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링을 위한 이로 기항
본선은 이미 작년이 되어버린 5월 말경 집을 떠나서 승선한 배로 현재 목적지를 중국으로 향하여 항해하던 중 어쩌다 용선주의 뜻에 따라 여수항에 들려 중간 급유를 하려는 예정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이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은 승선중 집에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볼 수 없는 국내 불기항선을 타고 있다는 건데, 마침 국내항에 입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딱히 집에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더라도 혹시나 하는 반가운 마음 설레게 되는 기대 역시 가져보는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북위 20도까지 올라오는 동안에는 겨울 날씨 답지 않은 따뜻함과 잔잔한 바람 속에 편하게 달려온 항해였는데 30도선이 가까워지며 일본 규수의 동쪽 끝 단에 있는 도카라 군도 속을 헤집고 들어설 즈음해서는 세어지기 시작하던 풍력이 7이 넘는 센 바람으로 백파까지 앞세운 파도마저 곁들이어 정면으로 선수를 치며 달려들고 있다.
당연히 속력도 2~3노트 떨어져 여수 외항 도착이 아침 무렵이었던 예정부터 오후로 밀어내 주고 있다.
행여나 좋아질까 기다리는 마음도 보람 없이 대리점에서는 그들의 오너인 우리 배 용선주에게 외항의 기상 악화로 그곳에서의 급유가 힘들어 내항으로 입항해야 하는데 도선비가 1,350 여불 들것인데 어찌하오리까? 하는 전문을 넣어주며 우리에겐 참고로 전해주고 있다.
그래 바깥쪽에서 센바람 불까 맘 졸이며 급유하는 동안 내내 걱정하느니, 내항 안에 들어가 좀 편하게 급유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은근히 용선주의 승인 전문이 도착하기를 기대해본다. 늦은 저녁 무렵에 도선사 수배를 그대로 하라는 허가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이제 정확한 도착 예정시간을 계산해서 알려줄 차례이다. 현재 떨어져 있는 속력 10노트가 계속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고 남은 거리를 산출해 내어 계산하니 오후 –아니 밤 시간이 이미 시작되는 18시 30분이 되어야 도선사 승선 해역에 도착할 것으로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계산한 대로 대리점에 통보해주며 도선사를 수배해 달라고 전문을 함께 넣어 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승인하는 대답은 은근히 기다리게 하더니 그나마 예상외의 내용을 담고 도달했다. 날씨가 많이 나아져서 외항에서의 투묘 급유도 가능해졌으니 자력 도선으로 외항 쪽 급유 지를 직접 찾아가 투묘하라는 내용이다.
기상상황이 호전된다니, 용선주로서는 당연하고 타당한 이야기 이지민, 모처럼의 국내 기항인데 우리가 은근히 바라고 있던 일은 생기지 않고 그야말로 외항에서 기름만 받고는 그대로 출항해야 하는 일로 결판이 난 것이다.
전에 승선 근무하던 배로 광양을 정기 기항지로 하여 찾아다니곤 했던 이 곳에의 마지막 방문 기억도 이미 몇 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의 시점이다.
주위 상황 모두가 새삼 낯선 형편으로 느껴지는 상황 되어버리며 모처럼 기대했던 작은 만남의 기대감마저 그냥 허망한 바람 되니 스산한 마음에 쓴 입맛만을 다실 뿐이었다. 그러나 이젠 용선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일만 남아 있으니 그에 따라 투묘 지를 찾아가기로 한다.
조심스레 여수항의 외항 급유 투묘 지를 향해 접근하는 뱃길에는 실제로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고 날씨도 맑아져서 급유 시의 어려움을 많이 해소시켜줄 것이란 기대를 새삼 갖게 해주고 있음이 그나마 현실적인 안도감을 찾아주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는 투묘지에 접근할수록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는 서편 하늘에는 너무나 붉은 저녁 해의 동그라미가 마치 내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이라도 달래주려는 것인지... 마지막 황혼을 아름답게 불태워 주기 시작한다.
새해 첫날 만나보고 싶어 했던 일몰의 아름다움은 놓쳤었지만, 오랜만에 기항한 여수가 제 반가운 마음을 한껏 일러주기라도 하려는지 투묘 지점을 찾아드는 선수와 맞닥뜨려진 서쪽 하늘가에다 이렇듯이 눈부신 저녁노을을 뿌려주고 있다.
그 눈부신 빛살을 거역할 수없어 눈을 반쯤 감아준 채 전진 타력의 세기를 셈하다가 , 드디어 <렛 고 앵카!>의 투묘 명령을 내려준다. 마음먹고 있던 투묘 예정한 지점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