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귀천 소식

가까운 이와의 안타까운 이별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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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항해에 나서려 집을 떠날 때에 이미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던 장모님의 귀천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집에서 온 연락이 아니라 그동안 소식 뜸하고 있었던 친우 김 군한테서 온 이멜편지에 추신으로 연락이 닿아진 것이다.


잘 있었나요?

지금쯤 은 중국에 있을 거라 들었네.

장기간 선상생활로 지루하기도 하겠지만 건강은 잘 챙겼으리라 믿네,

나도 백수생활이 벌써 6개월이 지나 이젠 무료하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네.

-중략-

추신 : 어제는 0성이 외할머니 빈소에 임형 내외, 그리고 김형 처와 문상 갔다 왔네,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허 여사는 자네가 걱정한다고 연락하지 말라 하였는데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소식 전하네.


이렇게 친구가 일부러 추신으로 챙겨준 소식을 받으며 요 며칠 우리 집과 연락두절이 된 경우가 내 짐작대로 그래서였구나! 서러운 납득을 한다. 그래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을 아내를 위해 먼저 편지를 적어 보내기로 한다.


당신의 슬픈 마음, 이제는 추슬러 주세요. 2009년 11월 01일 09:30

어제 새벽(0030시)에 중국 ZHANJIANG항에 도착하여 밤을 새워 기다리고 움직이며 아침 09시경에 부두에 대었지요.

예전과 달리 하룻밤 꼬박 잠을 설치며 지난 것이 당장 몸의 피로로 나타나는 걸 느끼며 세월의 엄중함을 새삼 눈치채 봅니다.

편지 자주 안 하는 친구인 김형이 먼저 장모님의 귀천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그동안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앞에 닥치고 보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이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슬픔은 크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로 다가온 장모님의 귀천이, 그나마 우리 모두가 은근히 순리로 바랐던 대로, 무더운 여름 지나고 모든 게 풍요로운 가을에 이루어진 것을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위안 삼습니다

정확히 언제 귀천하셨는지 자세한 정황을 나는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뒤처리의 일들이 모두 끝났을 터 마음을 가라 앉힌 후 차분한 심정으로 자세하게 소식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것에 앞서서 우리에게 남겨진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너무 건강을 해칠 정도로 힘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가셔야 할 그것도 우리보다 먼저 떠나실 분 중의 한 분이 시었기에, 그 떠나셨음을 그냥 받아들이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삶으로 이어가시기를 바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이 가르치는 대로 연옥에 드셨더라도, 우리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여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이 남아 있는 자로서 해드릴 수 있는, 아니 꼭 해야 할 도리이겠지요.

이 모든 일을 해내기 위해서라도 속히 마음 추슬러 슬픔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생활로 되돌아오기를 간청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건강지킴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우선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몇 자 끄적거려 봤지만 오히려 당신 마음 심란하게 만든 건 아닌지 은근한 걱정도 드네요.

당신이 마음 다잡아 씩씩한 마음으로 답장 보내주시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끝내렵니다.

그동안 두 분 어머님께 드리는 안부 인사를 한몫으로 당신에게 부탁했는데 이젠 따로 나누어 보내드려야겠네요.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께는 기도로, 집에 계신 어머님께는 다시 안부 인사로 말입니다.


동산 묘지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2009.11.01. 23:30


며칠 동안 너무 아파 괴로워하시던 엄마, 회사에서 퇴근길에 들리며,

-엄마 저 왔습니다. 하니까

대답의 말씀도 없이 알아보지도 못하시던 엄마가

-왔나? 하셨습니다.

-어디가 그렇게 아프십니까? 물어도

-괜찮다.

하시며 잠깐 동안이래도 나를 알아보시고 대답도 하시고 나의 얼굴을 만져 주시고 머리도 만져 주시더니,

-니는 화장도 하고 이쁘고 예쁘게 살아라. 하시며 팔을 들어 허공을 휘저을 때, 손을 잡아 드리니 어깨를 감싸 안아 몇 번이나 안아 주시던 엄마,

다음 날에는 아무 말씀도 못 하시면서도 안아 주시던 엄마, 그렇게 마지막 가시며 나에게 사랑의 표시로 말씀 대신 안아 주시기만 하셨던 엄마께서는 이제 제 곁에 안 계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살아 있음이 고통이던 때 보다 지금은 편 하시겠지요. 고통 없는 주님의 나라로 들어가셨으니까요

정확히 29일 새벽 5시경 운명하셨지요

천호동 가톨릭 병원으로 모셨고요. 엄마 교적이 천호동이고 연령회도 천호동에서 오고 연도는 둔촌, 천호, 암사 성당에서 모두 하셨지요.

