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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an 08. 2019

두 시간의 여유시간

귀책사유 없는 금쪽같은 시간

HYDROGRAPHER’S PASSAGE PILOT를 하선시키려 나타난 헬기 


출항 시  하선하는 도선사를 싣고 간 헬기




 중국을 출항한 지 열흘이 지나면서 목적항인 호주의 DALRYMPLE BAY에 도착하기 전에 승선시켜야 하는 HYDROGRAPHER’S PASSAGE의 강제 도선사 승선을 위한 도선구 도착 예정시간(ETA)을 1일 18시로 이틀 전부터 정해 놓고 계속 전문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중국 출항할 때는 오전 11시쯤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하며 달렸던 것인데 항주 중 속력의 저하로 인해 그 정도 늦어지게 되면서 결국 밝은 낮 시간 도착은 놓치고 이제 어두워지는 때에 도착하는 것이 되어 헬리콥터로 날아오는 도선사를 맞이하는 데는 별로 탐탁하지 못한 여건이 된 셈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며 마지막 점검으로 불을 켜 본 갑판상 조명등과 항해등의 상태에서 무더기로 불량한 개소를 발견하여 하나씩 전구를 갈아 끼우고 휴즈를 바꿔주었지만 선수 전장 등에 설치되어 있는 갑판 조명등이 접지 불량을 나타내어 수리 시간이 좀 걸려야 하는 고장으로 나타나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도선사의 승선 시점이 어두워진 후이기에 헬리콥터가 본선에 내리기 위해서는 전 갑판의 불을 밝혀주며 준비해줘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등인 선수 쪽에서 뒤로 비추는 갑판 등을 켜줄 수 없다는 것은 이곳 기항 시 PSC 수검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결함 사항을 발견해낸 셈이기 때문이다.


 우선 최대로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여 도선사 승선 전에 결함사항을 해결하도록 독려하면서도 너무나 빠듯한 작업 시간이라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형편이다. 


 그런 와중이라도 본선으로 오는 연락 사항의 유무를 체크하기 위해서 이멜은 열어 봐야 하는 일인데 마침 도선사 사무소에서 자신들의 상황 때문에 도선사의 승선 시간을 저녁 8시로 두 시간 늦춰달라는 내용의 이멜이 들어와 있다. 


 얼른 알았다고 회신을 보내는 심정은 예기치 못한 큰 선물을 받아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은 지경이다. 즉시 기관을 정지시켜 POB(PILOT BOARDING GROUND) 도착 시간을 두 시간 지연되게 조정해주기를 실행한다.


 그렇게 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갑판 조명등의 수리부터 끝내주도록 기관부에 요청하며 일을 진행하여 결국 다시 기관 사용을 시작하는 여섯 시 반까지는 완전하게 수리의 끝 맞춤을 해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쉬어가는 시간이 나섰기에 본선 측으로는 아무런 귀책사유 없이 나름대로의 수리 시간을 얻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우리를 위해 도선사 사무실이 나서 준 선물로서, 세상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또 한 번 생각해보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이제 완전히 어둠에 묻힌 속에 도선사 승선 해역이 10마일 정도 남겨졌을 때 우리와는 반대쪽에서 만선으로 짐을 싣고 수로를 빠져나오는 배가 있는데 열심히 파이로트 헬리콥터를 부르고 있다. 


 아직 아무런 응답이 헬기로부터 없지만, 그 배와 우리와는 계속 가까워지는 상황이라, 우선 우리 배와의 지나침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그 배를 불러내어 어떻게 통항할지를 물어본다.


 우리 배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던 녹등 대 녹등-우현 대 우현-으로 통과하자고 응답 해온다.


그렇게 통항 방법을 결정하는 동안에도 양선은 계속 가까워졌고 이윽고 서로 간에 약속한 대로 안전하게 지나치고도 한참이 지났을 무렵 또다시 애타게 부르는 그 배의 호출에 응답하고 나서는 파이로트 헬기의 대답을 듣는다. 그들의 대화가 끝난 후 우리도 헬기를 불렀다. 


  20시에 도착한다고 이야기해주니 20시 10분에 승선할 거라는 대답을 해온다. 20시 10분 도선사 승선에 맞추도록 속력을 조정하며 갑판상의 모든 불을 자신 있게 켜주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열심히 고쳐서 불이 들어오게 해 놓은 조명등은 예열 시간을 가진 잠시 후부터 주황색 빛을 내뿜으며 밝아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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