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후 첫 소식 집으로 보내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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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를 팽팽하게 SHORE LINE으로 붙잡게 해주어 부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돌핀의 모습>



오늘 아침에 먼저 선장은 나와 공식적인 인계/인수의 교대를 끝내고 우리 배를 떠나 자신의 집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지난번 승선했던 배도 그 선장한테 인계받았는데 이번에도 같은 사람한테 인수를 받게 된 인연이 모처럼 그냥 같지 않은 느낌에 그가 가는 길을 배웅해주려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부두의 초소까지 같이 나갔다가 나만 들어오는 걸로 교대를 끝내었습니다.


배로 돌아오는 그 몇 분간 내 머리 속에는 나도 저렇게 집에 가는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날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미소를 띠워 보았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열심히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도 그런 날이 돌아올 것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자고 다짐했으니 그대로 잘 될 겁니다.


그동안 바람도 불고 비도 좀 내려서 작업하는 데 지장이 있었지만 이제는 날씨가 많이 풀려 모레 오후경의 출항할 때까지 잘 지내다 떠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전(80년대 초에)에 처음으로 와 본 곳이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살릴 건더기가 아무것도 없군요.

그때는 선원들과 함께 상륙하면서 불고기 해먹을 수 있게 양념해서 만든 고기를 싸 들고 바로 배가 접안 한 부두에 이어진 천연 방죽으로 나갔었죠.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육지의 방죽 어디쯤이 내 옛 추억이 배어 있는 곳 같은데....... 지금은 출입금지의 구역에 속하고 있다.>


배가 빤히 쳐다 보이는 그곳에서 흙구덩이를 파고 돌을 쌓아준 위로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워가며 조촐한 파티를 시도해 봤었는데 지금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낼 수가 없도록 변했고, 안다 하여도 다시는 그렇게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게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경비가 삼엄한 곳이 되어 있네요.


더하여 배에서 먹을 것을 반출하는 행위 역시 검역법상 아주 큰 처벌 깜이 되는 일이니 생각할 수도 없는 범법 행위가 되겠지요.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 같구먼요.


하긴 이런 내 예전의 기억들은 모두가 아름답게 채색된 그림 같은 느낌으로 떠오르기에 그 아름다움을 다시금 대하고 싶어 져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더불어 찾아보게 되지만 현실의 상황은 너무나 퇴색된 초라한 그림을 대하는 것 같은 실망만을 만들어 주곤 하더군요.


그렇게 달라져 보이는 것이 내 노화에 따른 감각기능이 퇴화되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일까?라는 생각으로 풀이도 해보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역시 그만큼 색깔이 퇴색하고 아예 어두운 톤으로 많이 물들어져 버려서 그리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드는군요.


그래서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자연 그대로의 초록빛이 넘치는 건강한 환경을 그리워하는 거고 그런 곳에서 함께 어울리는 삶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겠지요.

당신이 큰애랑 다녀왔다는 광양의 매실-매실이 아님-따던 곳도 그런 꿈을 키워 줄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으로 여겨집니다 그려.


고사리까지 꺾으면서 즐거웠다니 내가 함께 못하고 빠진 것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답니다.

하여간 그 수확 물들을 다음번 연가 중에는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가을에 감이 나는 철에도 가 볼 수 있다면 가보세요. 아니 가 보겠다고 지금부터라도 예약(?)해 두세요. 우리 집 감나무 두 구루로는 성이 차지 않는 내 욕심이 과한 건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우리 배는 이제 여기서 콩을 한 5만 8천여 톤을 싣고 출항하면 한 달쯤 후에 중간 기착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기름을 받고 주부식도 실어준 후, 콩을 부려줄 중국으로 갈 겁니다.

늘 다니던 곳이지만 전에 타던 배들과는 화물의 종류가 달라졌으니 부두 역시 조금 변할 거라 여기고 있습니다.

배가 좀 작아진 셈이니 (오래전에 승선했던 오션 코리아 정도의 배랍니다) 이제 다닐 수 있는 곳도 그만큼 더 많아진 셈이라 매우 바쁘게 다녀야 할 것으로 여겨지네요.


이제 정식으로 이 배의 선장이 되어 당신께 신고하니, 당신도 앞으로 자주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카메라 건은 그런대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놨지만, 메모리 두 개를 모두 지워 버릴 수 없는 사진을 찍는 데 사용하여 포맷을 할 수가 없군요.


그 두 개는 젖혀두고 우선 한 개만으로 재사용키로 했습니다. 싱가포르에 기항 시에 한 개를 또 구입하여 교대로 사용할까 하는데 이 이야기를 둘째에게 해주어서 내 형편을 알게 해주세요.

오늘은 여기서 안녕하려는데, 당신 말마따나 내가 꿈속으로 가려한다고 해서 이제 한창 한낮의 일 할 당신한테까지 잘 자라고 인사할 수가 없네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한 하루를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우리들의 두 분 어머니에게 각별한 내 안부를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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