岸) 작업에서 하마터면 미처 끌어들이지 못한 계류삭이 조류에 떠 밀리면서 선미 수중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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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류삭이 프로펠러에 감기기라도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대형 사고가 날 뻔하는 건데, 도선사가 지나가던 라인 보트를 불러 얼른 끌어당겨주도록 요청하여 화를 면한 것이다.
그 보트에서 잘 협조하여 준 덕분에 다행히 사고 없이 이안 작업이 끝나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출항했었다.
바쁘게 보내야 할 연락 전문들을 우선적으로 수습하여 보낸 후 한숨 돌리는 여유를 찾으면서 정상적인 움직임에 들어서고 있는 배의 윤곽을 브리지에 올라 확인해 본다.
바람은 뒤바람이지만 만만치 않은 기세로 허연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거품 문 미친개의 기세처럼 해면을 덮고 있는 바람꽃이 순간적으로 당혹하게 만든다.
그렇긴 해도 어디까지나 뒤바람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가며 확인하듯 바라보니 선체의 움직임은 아직은 견딜 만하다.
하얗게 뽀송뽀송 일어 난 파도들을 모두 우리 배의 무사한 출항을 빌어주려고 증정이라도 받은 꽃다발의 잔 꽃송이쯤으로 여기려는 여유를 부려보는 건, 먼 배경이 되어준 하늘이 맑고 푸르기 때문에 걱정이 덜어져서 일 거다.
갑자기 아하~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랬구나 어딘가 미흡한 듯한, 그야말로 상술에 떠오른 문구인 2% 부족한~ 이란 카피라이터를 생각나게 하는, 지금 내 마음에 들어서 있는 부족해 보이는 것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선수까지 쭉쭉 신나게 뻗은 무난한 키 크기나, 선체 좌우 양현으로 당당한 몸매를 자랑하는 선폭도 만만치 않게 큰 축에 드는 배로 보이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 계속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이유가 드러난 것이다.
선수 쪽을 향하고 있든 내 시야에 들어 있는 이런 씨. 저니호의 생생한 현실이 나에게 2%가 부족하다는 의미를 확연히 깨우쳐 주는 계산을 요구해 온 것이다.
씨. 저니는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계속 승선해왔던 케이프사이즈 선박에는 비교되지 않게 작은 파나 막스 형 배라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이 그 배들과는 대조되는 상황을 보이고 있음을 숫자적으로 확인하라고 다그치는 기분이 들은 것이다.
배의 형태 모습 모두가 케이프사이즈와 비슷하지만 숫자로 대변되는 내용에서 차이가 나 지금 보이는 모습 어딘가에는 작아서 경쾌하고 우람하지 않고 아담한 모습을 띄우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찾아낸 것이다.
마치 2% 부족한 것이 어떤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 광고라도 만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속으로 나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씨. 저니는 키(선체 길이)는 225미터 이요. 선폭은 32.24미터, 흘수 깊이는 19.1미터로 7해치/7 홀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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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케이프 사이즈도 가지고 있는 길이 270 미터 선폭 45미터 흘수 23미터와 9해치/9 홀드 짜리와 비교하려니 다윗과 골리앗의 대비쯤 되는 건 아닌지 싶다.
사실은 오늘 아침에 씨. 저니가 작은 배라는 것을 확연히 느낀 경험을 하며 이마에 혹도 달았었다. 양변기에 앉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으려고 머리를 숙이는 순간, 갑자기 꽝! 하고 머리가 부딪히며 순간적으로 번갯불이 튀었고 순식간에 혹이 솟아 난 아픈 경험을 한 것이다.
옆에 있든 세면기에 이마가 찧어진 것이다. 그만큼 스페이스가 작아졌다는 이야기임을 깨달으며 이제 이 배가 작은 배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 안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긴 해도 콩을 59,455톤이나 싣고 떠나는 항해에 들어선 씨. 저니호를 보고 작은 배라고 떠드는 건 어쩌면 나 혼자 만의 느낌만을 내세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6만 톤 가까운 짐을 싣고 있다는 거로 보면 씨 저니도 결코 작은 배일수가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크기로 따졌기에 그리 된 것이다.
내가 케이프사이즈 배만 타면서 세월을 보낸 타성에 물든 때문에 그렇지, 올챙이 항해사 시절 처음으로 탔던 그야말로 천 톤 단위의 배들과 비교한다면 씨. 저니도 궁궐 같은 배인 것이다.
사진 : <뿌연 대기를 보여주는 날씨는 바다로 나가려면 몇십 마일 내려가야 하는 강 위에서 노니는 갈매기의 모습에 어두운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Photo by Capt. J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