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항에 대한 호불호
그래 봐야 일 이년 전쯤이던 해운경기가 한창 활황이던 시절에는, 통상적으로 지금 이 시간 같이 한 항차가 끝날 무렵이 되어 그 항차의 마지막 항구 외항에 도착하여 기다리는 시기쯤 이면, 이미 다음 항차에 찾아갈 항구가 결정되어 알려졌고, 그렇게 미리 대비해가며 모든 사전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헌데 요즘은 짐 보다도 배의 선복량이 훨씬 많은 시절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사항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영업부에서 목표로 삼고 있는 US GULF의 NOLA(주*1) 지역에서 콩을 싣고 중국에 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름 계산을 해보라면서 새어 나왔지만, 그 소식을 들은 선원들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미국에 기항하는 것을 별로 싫어하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 차 항의 비즈니스가 확정될 시점이 코 앞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미국 기항이 거의 그렇게 결정될 것으로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런 분위기에 때 맞춰주듯 위성전화의 벨이 울린다.
이 전화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부서가 영업부이라 당연히 그곳에서 온 전화 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점잖게 받아 들며 응답을 한다. 역시 내 짐작대로 영업 부서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다른 화물에 대한 사전 계산을 요청해 오는 걸 보니 아마도 미국행은 좌절된 것 같다.
호주 퀸스랜드 지역 항구인 그래드 스톤에 가서 석탄을 싣고 중국 리자오에 가는데 필요한 기름 계산을 해봐 달라는 이야기를 해온 것이다.
-미국 노라 선적 건은 확정이 안되었습니까?
아무래도 궁금한 마음에 물으니
-Bidding(비딩)에 실패하여 FAIL 되었습니다.
라는 대답이 온다.
해운 시장에서 화물을 놓고 각선사들이 서로 자신이 생각하는 운임으로 베팅하여 당사자들의 의중이 맞아떨어지면 그 화물의 운송권을 갖게 되는 것인데 아마도 운임 제시가 다른 낙찰자보다 좀 많았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 나는 다시 새로운 항구를 향하기 위한 거리 계산에 들어서야 하였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미국에 안 가게 된 것에 은근히 기분 좋은 마음을 품어 본다.
이제 거리의 계산이 나와서 기관장에게 알려주어 소요 기름 계산을 준비시키려고 점심식사 때에 만난 기관장과 일기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계산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럼 미국은 안 가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온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순간,
-와~아!
두 사람 모두 거의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쁜 마음을 표출시킨다.
-아니 미국 가는 게 그렇게나 싫었습니까?
의외의 반응에 반문하는 나에게
-그렇죠. 좋을 건 없지요.
간단 명료히 대답하는 그들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나만이 미국 가는 걸 기피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선원들이 미국 가는 걸 싫어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아 본다.
-잘 되었습니다.
어느새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리장도 일부러 찾아와서 미국행이 좌절된 것에 대해 오히려 기뻐하는 마음을 같이 토로해준다.
이렇게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비호감을 나타내는 세계 속의 선원들은 비단 우리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미국은 이렇게 호감이 안 가는 나라로 변해 버린 것일까?
또한 그들은 이런 타국인들의 풍조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한번 나의 주위를 살펴보기로 한다.
반공과 친미가 제일 위에 올라 있는 교육 방침 속에서 그 제 1기쯤에 해당되는 피교육자의 신분으로 한국 전쟁 중일 때에 초등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 온 나로서는 미국이 제일의 우방 국가라는 걸 의심하지 않고 굳게 받아들이며 살아왔었다.
그것이 언제부터 인지 미국에 대한 느낌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상황이 되었고 이제는 그들의 처신이 너무 경직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당혹감에 빠져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배를 타고 처음 미국을 찾아 기항했을 때만 해도, 늘 배워 왔던 최고의 우방국이며 사람 살기가 아주 좋은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는 느낌을 가지며 그들의 자연과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 가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랬던 미국의 사회가 왜 인지 각박하게 변해가며 선원들을 대하는, 선원들과 접촉이 가까운 현지의 직업인들조차 살갑지 못하고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태도로 대해 오는 것 같아 어느 때부터 인지 괜스레 싫어지는 기분을 가지며, 그렇듯이 일방적인 피해의식을 우리들에게 심어주는 게 싫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저런 일들이 쌓여가며 이제는 테러를 막는다는 일념으로 미국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려는 강압적인 분위기까지 곁들여진 출입국관리를 하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가냘프지만 그래도 일편단심 짝사랑 같은 미국을 좋아하고 있든 우리들 마음에 재라도 뿌려 받은 것 같아 그 씁쓸함에 빠져들게 된 것 같다.
지난번 LA 공항을 비행기 환승 통과 승객으로 들렸을 때도, 입국 검색대 앞에서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찍으라며 범죄자 대하듯이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입국 관리의 모습과 만나며, 미국이란 나라에게 품고 있던 친하다고 느끼고 있던 내 마지막 마음까지 여지없이 무너지며 그 반발심은 앞으로 이렇게까지 대접받으며 미국을 찾아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가득 차 버렸었다.
미국을 처음 대하는 곳인 입국 검색대에서 범법자라도 대하는 것 같은 고압적인 자세의 관리 앞에 서서 심사를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결코 편하고 사람 살기 좋은 아름다운 곳으로 다가설 수가 없어 보인다.
이제 선원들에게 미국은 결코 아름답고 편안한 나라가 아니라 규제가 심하고 귀찮은 일거리를 계속 떠 안겨 주는 힘든 곳으로 각인되어 가는 것 같다.
승선 중에 우리나라를 들릴 일이 거의 없는 우리 배의 형편에서 사실 이번 항차 미국을 기항하게 된다면 부산에 들려 급유를 하고 떠날 수 있다는 보너스 같은 기분 좋은 기항 계획도 들어 있었다.
그런 이유가 그리했는지는 몰라도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미국 간다는데 대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 못 가게 되었다는 말에 환호성을 그대로 터뜨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미국의 위정자들은 한 번쯤은 왜 이런 풍조가 나왔는지를 살펴보고 대처해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주*1 : NOLA ( NEW ORLEANSE, LOUISIANA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주)-미시시피강 하류에 있는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의 이름을 해운계에서 줄여 사용하는 애칭 같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