얼마나 많은 교우들의 기도가 이어졌는지 하루에 몇 백 명이 와서 기도를 했는지 화관도 그 병원이 생기고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성당 꾸리아에서도 오셨고요. 증거자들의 모후 레지오에서는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다녀 가셨는데 모두 감사 하지요.

구 서방 회사에서 버스로, 인이 국민학교 동창과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버스로 부산에서 오고, 회사 일로도 많은 문상객이 와서 병원 영안실이 모자랄 정도로 넘쳐났는데 연도 때문에 기다려야 할 정도였지요. 당신의 친구분들인 0 남 씨, 0 호씨 내외분, 하늘나라 먼저 가신 0문 씨의 부인도 혼자 다녀 가시고……

엄마를 어디다 모실까 의논을 했지요. 부산 아버지 옆으로 어떻게 모실까? 또는 화장을 해서 납골당으로 모실까? 하다 결국은 앞으로 근거가 희박해질 부산보다 남춘천으로 하기로 했지요.

아버지는 어떻게 하냐 여러 가지 이야기 끝에 용호동 천주교 묘지에 전화를 해서 이장을 하기로 결정을 했고, 엄마 돌아 가신 다음날인 30일 막내가 새벽에 부산으로 가서 모셔 왔습니다.


저녁 5시경 병원에 도착한 아버지의 유해를 엄마 옆에서 하루를 지나시게 한 후 31일 새벽 상조회에서 나온 리무진을 타고 천호 성당에서 6시 장례미사로 봉헌하고 장지로 떠나갔지요.

그날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했지만, 장례 치르는 동안 너무나 좋았습니다.

엄마가 덕을 많이 쌓아서 그렇다고 하시며 오신 분들이 상주도 많다며 모두 부러워하더군요.

외숙모, 0희 언니, 0 정이도 꽉 찬 버스를 타고 장지에 도착했지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합장 예식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산소가 너무 좋다고 모두 입 모아 이야기하는데 어느 분은 좋은 명당이라고 하더군요.

구 서방도 우리도 여기 살까? 하고 경이 보고 이야기하더군요. 장례 치르고도 돈이 남아, 장지 땅값이 올라있는 가격에 다는 아니지만 인이 에게 갚아 주고, 모두 오신 손님 접대도 해야 하니 얼마씩의 돈도 나누어 주었고, 인이 댁 고생했다고 따로 좀 더 주고, 너무나 조용히 마무리도 잘 끝냈습니다. 그동안 엄마도 자신의 장례비로 5백 이상을 남겨 두고 가셨더군요.


경과보고는 여기서 끝내고 내일은 삼오라 엄마 산소 갑니다. 당신 이야기도 할게요. 무엇보다 교통이 편해 가까워서 좋아요. 한 3,4 십분 이면 가더라고요

언니, 형부 구 서방 경이도 삼우제가 끝나면 내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인이네 집에서 모두 있었습니다.

엄마가 우리 옆에 계시지 않다는 것이 마음 한구석 허전하게 만들며 눈물이 핑 돌게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셨으니 너무 섭섭히 생각 지 않고 열심히 기도 하기로 합시다.

49일제는 <천호동> 성당에서 새벽 미사로 봉헌합니다. 나는 우리 성당에서 해야 지요. 이제 마음도 편합니다. 아버지와 엄마를 함께 모시고 나니 자식 된 도리를 조금은 한 것 같고 요.

오늘 막냇동생 인의 댁이 그러더군요.

-형님 고마워요 그렇게 좋은 산소로 모실 수 있게 도와주셔서……라고요.

구 서방은 이제 장모님이 안 계시니 멀어진다며 친목계를 하자고 하더군요

한 달에 이 만원 내고 6개월에 한 번씩 만나서 얼굴도 보고 모아 논 것으로 놀려도 가자고 모두 좋다고 하더군요. 당신 생각은요 물론 찬성이지요?

보이소

오늘은 여기까지 소식 전합니다

늘 주님 은총이 당신과 둘째와 함께 하시어 항해하는 길이 언제나 편안하기를 간구합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누라 분이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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