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대란

막힌 화장실 배수 라인을 재개통시키다.

by 전희태
090820-AE_0191.jpg 파이프 내부에 반 넘어 차 있어 배출의 물길을 막고 있든 찌꺼기의 굳어진 모습


090820-AE_0281.jpg 들어낸 파이프를 적당하게 절단하고 있다


아주 규모 있고 아담하게 만들어진 보울에 적당량의 물을 품고 있는 변기에 앉아 시원한 배설의 기쁨을 만끽한 후 등 뒤 벽에 붙어있는 깨끗하게 생긴 스위치의 버튼을 눌러 준다


갑자기 퍼버벅 거리는 힘차게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배변의 잔재들이 금세 변기의 구멍 아래로 빨려 들면서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으로 자그맣게 콩~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기의 빨려 나감이 멎으면 다시 고만큼 부어진 물이 언제 내가 더러운 물건을 품고 있었냐는 식으로 시치미를 떼면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 눈길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 배에서는 이렇게 진공을 이용한 화장실 FLUSHING(수세) 방법을 쓰고 있다. 예전에는 해수를 직접 끌어들여서 씻어 내리는 일반적인 수세식 변소를 사용했지만 그 라인이 염분으로 인한 피해가 커짐에 따라 청수를 사용하는 방법을 병용하여 왔다.


그러나 아무래도 직접 물을 사용하는 방법은 물의 소모가 많아 청수로 모두 감당하는 것에 한계점이 있어 물을 적게 사용하며 분뇨탱크에 빨리 모을 수 있는 점까지 고려하여 진공을 형성하여 그 흡입력을 이용하여 FLUSHING을 하는 vacuum TOILET이 생긴 모양이다.


사실 이 변기를 사용하여 일을 보고 난 후 버튼을 눌러주는 순간에 만나는 상황은 독특한 감흥을 매번 느끼게 한다.


소리가 좀 크긴 하지만 역동적인 공기의 빨려나가는 음향과 함께 엉덩이 부근에 남을 수 있는 냄새도 함께 휩쓸어 주면서 부채바람보다 더 시원하게 쓰다듬어 내리는 공기의 흐름이 피부로 느껴질 때면 그 시원함을 만끽하며 배변의 즐거움을 한결 더 흡족하게도 하지만, 처음 그 경험을 했을 때에는 좀 거슬리는 서늘한 감각이 엉덩이 부분을 쓰다듬는듯하여 흠칫하기도 했었다.


그저께부터 이 시원한 행사의 주인공인 공기의 흡입에 이상이 생겨 일을 보고도 수세로 씻어 내리는 일을 못하게 되었다.


즐거움이 컷 던 그만큼 반비례 속에 숨어있던 극이 바뀐 힘든 상황으로 되면서 화장실 사용은 괴롭힘을 주려고 나선 형국이 된 것이다.,


호주에 오랜만에 기항하며 예상되는 여러 가지의 점검에 대비한 수검 작업을 하려고 계획 세워두고 있던 일들의 진행에 차질은 생겼지만, 이 일의 해결이 무엇보다 긴급을 요하는 중요한 사안이 되어 나선 셈이다.


그렇기에 기관장 이하 전 기관부 인원이 화장실 라인의 재 개통을 위한 작업에 투입되어 벌써 이틀째 수고하였고 이제 사흘째로 접어들고 있다.


식사시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일을 하는 그들의 작업 현황을 살피며 독려하려고 기관실을 찾아 내려갔다.


주갑판 통로에서 기관실로 내려가는 출입문을 열고 계단으로 들어서니, 기관실 특유의 기름 냄새도 있지만 그 보다 더 먼저 어필하며 찾아드는 냄새가 있다. 코끝을 아릿하게 만드는 반쯤 부패의 경지를 넘어선 화장실의 독특한 냄새가 80 데시벨이 넘는 소음을 동반하며 맞이해 주는 것이다.


발전기의 힘찬 움직임 소리가 귀를 꽉 채우는 속에 뚜렷한 화장실 분뇨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달려든다. 전 기관부원들이 땀을 흘리며 각자 배정받은 장소에서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채 일을 하고 있다.


오버헤드 크레인 위에서, 공작실에서, 그리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화장실 배수 파이프를 절단해 내어 그 안에 들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해내고 다시 부착하는 일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프의 절단면을 보니 반쯤 넘어 차 있어 내부의 흐름을 막고 있는 각종 찌꺼기들이 포개져 굳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어떤 병원에서 보았던 동맥 경화증을 알리는 의학 포스터를 닮은, 막힌 동맥 혈관을 잘라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 곳의 변기로부터 내려오다가 머무르게 되면서 시간을 두고 굳어버린 이물질이 아주 딱딱하게 붙어 있는 것이다.


기다란 쇠막대를 그 파이프에 넣어서 커다란 해머로 두드려 주어도 잘 떨어져 나오지 않는 그 이물질은 사람들이 요로결석이다 콩팥 결석이다 하며 각종 결석으로 고통받는 바로 그런 상황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또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모습과도 비교되는 인체의 혈관에 고인 노폐물이 혈관벽에 고착된 모습도 떠 올리게 하여 그 이물질을 자세히 살펴보지만 시꺼멓게 굳어 있는 형상만으로는 무엇인지 판별하기 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파이프 내부로 설비된 물길을 반 넘어 막고 있기 때문에 새로이 들어서서 빠져나가려다 걸려버리며 이렇게 화장실 대란을 발생시킨 물건들 중에는 아직도 노란 색깔을 잃지 않은 정정한 옥수수 알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씹어 먹어서 소화되어 내려온 놈이라면 그 모습이 없을 텐데 저것은 먹지 않고 그냥 변기에 부어버린 녀석임에 틀림없다는 감이 퍼뜩 머리에 든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스위트콘으로 반 조리된 음식이 야채와 함께 나온 날, 누군가 이걸 식탁에서 먹다 남은 걸 버리지 않고 방으로 가져갔다가 나중 먹으려던 시기를 놓쳐 그만 쉰 냄새가 나는 음식물로 변질이 되었을 때, 다시 들고 가서 주방의 쓰레기 통에 버렸으면 될 것을 귀찮다고 그냥 변기에 쏟아 넣고 물을 뽑아 내리는 일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기에 화장지 이외의 이물질을 넣고 물을 내려 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얼굴 찌푸려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옥수수 알의 모습 역시 너무나 태연하여 이렇게 만나지 않고 식탁 접시에서 만났다면 얼마든지 숟가락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싱싱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아주 최근에 그곳에 들어선 녀석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며칠 전에도 그런 옥수수 알이 접시에 담겨 나타난 점심 메뉴가 있었으니 내 짐작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화장실 라인의 파이프 절단과 용접 작업은 점심도 더 넘기고 저녁 9시 30분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서야 겨우 끝맺음을 하게 되었다. 지난 사흘을 내리 계속한 화장실 대란은 그렇게 하여 화장실 냄새도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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