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투묘 대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사히 달림풀 베이(DARLIMPLE BAY)에 도착하여 포트 컨트롤에서 지정해준 투묘지에 닻을 내려 주었다
이제 부두에 들어간다는 날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며 그동안 시간에 쫓기어하지 못했던 정비작업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그러나 과업 시간대에는 그렇게 일을 하면서 보낸다 하더라도 나머지 휴식 시간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다가 그냥 쉬면 되는 거지 하는 식으로 넘기면서, 그래도 낚시질을 하면 되겠고 또 뭐 다른 일과를 찾으면 되겠거니 하는 편한 맘으로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젊은 이들인 필리핀 선원들은 또 한 가지의 운동을 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주 갑판의 한쪽인 우현 쪽에다 농구장을 차린 것이다. 선외 쪽으론 그물을 치고 해치 코밍 쪽으로는 간이 농구 대를 세워서 좁지만 길거리 농구를 축소해서 하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브리지에 올라가 기상상황을 살피며 당직 상태를 점검하는데 뭐라고 소리치며 떠드는 고함소리가, 그러나 목소리 높인 언쟁의 소리는 결코 아닌 환호성이, 주갑판 쪽에서 들려온다.
-무슨 일이야?
일항사의 식사 교대로 당직 중이던 3 항사에게 물으니
-선원들이 농구하는 소립니다.
한다.
-농구? 웬 농구?
하며 갑판을 내려다보니, 이미 어둠이 찾아오며 시원한 바람마저 살랑거리며 다가오는 갑판 위에는 환하게 비춰주는 조명등의 불빛 아래 대여섯 명의 선원들이 농구를 하느라 몸싸움이 제법 시끄럽다.
필리핀의 국기가 농구라는 말은 듣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관심과 참여가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농구공도 제대로의 사이즈를 가진 정식의 공은 아니고 좀 작은 공이다.
열심히 시합을 하는 그들을 살펴본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풀이의 운동 삼아하는 반 장난 같은 게임을 하겠거니 여겼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기술과 몸놀림이 아이들 장난 같은 수준은 넘어섰을 뿐 아니라 제법 폼도 갖춘 슛 동작까지도 보여주며 몸풀기에 여념이 없다.
땀에 젖어가는 모습으로 계속 뛰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는 동안 어느새 바로 곁에 까지 찾아온 어둠이 갑판 등의 조명에 엎치락뒤치락하는 실루엣으로 또 다른 농구 경기를 곁들여주듯 보여주고 있다.
공을 바운드시키며 드리블을 할 때면 바로 갑판 밑의 윙 탱크의 비어진 공간이 공명 상자 노릇을 하느라 퉁퉁 울리는 큰 소리를 내어주어 자못 리듬감을 깨우쳐 주는지 신나게 몰고 들어오면 앞을 막아 커버하던 사람이 적당히 자리를 내어 준다. 그러면 터닝을 하며 슛을 쏘아 올리고 생각보다 정확하게 공이 바구니를 뚫어 내린다.
그렇게 하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모두 달아날 것 같은 시원한 감을 가지게 하니. 이들이 농구 대를 세우고 그물을 쳐서 공이 물에 빠지지 않게 설치한 일들이 결코 불필요한 도로는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