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친구가 다 있어?

어쩌다 만나게 되는 인격 파탄자(?)

by 전희태
090712 F8_0281.jpg 열심히 일하고 서로 간에 사이도 좋은 필리핀인 선원들



도착 예정항인 닝보항 바깥인 접근항로 부근에 군사훈련을 위한 항행 제한구역이 설정되어 우리 배가 도착할 예정인 15일까지도 계속된다는 전문을 대리점으로부터 받았다.


그 제한 구역을 피하여 접근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해도를 참조하려고 새벽에 브리지에 올라가니 당직 중이던 필리핀인 일항사가 아침 인사를 한다.


이제 슬슬 시작되는 여름철 불청객인 태풍의 씨앗이 되는 TD(열대성 저기압)가 폭풍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을 WEATHER ROUTING 회사의 기상상황 안내 전문으로 받은 것을 챙겨서 올라갔기에 그것부터 펼쳐서 해도에 그려 넣어보며 우선 오늘내일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건 아니라는데 의견이 통일되어 한시름 놓는다.


화제를 바꾸며 일항사가 심각한 얼굴이 되더니 Crew Evaluation 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다. 그 발음도 그렇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말이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잠깐 어리둥절한 상황에 든다.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키니 선원 평가를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말을 한다.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챌 인물을 생각해 보는 데, 역시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바로 그 친구를 들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이항사와 같이 항해당직을 서는 필리핀인 조타수에 관한 사항인데 이야기인즉 좀 황당한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


브리지에 있는 냉장고에는 항해당직 근무자들이 마실 물이나 음료수가 들은 캔이나 병이 항상 넣어져 그들이 근무 중 수시로 음용에 사용하고 있다.


관례상 근무자들은 개인위생 차원에서라도 각자 혼자 사용하는 생수 물병을 챙겨서 넣어두는 게 관례이라 타인은 이걸 사용치 않고 있는데, 마침 물을 마시려던 일항사가 자신의 끓여 넣은 찻물 물병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평소와 마친가지로 무심히 꺼내어 마시려던 중에 이상한 냄새를 느끼게 되어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그 물병에 이물질을 넣어 색깔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일항사는 그게 오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갑판장과 브리지 근무자를 모두를 불러서 물어보는 과정에 심증으로 지목하고 있든 조타수의 표정을 지키며 살펴보는데, 그는 그 물병을 들어 냄새 한번 맡아보더니 얼굴색이 벌겋게 변하면서도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대로 개수통에다 그 물(오줌?)을 부어 버려 증거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생한 일이니 심증만으로도 그는 꼼짝없이 물병에 오줌을 넣은 범인으로 지목받아 마땅한 행동을 한 셈이 된 거다.


평소 주위의 동료들과 화목하게 지나지 못하고 한 번씩 언쟁을 만들어 말썽을 일으키며 자신이 할 일은 남에게 미루고 하여간 배를 탈 수 있는 매너를 가진 사람이 못 되는 친구인 것은 그동안 배에서 두 번인가 나온 큰소리 언쟁의 상대역이 늘 그 친구였다는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이제 그들을 감싸주고 품어주어야 하는 입장의 같은 나라의 일등항해사에게까지 버림받게 된 그 친구의 신세가 참말로 딱하게 여겨지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하선시켜야 되겠다는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과정이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행동하는 때문에 받은 왕따 때문은 아닌지 살펴보려는 마음도 들지만, 우선 이 배를 책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생각은 같이 탈 수 없는 사람이니 빨리 하선시키는 게 제일 나은 결정이 될 거라는 생각부터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처음 승선해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빙긋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는 척 인사를 하는 걸보고 호감을 가졌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웃음기 띄운 표정마저 가식과 자기 자신을 남에게서 감추려는 거짓의 연기로 보여 이제는 그런 얼굴의 그 친구를 대하면 섬뜩해지는 내 형편도 싫은 정도를 넘어서 있다.


이미 그들 필리핀 동료 선원 사이에서도 열외 취급받고 있는 일종의 성격파탄자로 보이는 친구인데 일등항해사의 결론은 이렇다.


-그 직급으로 승선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앞으로 승선은 불가라고 당국에 보고 하겠다.

-자식도 둘이나 있기에 당장 해고시키는 것은 딱한 일이긴 하지만 선내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예전에도 승선 중인 배에서 방출당한 일이 있는데 아직도 자신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남이 마시는 물에 이물질을 넣는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이 이번 귀국하면 해항청 인사담당자에게도 이런 상황을 보고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당하긴 했지만, 하선 조치라는 극단의 결말로 나서지 않는 모양새는 아무래도 끝장내는 악역까지는 고사하고픈 속내를 보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실 수상쩍은 성격파탄자 같은 상대방이니 일항사가 연가로 귀국했을 때 혹시 다시 해코지를 당하는 일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한발 물러서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보게 한다.

일항사는 금 항차 중국에 기항할 때 연가로 하선 예정이니까 막말로 미운 친구 안 보게 될 수 있는데 구태여 끌어내려 같이 귀국하는 비행기로 함께 하는 마지막 악역은 맡고 싶지 않아서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라 짐작되는 것이다. 그리 짐작하는 내 마음이 너무 야속한 것은 아닌지... 인사 문제의 야속한 구구절절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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