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님, 7번 선창에 불이 났습니다

선상작업에선 항상 깔끔한 뒤처리가 필요하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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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런 훈련을 열심히 시행하여 언제라도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두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리오그란데에서 콩 59,455M/T을 싣고 6월 5일 아침 8시에 떠나서 하루 밤을 미쳐 다 보내기도 전인 6일 새벽 3시이다.


어느새 네 시 방향으로 바뀐 바람과 파도로 인해 선체가 좀 심하게 흔들리고 있어 이미 잠에서 깨어난 상태로 침로의 보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면서 응답하자마자,

-선장님, 7번 창 좌현 선수 쪽 해치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급한 2 항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알았어 올라갈 게.

전화기를 놓기 바쁘게 옷을 주어 입고 브리지로 향하는데,

-아텐션 올스테션, 화이어 스모크 애트 넘버 세븐 해치.

2 항사가 전 선원을 향해 알리는 아나운싱이 나온다.


일순 브리지를 향해 뛰어 올라가는 내 머리 속에는 화재 원인에 대해 두 가지 방향에서 짐작이 떠오르고 있다.


출항 전에 창내의 수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람낵테이프를 부착할 때 산소와 아세틸렌을 이용한 불 작업을 한 후유증이거나, 아니면 검역을 위해 약품으로 훈증했는데 그 약품으로 인한 일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해보며 브리지에 올랐다.


현장 지휘 반인 일항사의 초기 보고가 즉시 올라온다. 현장반 선원들도 다 집합해 있고 준비한 소화 호스도 팽팽하니 부풀어 있어 언제라도 물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소화 훈련은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어 흡족한 마음도 들지만, 함부로 선창에 물을 넣는 행위는 두 번째 재해를 야기하는 일도 될 수 있기에 내가 내려가서 판단하기 전에는 물을 사용하지 말도록 지시하며 현장으로 내려간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있다.

불이 난 것이 아니고 훈증작업을 하고 떠난 뒤처리에서 화학제품을 함부로 버려두고 간 일 때문에 생긴 연기였던 것이다. 모두들 느닷없이 새벽에 깨어난 일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성거리며 일항사가 나한테 보고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원인은 내가 짐작했던 것 중의 한 가지인 방역 물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Hydrogen Phosphide =PH3 (Phosphine)라는 이름의 이 화학제품은 물에 넣는 방법으로도 방역에 사용하는데 이때 용제가 일부 물 밖으로 노출되면 불꽃을 보이는 화학 작용을 한다는 주의 사항이 있었다.

(실제 사용한 약품의 제조 제품명은 Aluminium Phosphide 였다.)

방역을 끝낸 일꾼들이 남은 물건을 회수해 가지 않고 그냥 7번 창 해치 코밍의 틈새에 넣어 버리고 갔는데 그것 위에 뒤바람과 함께 몰아쳐 온 파도가 갑판 위로 올라와 그 물건을 적시면서 낸 화학반응으로 인한 연기였던 것이다.


한참 곤하게 자고 있던 출항 첫날의 새벽이었지만 훈련 아닌 실제 상황으로 생각하고 모두들 뛰어나와서 화재 진압 작업에 임하려는 선원들을 보며 평소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절감한다.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이기 가장 어려운 시간이기에 당직으로 깨어있는 몇 사람을 빼고는 참여치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전 선원이 다 나온 것이다

.

배가 많이 흔들리며 갑판 위로 물이 올라오는 상황인 것을 감안하여 선원들이 안전하게 갑판의 현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화재 아나운싱을 할 때 이미 침로 보정도 함께 실시해 주었기에 선체의 움직임이 많이 순해져 있었다.

상황 끝임을 알리며 모두 무사히 각자 방으로 돌아가도록 해산 명령을 내리고 다시 브리지에 오른다.


출항지인 리오 그란데에서 직선거리로 약 240마일 떨어진 해역인 32-37S, 047-30W의 남대서양 한 귀퉁이에서 한바탕 꿈을 쫓아낸 새벽의 해프닝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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