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넘는 항해에 생각난 일들-1-

by 전희태
090612-A1_0121.jpg 순항 중인 모습




3371.jpg 브라질을 떠나기 전에 찾아본 성당.



090612-A1_0251.jpg <선원 식당의 한가한 모습>



리오 그란데를 출항할 때에 처음 실으려 예정했던 58,500 MT의 콩을 59,455MT으로 1,000톤 정도 더 싣게 되어 만족한 마음으로 출항에 임하게 되었다. 이제 별 탈 없는 운송으로 마무리 지으며 수화 주에게 안전하게 화물을 넘겨주면 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브라질의 리오그란데 항에서 중국의 닝보 항까지 가는 항로지만 중간에 싱가포르에 들려서 연료유와 다른 보급품도 실은 후 찾아가려는 예정을 가지고 있다.


중간 기착지인 싱가포르로 가는 동안 동, 서의 명칭이 붙지 않는, 자오선 중의 자오선인 세계 표준시를 시작하게 만드는 그리니치 메리디안-즉 본초자오선(THE FIRST(PRIME) MERIDIAN)-을 대서양 상에서 통과해야 한다.


이선을 기점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180도씩 나누어 그어진 대권(大圈)이 이른바 지구 상 경도로 동서 반구로 나누게 만든다.


각각 동경/서경으로 이름 붙여 나간 경도는 180도까지 되어서 태평양에서 하나로 모이게 되는데 이 선은 동서를 구분하지 않는 날짜변경선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본초자오선과 날짜변경선은 서로 지구 상의 정반대 편에 존재 하지만, 지구를 동반구와 서반구로 가르는 축이고, 남극 점과 북극 점에서 서로 하나로 이어져 있는 동일 대권을 두 개로 갈라 이름 붙인 것일 뿐이다.


이번 항차 그리니치 자오선을 통과할 때까지 위치의 표시에는 계속 서경 몇 도 몇 분이란 명칭이 붙지만 일단 본초자오선을 통과하면 그 표기가 동경 몇 도 몇 분이란 명칭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선위는 근본 위도인 적도 남쪽에 있었기에 남위 몇 도 몇 분으로 적어오다가 인도양 마다가스칼을 지나 북상하며 적도를 통과하게 되면서 북위 몇 도 몇 분으로 바뀌는 그야말로 지구 상 위치 표기의 동서남북을 모두 바꿔가며 써야 하는 화려한 변화가 있는 항해이다.


그 두 가지 일, -본초자오선과 적도의 통과-을 완수하며 가야 할 거리는 9,192 해리가 되므로 우리 배가 짐 싣고 달릴 수 있는 현재 속력으로 한 달이 넘는 날짜가 소비되는 장거리 항해이다.


그 거리를 킬로미터로 환산한다면 1해리= 1.852Km이므로, 9,192해리 X 1.852Km=17,024 Km


거기에 싱가포르를 출항 후 첫 번째 양 하항인 닝보 항까지는 또 2,129마일이란 거리가 있고 다시 두 번째 양하 항인 난통까지의 거리 236 마일도 보태져야 이번 항차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2129+236) X1.852=4,380Km 여기에+17,024=21,404Km 즉 지구의 한 바퀴 둘레인 40,000Km의 절반이 넘어서는 거리인 것이다.


이것이 이번 항차 짐을 싣고 움직여야 하는 우리 배 행적의 밑그림이 되는 예정이다.


결국 먼저 비행기로 리오그란데를 찾아갔던 20,000Km가 넘어선 거리까지 합쳐지면 중간에 30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4시간 정도 자동차로의 이동이 포함되긴 했지만 주로 비행기와 배라는 두 가지의 탈것을 이용하여 완성될 지구 한 바퀴 돌기의 기나긴 여정이 되는 셈이다.


