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 선원을 호칭해주는 이름에, 일반인이 좀 비하해서 불러주는 뱃놈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명칭인데 이는 선원들 조차도 자신을 그렇게 자조적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원들은 남들의 입에서 자신들을 뱃님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뱃님이라 칭하기를 고집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선원들의 위치가 격상된 느낌을 갖게 하는 요즘이기는 하다.
어쨌든 선원이란 직업이 남자들만의 고유한 직업이었을 시절에는 그에 따른 고달픔도 컸지만, 스스로 참여하지 못한,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는 언제나 사나이로서의 모험이나 로맨스가 저절로 따라나서는 모양새로 느껴져 더욱더 로망을 품게 만드는 직업인 것도 같다.
사실 그 시절의 선원들은 모든 사람들이 향유하는 일상을 포기하는 대신 사람들이 호기심과 열망해보는 일탈의 생활도 알게 모르게 행해보는 경험도 가졌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설명해보려는 꽃 배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선원들의 내면에 거치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적나나(赤裸裸) 하게 비쳐 내보이는 일중 하나 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보여주는 게 꺼림칙한 일이란 느낌도 들어서 뱃놈이란 말을 듣는 게 어쩜~ 하는 생각도 갖게 하는 사연인 것도 같다.
그냥 우스개 소리로 들어줄 수 있는 말이지만, 나는 <인간은 세 끝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존재라는 말을 농소리 삼아 자주 표현하곤 했었다.
이 생각에 비추어 본다면 선원들은 두 가지의 끝, 즉 손끝이나 혀끝의 즐거움은 일반 사람들과 다름없이 아니 조금은 더 가질 수도 있는 위치에 속하겠지만, 나머지 한 가지의 끝을 위한 즐거움은 어쩌면 육상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조차 양보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 같아 보인다.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이가정성(離家庭性) 때문에 나머지 끝의 향연은 자주 유보하는 형편이 되기 때문이다.
세월 따라 선박 자체도 많이 진보된 사물이 되었고, 통신이나 모든 장비가 최신의 현대화로, 예전 같은 고립된 선상생활에서는 많이 빠져나온 상황이기에, 범선 시대나 그 후의 현대화되기 전에 가졌던 어려움에선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이제는 배에 따라서는 집에 자주 갈 수 있는 정기선이냐 아니면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기약 없이 연가 때만을 기다려야 하는 불 귀항 선박이냐가 승선 중의 커다란 변수가 될 뿐이다.
우리 배가 지난번 필리핀에 기항하였을 때, 본선 선원의 반수가 넘는 필리핀 선원들 중, 또 그 반수쯤 되는 사람들이 가족들을 배로 불러들였거나 스스로 집에 갔다 오는 일을 경험하였었다.
대신 스스로 불귀항 선박에 승선한 한국 선원들은 부러운 마음으로 그런 광경을 보아야 했었다. 어쩌면 동료들인 필리핀 선원들의 가족 만남을 보았기에 더욱 그런 마음에 부채질이 된 것일까?
어제 이곳 발릭파판 내항에 투묘하였을 때 도둑놈을 조심하라는 대리점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취약한 이곳의 보안 상황을 감안하여 저녁때부터 실시되는 해적 방지 당직 시 누구도 본선에 승선시키지 말라는 명을 내려두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였다. 한국 선원들 중 결혼을 하지 않은-이혼남이라는 소문도 있는- 50대 초반의 한 선원이 용무가 있다며 찾아왔다.
지금 본선에 찾아와 현문 사다리에서 대기하고 있는 꽃 배의 인원을 승선 허가시켜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안 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말로 그를 돌려보냈다.
조금 후, 이번에는 필리핀인 일항사가 찾아왔다.
지난번 필리핀 기항 시에도 집이 멀어서 다녀오지 못한 자국 선원들이 원하고 있는 상황이란 설명을 하면서 꽃배로 찾아온 사람들을 올려 달라는 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의 결정은 변함없이 일관시켜서 그들의 승선이 없는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오늘 아침이 되어 선원들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참모 사관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내가 취한 행동이 선내 분위기나 사기에 미치는 사항에서 바람 직 못한 점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결국 내가 결단코 막으려 든 <꽃배 손님의 승선>은 한번 더 고려해 봐야 할 결정이란 방향으로 흘러, 오전 중에 일항사에게 우리가 서고 있는 도둑 방지 당직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방도를 강구해 놓고, 연후에 또다시 찾아오는 꽃 배가 있다면 승선시켜도 된다는 언질을 주었다.
그런 내면적인 사유를 품은 결정대로 오후에 들어 스피드보트로 찾아온 네 명의 꽃 배 인원을 현문 당직자가 당직사관에게 보고한 후 승선시켰다.
수평선을 넘어가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남기고 있는 밝고 환한 태양 아래의 본선 갱웨이를 이곳의 야화들이 통과하여 승선한 것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항구에 찾아와 정박하고 기다리는 외항선으로 작은 보트를 타고 찾아오는 현지의 야화들의 모습을 예전에는 종종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런 행사를 하고 있는 지역을 만나기가 참 힘들어졌는데 이 항구에는 아직도 그런 일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결정이 그 후 선내에서 어떤 후일담을 만들어 내었는지를 더 이상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한 말만 더하고 끝내기로 한다.
그들의 승선 결과는 발생을 우려하고 있던 건강상 문제를 야기시켜서 다음 항구 기항 시 병원 치료를 받게 된 선원이 생겼던 것이다. 끝까지 막지 못했던 내 결정으로 후회의 아쉬움을 남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