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랜 없는 꽁지머리

위성 전화 거는 모습들

by 전희태


<무지개가 아름다운 저쪽에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 연결되어 있겠지>


0911018-PAGBILAO_0011.jpg 야간작업이 한창인데


마련이란 단어가 있다.

준비나 장만이란 뜻도 있지만 변통이나 당연이란 뜻도 가진 단어이다.

어렸을 때 집안에서 이 단어가 들어 있는 말을 들을 때는 매랜이란 발음으로 귀에 익게 생활해 왔다.

–매랜 없는 놈 같으니라고!

-넌 왜 그렇게 매랜 없이 구니? 식으로 귀에 남아 있는 단어이다.

마련이란 단어의 평안도식 사투리로 주로 준비성이 없어서 꾸중을 들을 때 듣게 된 단어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무슨 소식이 들어왔는가 확인차 이멜부터 여는데 잘 열리지를 않는다.

누군가 내 방 이멜 라인과 같이 연결되어 있는 브리지 위성전화를 쓰고 있어서 열리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어 올라가 보기로 한다.


 비싼 위성전화를 쓸 때는 호기롭게 사용하면서도 요금 계산을 위해서는 돈을 줄이기 위해 통화시간을 조금씩 줄이는 경향이 있는 선원들의 동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될수록 위성 전화를 쓰는 현장에 나타내 보이기 위해 일부러 찾아 올라가려는 뜻도 있었다.


브리지 도어를 여니 한창 전화를 하고 있는 꽁지머리가 눈에 든다. 위성전화를 매랜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이미 나한테 점이 찍힌 필리핀인 기관부의 부원이다.


지금껏 같이 동승하며 살펴보면 필리핀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에 전화를 거는 가족애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외국적 선박에 승선하려고 나온 수출 선원이란 입장을 강조해야 할 상황에서는, 그들의 위성전화 사용은 매랜-대책-없는 즉흥적인 면이 아주 많아 보인다.


실습생으로 승선하고 있는 애들 중에서도 한 달간 받는 실습비를 초과한 통화료가 부과되도록 사용하여 남에게 돈을 빌려서 갚는 친구도 여럿 보았다.


제삼자인 나는 이들의 이런 전화 거는 습관이 가족애의 발현이라는 관점에선 바람직한 일이라 하면서도, 그들이 승선하고 있는 이유인 경제적인 관점으론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일이라 판단하는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다.


전화기를 붙잡고 힘들게 연결만 되면 이들은 모든 것을 잊고 전화에만 몰두하여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가며 아마도 스트레스가 사라질 때까지 통화를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꽁지머리를 뒤로 보이며 전화를 걸고 있는 기관부 친구도 바야흐로 이야기의 삼매경에 빠져서 주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싶은 분위기로 전화를 하고 있다가 내가 나타난 인기척에 멈칫하며 현실로 돌아왔는지 잠시 후 어찌 마무리를 지어 얼른 통화를 끝낸다.


내일이면 필리핀을 떠나야 할 예정이라 그전에 어찌 만나게 될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전화를 걸은 것일 거라 짐작하며 당직사관인 일항사와 아침 인사를 나눈 후 브리지를 떠난다.


일항사가 지키고 있는 브리지에서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던 거니 그 친구 그렇게 매랜 없이 전화를 걸은 것은 아니라고 여겨 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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