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도착

또 새로운 배를 만나러 가는 길

by 전희태

먼저 번의 배는 중국의 칭다오의 수리조선소 푸로팅 도크에 올려 주고 며칠 지내다가 하선하게 되었다.

그때 언제나 안전하게 배를 정박 시킬 수 있게 앵커와 그 체인을 찬찬히 체크하고 정비하여서 다시 수납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도크 바닥에 쌓아 놓은 걸 보면서 교대 하선하여 연가에 들었었는데 어느새 다른 배로 나갈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_JHT00011.jpg 도크 바닥에 쌓여 있는 앵카와 그 체인.

달콤한 연가의 기간은 손꼽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조차 못 가진 채 그렇게도 빠르게 흘러가 버렸고, 드디어 두 달 간의 연가를 되돌아볼 염도 못 가진 채 다시 바다로 떠나기로 한 날을 맞이한 거다.


그렇듯이 늘 나를 실어 줄 새로운 배를 만나야 하는 곳을 향해 가야 할 길이 이번에는 싱가포르로 결정되었다. 초년 선장 시절 시멘트 관련 화물을 실어다 주느라 들렸을 때에는 이 나라가 한창 건국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정립하던 때이어서 인지 활기차게 느껴지며 호감도 많이 가던 곳이 싱가포르였다.


최근에는 급유를 위해서 또 보급품 수령을 위해서가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길로 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륙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그 옛날에 느꼈던 감흥을 다시 경험 함이 힘든 것 같다. 어쩌면 이곳의 살아가는 룰이 꽤나 빡빡하게 변했기 때문도 이유일 거다.


어쨌든 싱가포르는 항구로서는 아주 좋은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그 이점이 도시 국가인 이곳을 세계적인 경제를 움직이는데 한몫 거들게 하였고, 그렇듯 모든 게 자리 잡힌 지금에 와서는 국민들을 제법 큰소리치며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하고 있다.


지금껏 여러 번 이곳을 드나들었지만 배의 볼 일을 위해 바다 쪽에서 입항을 하다 보니 이제 공항을 통해 직접 안으로 들어서는 입국 형편에 작은 호기심과 흥분마저 갖게 한다.


좀 더 정확한 도시의 내막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지만 한밤중의 도착이라 그냥 어둠 속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파묻힌 정조 이상의 느낌은 바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냥 이곳에서 교대를 위해 들렸던 선원들 간의 소문으로 출입국 절차나 세관의 태도가 까다롭다는 정보가 더욱 부각되는 상황으로 이번 교대에 참가한 선원들을 은근히 주눅 들게 할 뿐이다.


 아직 어둡기 전에 인천 공항을 떠난 비행기 내에는 어린아이들도 몇 명이 포함된 승객들로 만석을 이룬 열기가 후끈하게 다가왔다.


다행히도 그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칭얼대거나 울지를 않아 그나마 편한 맘으로 늦은 저녁의 기내식 서비스를 받다 보니 비만을 걱정하며 음식 섭취를 하는 여유를 가져 본다.


승무원이 나누어 준 기내에서 작성하는 출입국 관련 신고서류를 열심히 만들어 들고 섭씨 29도가 기다리고 있는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길게 이어진 승객들의 뒤를 쫓아 나가서 탁송화물을 찾으려고 서두르는 우리 앞에 묘령의 양장한 여인이 손에 들은 A-4형 종이쪽지를 들어 보이면서 우리의 발걸음을 멎게 한다.


교대할 선원들을 마중 나온 대리점에서 수배해 준 여인이다.


일행을 따로 다 모이게 한 후 기내에서 열심히 적어 든 신고서는 빼어 버리고 여권만 한데 모아 받아 들더니 출입국 사무실로 사라진다.


얼마가 지난 후 나타난 그녀는 입국 신고가 끝났다며 타 승객들과는 다른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내 보내주는데 지키고 있는 관리들도 나가라고 고개를 끄덕여 준다. 같이 따라나선 그녀가 우리 짐을 찾을 곳이 33번 레인임을 알려준다.


이미 대부분의 승객들이 짐을 찾아간 레인 위에는 마지막 남은 짐들이 계속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돌고 있었다.


 모두들 짐을 찾아 들고 다시 모이니 그냥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한다. 이제 그곳은 세관이 지키고 있는 마지막 입국 선이다. 밖으로 나서니 호텔로 안내할 사람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몇 달간 살아가려고 네 명의 교대 선원들이 싸가지고 온 짐이라서 준 이삿짐 상태이니 미니 버스에 옮겨 싣는데 만도 한참이 걸리며 땀방울마저 솟아나게 한다.


어둡고 화끈한 야간의 싱가포르는 별 감흥 없이 우리를 피곤한 상태로 맞이해 준다. 요리조리로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FRAGRANCE HOTEL이란 이름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장급 여관 정도 수준을 가진 숙박업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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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던 프런트 데스크 맨이 맞이하며 여권의 인적 사항을 기재한 후 방을 배정해 줄 때에 우리를 안내해준 운전기사는 내일 아침 6시에 다시 픽업하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우리들과 임무교대라도 하듯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니 체크아웃 하며 떠나가던 두 쌍의 젊은 남녀의 모습을 보며, 이곳이 러브호텔 영업도 하면서 우리들 같은 손님을 받는 곳이로구나 짐작해 본다.


일반 호텔같이 룸 보이의 서비스도 없이 스스로 짐을 끌고 방을 찾아가는 통로는 그런대로 시원하게 식어 있었는데 막상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서니 후덥지근한 열대의 열기가 후끈하니 얼굴을 덮친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쓸어 내리며 벽면을 살피니 그래도 에어컨디셔너의 버튼이 보여서 눌러준다. 좀 시끄러운 음을 동반하기는 해도 금세 천장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온도를 22도에 맞춰준 내용을 확인하며 그대로 두었지만, 샤워를 한 후 여름옷으로 바꿔 입게 짐을 정리해 준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28도에 맞춰 주기를 했다.


바깥을 다녀 관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번화가에서 떨어진 곳이란 직감에 관광은 포기하기로 하고 내일 새벽 6시의 모임을 생각하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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