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얼고 있다

발해만의 유빙들

by 전희태
100110-E9_0011.jpg 바다가 얼어서 어름 덩어리를 흘려보내고 있다.
100112-E92_0071.jpg 추워 오는 바다 위로 어름이 깔리기 시작한다.



JINGTANG 항의 대기 묘박지에 투묘하고 하룻밤이 지났다. 장기 정박에 대비한 당직 태세 점검에 나서기로 한다.


그제 저녁 무사히 도착한 후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정박 중의 휴일들을 지냈고 이제 이틀째를 맞이하며 다시 정박 시기의 일상생활에 들어서기에 앞서 일과를 점검하기로 하는 것이다.


언제나 와 다름없이 아침 기상을 하고 나서 배의 일상생활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부터 습관적으로 시행에 나선 행동은 밤새 어떤 일이 있었는가 눈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배가 머무르고 있는 정박지 주위 바깥부터 살펴야 하니 닫힌 창의 커튼을 살짝 옆으로 젖히어 창 밖부터 살피는 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때가 항해 중이라면 항해등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불빛이 밖으로 새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창의 커튼을 열기 전에 방안의 불부터 끄고 나서 살짝이 내다보는 습관대로 할 것이지만, 오늘은 닻을 내려준 정박 중에 있으니 갑판의 조명등이 모두 환하게 불을 밝힌 상태라 그런 부수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그대로 커튼을 젖혀주며 선수 쪽으로 눈길을 준다.


창유리에 축축한 습기가 일부러 뿌려준 듯 뿌옇게 불투명한 모습을 머금고 있어 커튼 자락으로 살짝 문질러 주며 바깥을 내다본다.


아직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검은 바다가 환한 갑판 등불 빛에 이웃하여 보이는 중에 잠깐 무엇인가 희끗거리는 물체가 그 바다 위에 떠서 아주 천천히 뒤쪽으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선다.


파도가 치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파도라고 하기엔 너무 움직임이 조용하고, 배 역시 그런 정도의 파도가 일어 백파(白坡)를 보였다면, 선체의 흔들림이 제법 있을 텐데 조용하기만 하니 백파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물체가 물 위로 떠내려 가던 중 배 옆을 지나치고 있다는 뜻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일을 어둠이 막고 있다.


브리지에 전화를 걸어 그것이 무엇인지 당직사관에게 알아본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유빙(流氷) 덩어리로 조금씩 배 주위로 다가왔다가 지나쳐 흘러가는 것들 중의 일부라고 당직 사관은 대답해온다.


 아주 두꺼운 얼음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이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라 크게 걱정은 안 들지만 하여간 신경을 거스르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어둠이 어느 정도 물러나서 주위를 살필 수 있을 만큼 밝기 시작할 무렵 브리지로 올라간다.


윙 브리지로 나가는 문을 열고 나서니 싸늘한 칼바람이 귀 끝을 저미듯 스쳐 지나며 몇 번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검지 손가락 끝마저 금세 동통을 느끼게 해 준다. 무척 추운 날씨이다.


천천히 선수 쪽으로 다가왔다가 뱃전을 스쳐 뒤로 빠져나가는 그 얼음 덩어리들은 움직임이 아주 느리긴 하지만 잠깐 한눈을 팔고 있으면 어느새 저만큼 뒤로 빠져나가는 꾸준한 속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유속은 1~2노트는 되어 보인다.


수평선의 아래위에다 연회색의 구름으로 장막을 쳐 주어 그냥 하늘과 바다를 경계선 없는 뿌연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속에 갇혀 있던 태양이 어느새 솟구쳐 오르며 회색의 구름 덩어리를 물리치며 더욱 붉은색을 선명하게 키워가고 있다.


잠시 그 해에게 한눈을 파는 사이에도 가지각색 모습의 얼음들 행진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 방금 나타나는 것은 마치 연못 위로 떼 지어 피어 오른 연 잎들 마냥 둥근 모습을 하고 있다.


연 잎 모양의 유빙들 떼가 열병 의식이라도 취하려는 지 일사불란하게 배 옆으로 다가왔다가 뒤로 빠져나가고 있다.

100112-E92_0121.jpg <뱃길만을 열어 놓아준 것 같은 얼음 천지>

100112-E92_0071.jpg <연꽃으로 화하고 싶었던 것일까? 잔 파도에 너울거리며 움직이는 유빙 조각들>


100113-E93_0261.jpg 차트 룸 창틀에 비치는 어름들 모습


100114-E94_0111.jpg 밤이 되면서 점 점 두께를 더해가는 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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