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마지막 태양

어느 바다에서의 송구영신

by 전희태
2009년의 마지막 태양.jpg

<여느 때와 별다른 점이 많은 저녁 해는 아니지만 그를 보는 마음이 유정하니 달라 보이는 섣달 그믐날의 넘어가는 해>



금년을 보내는 마지막을 마감하는 날에 해는 무언가 부끄러운 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잔잔한 파도로 평화롭게 둘러 싸여 있는 수평선 너머로 마지막 날을 떠나가면서 수평선에 닿기 전에 미리부터 구름 속에다 몸을 푹 잠기듯이 숨어들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마저 삭으러 들은 윙 브리지에 서 있는 내 몸 위로 달리는 속력이 만들어 준 약간의 축축하나 시원한 감각을 지닌 바람이 땀의 흐름을 이미 차단하고 있다.


수평선 위가 깨끗하니 구름이 걷혀 있다면 아직도 뜨거운 여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해의 입장 이건만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구름 속에 숨어들기가 바쁜 마치 도망자 같은 모습으로 최후의 빛깔을 갈무리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주위에 있는 구름에 붉은 석양의 물감이라도 뿌려주는 선심이라도 써주면 좋으련만 지금 모습으론 황혼의 페인팅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며 2009년의 마지막 날 저녁이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지 아니면 그런 일 모두 부질없는 사람들의 못난 생각에 빠져든 덜 떨어진 일이니 그만 잊으라는 것인지~ 해는 그냥 구름에 버무려 들며 수평선을 넘어가 버린다.


 자그마한 기대마저 품으며 그런 해를 지키듯 사진기를 들어 몇 커트 찍어 보지만 때깔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09년을 적도 부근의 태평양에서 열심히 북상하고 있는 우리 배 안에서 해에게 걸었던 기대를 접어들이며 배의 모습에 눈길을 돌리기로 한다.


호주에서 빼내지 못했던 발라스트 탱크의 바닥에 깔려서 남아 있던 해수를 지금 열심히 갑판 위에다 뿜어내고 있는 칙칙이 펌프(주*1)에 연결된 호스는 끊어지지 않는 작은 물줄기로 갑판을 적셔주고 있다.


이번 항차는 최대로 실을 수 있는 짐을 선적한 관계로 중간 기항하여 특별히 급유를 하는데도 그 양을 마음껏 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떠날 때 측심한 결과를 가지고 계산한 미처 배출시키지 못한 남은 발라스트의 양이 자그마치 280톤이었다. 그만큼의 화물을 못 싣고 배는 흘수가 갈아 앉았다는 말인데 지금 그 양을 뱉어내게 하여 그만큼의 연료유 보급 량을 늘이겠다는 게 용선주의 뜻이고 우리는 그에 따르기 위해 남아있는 발라스트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뽑아 내버리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배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1 칙칙이 펌프 : 이동식 에어 펌프로 선내에 남아있는 물들을 이동, 배출할 때 쓰이는 이동식 펌프임. 물을 품어 올리며 내는 소리를 나타내어 통상 칙칙이 펌프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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