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은 당겨지기 위해 있는 일
이른 아침 시간인데 위성 전화가 울리고 있다.
-예, 여보세요. 하고 응답하니
-예, 여보세요. OO 선식입니다. 하는 대답이 온다. 뉴캐슬에 있는 선식 회사이다.
이번 항차 우리 배에 실을 선용품을 선적하도록 회사가 수배하였기에 주부식도 함께 싣도록 요청한 선식 회사인데 무슨 일로 이렇게 이른 전화를 한 걸까?
-선장님 내일 부두에 접안하도록 예정이 변경된 것 알고 계십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일순 긴장하며 묻는다.
-내일 몇 시로 변경된 것입니까?
-그건 잠시 기다려 보세요.
하였으나 잠시 후에 몇 시라는 건 이야기 안 하고 하여간 내일로 변경되었단다.
-예 알았어요. 대리점에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 닷새 이상 남아 있든 접안 예정을 감안하여 정비작업을 그 기간에 맞추어 진행하던 터이라 모두가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남아 있는 접안 예정 날짜까지 시일이 좀 있어서 아직 뒤 마무리를 해가며 정비작업을 계속할 시간이 있다고 여겨서 조금은 쉬어 가며 편한 마음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이렇게 예정에 없는 당겨짐은 이번에 받을 것으로 유추되는 PSC 검사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한 보람을 어쩌면 퇴색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여간 당겨질 것에 대비하여 모든 일을 진행하도록 기관부에도 알려준 후 곧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어찌 되는지 알아본다.
모빌 폰으로 걸어서 상황을 물어보는데 전화를 받은 대리 점원은 전연 그런 예정이 없다는 대답을 한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안도감을 품으며 달라지면 알려 달라고 한 후 전화를 끊는다.
다시 예정대로 기다릴 것이란 알림을 주니 모두들 진행하려 다가 스톱을 걸어 놓은 일을 다시 펼치어 시작한다.
12시까지 계속 열어 본 이멜에서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점심 먹고 나서 다시 열어 보니 내일 아침 0730시에 도선사 승선으로 22시에 출항한다는 예정표가 날아들어 온다.
모두들 다시 벌여 놓았던 일들을 급하게 중도 마무리를 지으려니 이곳저곳에서 툴툴거리는 불만의 목소리가 합창을 이루지만, 어쩌겠는가? 일을 서두르도록 독려할 수밖에...
갑판부는 FAIR LEADER를 분해하여 FREE UP 시키려던 일을 중도에 그만두게 되니 해체했던 부품들을 대충 기름칠을 하여 다시 잡아넣느라고 분주해지고, 입항 이틀 전쯤에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창 내 수분 침입을 알리는 감지기의 센서를 갈아주는 일을 마지막 시간으로 당겨서 하느라고 기관사들도 바빠졌다.
식사 시간도 교대로 때워가며 일을 진행하여 그래도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 겨우 끝을 냈다.
흐트러진 작업현장의 뒷마무리가 잘 되었는지 살피려고 이미 FLOODING LIGHT 가 밝혀진 갑판으로 나갔다.
운동도 겸해서 한 바퀴 돌고 나서도 보이는 현상의 뒤처리가 미진한 듯싶어 또다시 돌다가 눈에 뜨이는 한 두 개의 갑판상에 버려진 물건들을 손가락으로 집어 든다.
용접봉 끄트머리, 비닐로 된 물건 쌌던 커버 조각 등이다. 오래전 세월이었다면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을 물건들이지만 이제는 함부로 던져 넣으면 안 되는 쓰레기로 분류하여 육상에 넘겨줄 것은 넘겨주어야 하는 환경보호에 걸림돌이 되는 물건들이다.
거주구역으로 들어와서 그런 쓰레기를 제각각 분류하여 모아 놓는 곳에 알맞게 넣어 준다.
이런 일은 소소한 일이지만 예정이 갑자기 바뀌어질 때를 만났을 때 와 같이 너무 서두르다가 간과하고 넘어가게 되어 나중에 큰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중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