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강구에 도착하여 투묘하다
19일 오전에 닝보를 떠나 그날 밤 10시 반이 넘으며 도착해서 닻을 내린 곳 이름하여 장강구(長江口 CHANG JIANG KOU) NO.1 묘박지에는 먼저 와서 닻을 내리고 있던 많은 종류의 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장강이라는 이름이 양자강(揚子江)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입구를 뜻하는 구(口)를 썼으니 여기가 양자강 하구의 삼각주가 발달해 있는 곳의 바깥인 것이다.
레이더 화면을 통해 찬찬히 검토하여 마침 다른 선박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투묘할 수 있는 바람직한 공간이 있는 곳을 찾아내어 접근을 시작했다.
야간에 접근하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조심하는 마음이 앞서 미속으로 조선(操船)하다 보니 내가 생각해도 좀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했다.
드디어 <LET GO ANCHOR!>의 명령을 내리니 촤르르~ 앵카 체인이 쏟아져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10톤의 무게를 가진 닻이 떨어져 내리며 주는 약간의 둔중한 충격이 선수로부터 전해져 온다.
C.J.K NO.1 묘박지 안의 북위 31도-09.7분, 동경 122도 38.5분 위치에 그렇게 닻을 내렸다.
WU SONG VTS (SHANGHAI VTS)에 투묘 보고를 마치고 나니 이곳에 도착하는 마지막까지 걱정했던 어선들의 숫자가 적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중국 연안을 항해하면서 제일 골칫거리가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느낌을 주는 어선 떼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사방을 둘러봐야 아무것도 바다와 다를 것 없는 수평선에 둘러 싸인 곳이지만 이곳은 양자강의 물줄기가 바다로 물을 뱉어내고 있는 하구인 삼각주 바깥이다.
황해(黃海)라는 이름 그대로 물빛이 누렇게 불투명한 곳으로 낚시를 담가주고 아무리 유혹을 해도 입질하는 고기가 없기에 어떤 항구라도 외항에 도착하면 닻을 내려주기 바쁘게 낚시를 드리우는 선원들도 여기는 포기한 곳이다.
하여간 우리가 찾아가야 할 최종 목표는 이곳에서 파이로트를 태우고 강으로 들어서서 116마일을 더 달려야 하는 곳에 있는 이름하여 NANTONG(南通)이라는 곳이다.
그곳 NANTONG까지 가기 전에 왼쪽으로 빠져 황포 강으로 들어서면 일제의 강점기에 그들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려고 독립 투쟁을 하던 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숱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가 회자하든 고장,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인 상하이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또한 내가 해양대학 다닐 무렵이던 60년대 초반의 시절엔 우리를 가르치시던 1~2기 출신의 선배며 교수이시던 분들이 곧잘 추억을 회고하며 이야기하시던, 당시에는 가 볼 수 없는 금단의 땅에 속하던 상하이(上海), 바로 그 항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야기로 들으며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치부만 해두었던 곳, 당시의 정세로는 결코 가 볼 수 없었던 국교가 단절된 적성 국가에 속한 금단의 땅이기만 했던 것인데....
그분들의 이야기에 솔깃하니 동경심도 부풀려 봤지만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안타까움 속에서 그래도 배만 타고 있으면 언제인가는 마음대로 그곳을 찾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다려 보던 바로 그곳이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그렇게 찾아가 볼 수 있는 곳이 되어 있는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무색하게 불가능해 보이던 상해 방문의 뱃길이 어느새 열려버려 옛날 그곳을 동경하며 배를 타고 찾아볼 수 있기를 갈망하던 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상하이를 지나쳐 상류로 한나절을 더 가야 하는 곳을 목적지로 삼고서 지금 이곳에 와서 기다리느라 닻을 내려준 것이다.
< 난통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게 되는 수통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