그것도 계속 한쪽 방향인 동쪽을 바라고 달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구 위에서 동쪽을 향해 계속 움직인다면 중간에 하루라는 날짜를 반복 사용하게 된 후(날짜변경선을 통과하면서) 그대로 마무리 짓는다면 이야기 상으론 남보다 하루를 더 더불어 살았다고 해야 될 게 아닐까?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영화가 있다. 원래 주울 베르느의 원작 소설인데 이런 날짜변경선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에 이야기가 반전되는 대목이 있다.


80일간에 세계일주 완주를 놓고 두 사람이 내기를 했는데 여행을 시도한 경쟁자가 여행을 끝내고 도착했을 때는 약속했던 12시가 몇 시간 지났기에 내기에 진 것으로 알고 포기했다.


다음날 아침 모험가는 날짜변경선을 통과하여 얻었던 하루가 있었기에 늦지 않게 도착한 셈이 되어 내기에 이기게 되었다는 반전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렇게 지구를 돌아서 같은 자리에 왔다고 해서 하루라는 시간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을까?

대답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 되어야 한다.

간단히 생각해서 떠날 때의 시간에다 실제로 돌면서 쓴 시간을 합해서 나온 시간이 바로 도착한 시간이 되는 것이니 동진하여 중간에 날짜변경선을 넘어 날짜를 한번 더 썼었더라도, 또는 서진하여 반대 방향으로 돌아 하루를 아예 건너뛰는 일을 당했더라도, 시계를 현지 시간에 맞추어 돌려준 만큼 명목상의 시간은 길어질 수도 또한 짧아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결국은 같은 장소에 도착하면 그냥 그 자리를 비우고 있다가 돌아온 것 밖에 안 되는 것이므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문득 삼천갑자 동방삭이 삼 년 고개(주*1)에서 넘어져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옛이야기의 계산법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주*1 :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삶이 주어지지 않는 이름하여 삼 년 고개라는 곳이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조심스레 그 고개를 넘다가 그만 실수하여 넘어졌다. 아이는 실망 낙담하며 자신 앞에 3년 밖에 남아있지 않은 날짜를 헤아리며 슬피 울고 있었다. 한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어떤 노인네가 말을 건 냈다.


-한번 넘어져서 3년이라면, 두 번 넘어지면 6년이 될 거고 그럼 세 번 넘어지면 몇 년인고?


아이는 그 말을 듣고 그 고개를 다시 찾아가 위에서 아래로 마음 놓고 굴러 버렸다.


결국 삼천갑자(삼천 환갑),18만 년이라는 명줄이 이어지게 되도록 살게 된 그 아이가 바로 동방삭이다. 기왕지사 이야기 나온 김에 그런 동방삭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아보자.


너무 오래 살아 그 명줄이 다해 가게 되었어도 세상을 너무 잘 알아 요리조리 죽을 곳을 빠져나가는 그를 잡아들이기 위해 저승사자가 나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도 머리가 있는 한 저승사자가 마지막 방법으로 동방삭이가 잘 다니는 길목에 있는 개울가에다 숯 더미를 쌓아 놓고는 흐르는 물에다 품을 들여 가며 정성껏 숯을 씻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계속 그런 행동을 하는 저승사자를 몰래 지켜보던 동방삭이 어느 날 그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을 건넨다.


-아니 무얼 하려고 숯을 그렇게 씻고 있는 거요?

물어보는 동방삭을 물끄러미 돌아다보든 저승사자가,


-이게 너무 새까맣게 더러워서 하얗게 되도록 씻어 내려는 겁니다.

한숨을 곁들여 가며 대답하는 저승사자를 보고,


-예끼 여보 슈! 나는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숯을 빨아 하얗게 만든다는 이야긴 여태껏 들어보질 못 했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나섰던 삼천갑자 동방삭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어이쿠 자네가 동방삭이 맞구먼! 이제 돌아갈 때가 다 되었네 어서 같이 가세나~.

그렇게 하여 동방삭은 저승사자에게 잡혀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지요.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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