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사에서 합격되다

가재는 게 편?

by 전희태
재검사에 합격.jpg 사다리를 타고 공중곡예 하듯이 페인팅 작업을 하는 모습




그리 되리라 생각지도 안 했던 선창 청소 검사 탈락에 낙담하였지만 어차피 통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셈이니 하루 반을 들여서 온 힘을 다해 그들이 지적한 상황을 해결하기로 했다.


높은 곳의 칠하지 못했던 부분의 페인트를 다시 칠해주며 먼저 선적했던 화물인 석탄의 가루가 묻어 있는 위에 칠했던 페인트는 벗겨내어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칠해주는 일을 1번 창부터 시작하였다.


이번 항차 일본을 출항한 후 계속 시행한 일이기에 어느 부분이 어느 정도의 상태라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시작한 일은 그런 점을 감안한 작업의 진행이니 속도도 빠르고 나타난 결과 역시 확실히 달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항내 작업이라 황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어서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새벽 6시에 검사 퇴짜 맞고 이어서 시작한 일이기에 하루만인 다음날 13시경을 재검 시간으로 잡고 일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진행속도가 도저히 그 시간 안에는 끝을 낼 수가 없어 다시 반나절을 더 보태어 저녁 18시에 끝나는 거로 작정하고 18시 30분에 검사관을 수배하였다.


마지막 홀드 바닥을 쓸어내어 마무리를 하고 난 후, 던져진 주사위가 원하는 결과로 나타나길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기다리는 심정으로 약속한 시간에 올라 올 검사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작업의 책임자인 일항사는 그동안 피곤했다는 이유로 현문에서 기다리는 걸 기피하고 있는 사정을 이해하기에 나라도 지키며 이 일을 무사히 끝내려는 각오로 현문을 지키는 갑판 부원을 다독이며 약속 시간이 넘어가는 걸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 통로 문이 열리며 대리 점원을 비롯한 홀드 불록 팀장과 서베이어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 그들은 우리가 지키고 있던 오른쪽 현문 사다리로 오지 않고 마침 전날 낮에 기름을 선적할 때 준비해두고 있던 왼쪽 현문 쪽으로 올라온 것이다.


갱웨이 레더를 양쪽 모두 다 준비하고 있은 게 이런 일을 유발한 원인이다.

이제 이유를 대며 구차하게 변명할 여지도 없이 그들은 내 앞에 나타나서 갱웨이를 늦게 내려준걸 탓하고 있다.


간단히 우리는 오른쪽으로 현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해주는데, 그 말을 들은 서베이어는 가방을 내려놓더니 그냥 발라스트 컨트롤 룸을 빠져나와 휘적휘적 밖으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한다.


자신을 맞이하는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배 안으로 들어섰던 검사관이기에 검사를 철저히 하여 본때를 보이겠다는 심정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도 그런 그의 행동에 눈길을 돌릴 겨를이 없을 만큼 빠르게 행동하였기에 같이 따라나서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라 나는 우선 같이 나서서 보조를 맞춰주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나도 저 사람과 같이 나가서 검사하는 과정을 도우며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부리나케 쫓아나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감정이 개입 안 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검사관이 배에 올라올 때부터 영접을 잘하며 같이 일을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금 느껴본 것이다.


가는 길에 그는 이것저것 손길을 보내어 자신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검사를 계속하였고 이윽고 일 번창으로 들어가는 맨홀로 들어서려고 한다.


나도 손에 들고 있던 워키토키로 빨리 일항사 더러 나와서 합류하라고 연락을 주며 같이 내려가려고 바짝 뒤를 따랐다.


20미터가 넘는 깊이의 선창을 향해 오르내리는 일은 해보진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는 고된 일이기에 나도 이 배에 와서 아직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이제 단단히 마수거리를 하게 된 셈이다.


깜깜한 선창 바닥까지 내려가면서도 그는 중간에 이곳저곳을 쓸어보고 닦아보며 검사하는 모습을 어둠 속이지만 곁눈질로 살펴보면서 내가 같이 동행해주길 참 잘했구나 하는 마음 가짐이 들었다. 아울러 이번에는 합격하게 되겠구나 하는 확신도 생기고 있었다.


만약 우리 배에서 아무도 따라나서지 않고 서베이어가 저 혼자서 만 둘러보았다면 틀림없이 나쁜 곳을 찾아내었을 것이고-아니 찾아낼 때까지 후비고 파며 돌아다닐 것이기에-그럼 또다시 재 청소에 걷잡을 수 없는 경비 발생 등 악몽을 꾸는 상황이 되었을 터인데, 그래도 명색이 선장이 같이 따라다니며 거들어 주었으니 불합격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감이 있었을 거로 지레짐작해 보는 확신이 있었다.


그 검사관도 노인네였지만 나보다는 좀 아래로 보였다. 회사에서도 비상상황이 되어 어쩌면 현장의 우리보다도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끔 자주 전화하며 물어봐 오던 재검사의 일이다.


드디어 1번 창을 빠져나오며 기다리고 있던 브록팀에게 일 번창은 작업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언질을 준다. 나머지 선창도 차례로 들어가 보기는 했지만 이미 검사에 합격하리란 예상을 갖게 된 상황에 그동안 긴장했던 기분이 확 풀린다.


마지막 7번 창을 둘러본 후 유황을 싣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해도 된다는 최종 통보를 받으며 무사히 재검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회사에 알려주는 후련함은 급한 배설의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 이상의 시원함을 선물로 주고 있었다.


후기:

짐작컨대 이번 검사에서 청소 탈락을 일부러 시킨 게 아닐까? 하는 의심할만한 점이 있어 보인다는 내 개인적인 느낌을 본사 담당자에게 이야기해 보았었다.


청소에 불합격되면 다시 합격할 때까지의 기간을 용선료를 물지 않는 계약으로 되어있으니 청소에 패스해도 이어서 짐을 싣게 할 준비가 덜 된 부두 사정인점 감안하여 그 늦어지는 기간만큼 재 청소를 시키도록 조치하는 불합격 판정을 만들어 용선료를 물지 않으려는 용선주의 교묘한 뜻이 스며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일본/캐나다 간 전 항해 중에 계속하여 청소와 정비에 임했던 본선의 작업 상황에서 선원들은 자신의 의무에 최선을 다해 시행한 일이었기에, 검사 불합격에 그런 뜻이 스며있는 처사였다면 선원으로선 너무나 불공평한 대접을 받은 셈이지만, 어쩌면 그건 세상사 하부의 각 담당 부서들이 일단은 갖게 되는 고유한 핸디캡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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