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사진 위의 두장은 현지에서 지불할 때 모두 사용하였다.
CTM(Cash To Master)이란 해운 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사선으로 필요한 선용금을 현금으로 송금해주어 본선 선장에게 전달되게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결국 배의 선장에게 돈이 전달되게 이일을 최종적으로 맡아서 완수하는 부서는 현장에 있는 대리점이다.
통상 회사가 송금한 외국환을 받은 은행은 본선의 대리점에게 자신들의 정해진 수수료를 빼 준 액수를 대리점으로 송금해주고, 대리점은 또 자신들의 부대비용을 제하고 남은 돈을 본선에 전해주어서 CTM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달되는 CTM의 액수가 본선이 회사에 청구한 액수와 일치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회사는 은행과 대리점이 덧붙인 수수료를 포함한 액수를 확인하여 그 전체 금액을 송금해주는 것이다.
이런 경로를 통해 최종적으로 본선에 전달되는 돈은 처음 발권된 표시를 그대로 가진 신권의 묶음이던가 아니면 해당 은행에서 관리하여 자신들의 표지를 넣은 묶음 띠를 둘러 찬 믿을 수 있는 돈으로 행세하며 전달되는 것이 지금까지 봐 온 통상적인 외국에서의 CTM 현황이었다.
그런데 이곳 필리핀에서는 이미 며칠 전에 송금이 끝난 돈을 입항 수속과 함께 전달해 주는 게 아니라 입항하고 만 이틀이나 지난 후이며 일요일인 오늘 저녁이 되어서야 전달해 주겠단다. 그것도 왜 안 건네주느냐고 따지듯이 물으니까 나온 말이다.
몇 번이나 독촉 아닌 독촉을 하며 기다리던 돈이 도착하였다며 운송인이 나타난 것은, 오늘도 안 되는 것인가? 거의 포기하는 마음이 들고 있던 밤 1950시이다.
사무실에 정좌하고 꺼내 들은 세 뭉치의 돈다발을 받으며 보니 은행의 표지는 아무 곳에도 없는 고무줄로 질끈 동여진 100달러짜리로 100장씩 묶은 두 다발의 1만 달러 묶음과, 80장의 100달러 지폐와 20달러짜리 한 장 5달러짜리 한 장 그리고 1달러짜리 네 장을 한데 묶어 놓은 8,029달러 한 묶음으로 모두 세 다발이다.
배에서 숙식을 하고 있던 대리 점원 두 명과 돈을 가지고 온 사람까지 합친 세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 혼자 열심히 세어서 검수의 끝을 내었다.
액수는 다 맞지만 결코 전문적으로 위폐를 감식할 능력이 없는 내 실력이니 속 마음에는 영 떨떠름한 앙금이 계속 남는다.
이들이 가지고 온 돈의 묶음에서부터 돈의 모양이 모두 기 사용권이긴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위폐를 속이려고 쓰던 돈 같이 만들어 넣은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 지폐 겉면에 여러 가지 모양의 무늬나 사인 같은 표지의 도장 찍혀 있는 것도 많았고, 개인적으로 보이는 서명이 그려진 것도 있어서 그 자리에서 한마디 하니 위폐 검열을 한 은행에서 자신들의 표시를 해 놓은 것이란다.
그래도 미흡한 마음이 드는 것을 트집 잡아 좀 더 씨름질 하듯 이야기를 나누어 나중을 대비하는 꺼리를 만들어 놓은 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을 때쯤 그들이 가지고 온 영수증에 인수 서명을 해주고 이번 항차 CTM은 끝을 내었다.
이들을 믿지 않을 수 없기에 그냥 받아들인 것이지만, 혼자 남은 후 자세히 살피며 다시 세어 보니 장수는 여전히 틀리지 않았지만 100달러 권 한 장이 <벤자민 프랑크린>의 초상이 작은 모습인 구권의 화폐였고, 또 한 장은 지질의 변색이 너무 짙어 보이는 갈색으로 튀는 것이 있어 이것들은 나중 이곳에서 현금 지불할 때 사용하여 돌려줄 수 있도록 미리 빼어 놓았다.
특히 구권의 화폐는 필리핀 은행에서 환전할 때는 받아 주질 않는다는데 그런 지폐가 돈 묶음 가운데 들어 있다는 것은 이 돈다발이 은행에서 직접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봐도 될 터이니 운송 전달인 들이 중간에서 장난친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꾸 들어서는 의심을 일단은 잠재워 놓았던 것이다.
빼어 놓았던 의심쩍었던 지폐 두장은 나중 현지에서 사용했지만 아무 이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