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들고 나는 일에 대한 철저한 아룀은 아랫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윗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다.
이는 예기(禮記) 곡례(曲禮)상(上) 편에 나오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비유한 고사성어로서 내가 처음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소집되던 날 담임 선생님이 첫인사를 겸해 우리들에게 앞으로 세상살이에서 꼭 지켜줄 것을 당부하며 일러주었을 때였다.
칠판에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이라고 크게 써 놓으시고 돌아서시더니 돋보기안경 너머로 처음 대면하는 제자들을 쭈~욱 둘러보신 후, 말씀을 시작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영락없는 훈장님(한문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대수(代數)라는 이름의 수학 과목을 맡으시며 우리들에게는 처음으로 셈본에서 수학으로 바뀌는 공부를 가르치셨든 분이셨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들고나는 상황에 대한 철저한 아룀을 잊지 말고 생활해 몸에 배이게 하라고 당부하시던 그 모습은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경험한 잊지 못할 일이 되어 내 뇌리에 각인된 채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렇게 당부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 일이 되어 인생 초년병 시절에 배웠던 배움의 중요성마저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그제 오전에 필리핀인 일항사가 자신의 집에 다녀오겠다며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일항사는 불특정 한 제 삼국 간을 주로 기항하는 타국적 선박에 승선 계약한 수출 선원으로서 본선을 타고 있는 사관 선원이다. 어지간한 행운이 아니라면 승선 중에 집에 가는 것은 꿈도 못 꿀 형편인데, 어쩌다 본선의 이번 항차가 자신의 고국을 찾아들게 되었으니,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을까?
그 심정이 십이 분 이해되었기에 내 요량은 그가 하룻밤만 자고 들어 오기가 힘들 것이라는 예상까지 하면서도, 그 청을 들어주기로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녁때 발전소 정문을 닫아 출입통제를 하는 밤 10시까지는 굳이 돌아오겠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요청하는 그의 바람을 허락 안 해 줄 이유가 없었다.
하나 그는 그날 밤 열 시에 귀선 하지 않았고 이튿날인 어제 오전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미 나갈 때 늦게 들어오려고 작정하고도 말은 그렇게 하고 나간 것으로 의심이 들어, 괘씸한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결국 어제 오후 저녁 무렵 돌아온 그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부담이 되어 서겠지만 나한 테 돌아왔다는 귀선 보고도 없이 슬그머니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出必告는 했지만 反必面은 하지 않은 것이다.
마침 승선 급여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급받았건만 그는 어제 자리를 비웠기에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자신의 잘못한 점에 대한 쑥스러움 때문인지 직접 나한테 와서 받으려고 하지 않고 삼항사를 시켜 전달받으려는 행동까지 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그런 그의 행동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돈을 받으려면 나한테 직접 와서 받도록 하라고 이르면서 삼항사를 통한 심부름은 거절하였다.
그 정도로 분위기가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얼른 욕먹을 각오를 다지면서라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내 앞에 나서는 게 도리일 것 같은 데, 그렇게 못하고 있는 그가 답답할 뿐이다.
더 이상 신경전을 전개해봐야 시간만 허비되는 일로 여겨질 무렵. 그를 불러서 이야기를 듣기로 작정한다.
꾸물대며 어렵게 내 앞에 나타난 그는 약간의 과장된 표정으로 얼렁뚱땅하는 식의 인사와 함께 그 날 저녁때까지 돌아오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급급한 변명의 말을 늘어놓으려 한다.
한 삼 년 필리핀인 선원들과 같이 승선 생활을 하며 느꼈던 -이들은 요리조리 변명을 늘어놓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느낌이 다시 솟아오르는 걸 어쩔 수 없이 손사래 쳐서 막아버리며 출필고 반필면의 예의를 이야기해 본다.
그러나 옛 어른들의 말씀을 이곳 필리핀에까지 전달해 보려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그는 난처했던 장면을 무사히 넘기게 된 기쁨을 얼굴에 담으며 그래도 다음에는 잘하겠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수월히 한다.
어려운 고비를 쉽게 넘겼다는 안도감을 자연스레 얼굴에 띄우며 인사성을 담고 이야기하는 그의 말을 들어는 주지만, 다 믿고 있지는 않다는 나의 표정을 보태 주었건만, 그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일항사를 보내 놓고 잠깐 그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 본다. 나는 수출선에 승선한 경험은 없지만, 한때 우리나라의 해운계에도 많은 선원 수출이 있었음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현장에서 겪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번 본선 일항사가 취한 태도와 비슷한 행동은 들은 바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