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면 큰일 나는 안전용 등불빛
오후로 들어서던 13시 30분.
밴쿠버 KMVW부두를 떠난 배를 이곳의 이 시즌에서는 보기 드물게 환한 날씨로 인해 아주 잔잔한 내해로 변해 있는 밴쿠버-빅토리아 간의 바다가 맞이해 준다.
도선사도 이런 날씨가 아주 흡족한 모양이다. 라이온 브리지 밑을 무사히 빠져나오며 들어선 바다에서 몇 번이나 날씨를 칭찬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나 역시 덩달아 좋아진 기분으로 눈 안에 드는 경치를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게 움직이다가 아예 도선사에게 브리지를 떠나도 되겠는가 양해를 구한다.
아니 얼마든지 떠나도 괜찮다며 너스레를 치는 도선사에게 그렇다면 좀 내려갑니다.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항해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라 별다른 신경 쓸 일이 많지 않기에 안심하고 내려온 것이다.
통상적으로 브리지에 도선사가 있고, 그가 조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항해 보조 역할을 하는 일이다.
따라서 항해사고라도 나게 되면 우선은 그 모든 책임을 선장에게 묻게 되는 것이라 선장이 함부로 브리지를 떠난 다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예닐곱 시간을 계속 항해해야 하는 도선구에서는 크게 어려움이 없는 경우 좀 빠져서 쉬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기며 브리지를 떠나 내려온 것이다.
어느덧 이 뱃길에서 나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을 주면서 옆을 지날 칠 때면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만드는 등대를 가진 섬을 지날 무렵이 되면서 다시 브리지로 올라갔다. 그 경치를 다시 담고 싶은 생각과 이제 도선사가 하선할 빅토리아 항에 도착할 시간이 1 시간 30분 정도 남았기에 슬슬 준비하는 기분으로 올라간 것이다.
출항하는 배이기에 그 등대를 왼쪽에 둔 우측통행을 하는 항로라 아무래도 거리가 좀 벌어진 형편이라 사진 찍기에는 좀 멀어진 기분이 들어 망원 랜즈로 줌인하여 사진을 찍어 본다.
몇 컷을 계속하여 찍어서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기로 작정하고 찍다 보니 이제 사진 찍기에 사용할 용량을 거의 다 소진하여 그 정도에서 끝내기로 한다.
어느새 어둠이 본격적으로 다가와 있다. 빅토리아 항구 앞에는 항구의 조명과 더불어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등대와 부표의 불빛이 현란하다
도선사도 내릴 준비를 하며 마지막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고 괜찮겠는가? 나의 확인을 받은 후 배를 떠나려 아래로 내려간다.
빅토리아 항 앞의 항로의 기점이 되는 씨브이(Sea Buoy)를 왼쪽으로 두고 변침하기 전에 도선사는 떠나갔다. 이어서 타를 왼쪽으로 돌리어 배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항해에 나서기 위한 R/UP ENG. 의 명령을 내려준다.
예정한 침로에 들어섰는데 오른쪽에 있는 가지각색의 불빛들이 마치 자기를 잊지 말라고 유혹이라도 하는 듯 제 각각의 색깔과 고유한 반짝임으로 내 눈을 현란하게 한다.
이제 그중에 우리가 지나가며 시애틀 트래픽(SEATLE TRAFFIC)에다가 보고해야 하는 RACE ROCK 등대를 찾아내어 확인하려는데, 유난스레 붉은색으로 수직으로 서 있는 불빛이 보이어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깜박임을 시작할 때마다 자신의 발길에 펼쳐져 있는 매끈한 바다 위에다 짙은 붉은색 카펫을 깔아주며 찾아오라 유혹하는 듯 점점 더 밝고 가깝게 나타나는 모습인데 그 아름다움에 빠져 들기에 앞서 경각심을 품는다.
붉은색이니 가까이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뜻으로 자신의 위치를 내 보이고 있는 불빛이지만 그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선 오히려 그 불빛으로 인해 헷갈리는 위치 파악을 유발하고 있어 굉장히 신경 쓰이게 하고 있는 거다.
지금 우리의 위치를 내는 기본으로 선택하여 붙잡고 있는 RACE ROCK 등대섬 뒤에 이어져 있는 육지에서 보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제 레이스 록 등대 더 아래로 내려가면 곧 변침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곳에 있지도 않는 붉은색 등불이 혹시나 나를 유혹하는 로렐라이의 전설이나 되듯이 은근한 겁을 집어먹게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킨다.
다시 한번 더 그 불빛을 보내는 위치를 확인해 본다.
레이더를 동원하여 이제 변침 점이 얼마 남아있지 않음을 깨우침 받으며 그 붉은 불빛은 이제 들어서야 할 수로의 건너편에 있는 포트 엔젤레스(PORT ANGELES))가 있는 미국 땅의 산 허리에 세워진 안테나의 Air Warning 불빛임을 최종적으로 납득한다.
그러나 워낙 잔잔한 바다 위의 어둠 속 고요한 수면이기에 그 위로 퍼져 나오는 붉은색 트랙은, 우리 배의 안전한 위치에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는 눈길마저 흩트려 뜨리며 혹시나 하는 겁을 집어먹게 했던 것이다.
너무나 잔잔한 바다가 연출하는 유혹 아닌 유혹으로 인해 JUAN DE FUCA STRAIGHT로 들어서는 발길이 잠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스타보드 휘프틴! 힘찬 구령에 따라 배는 슬금슬금 오른쪽으로 선수를 돌리기 시작한다.
이제 모든 것 다 무시하고 제 갈길을 위해 받아 든 구령으로 인해 배는 다음 침로로 들어서려고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