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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an 11. 2019

신조 자매선과의 짧은 회자정리(會者定離).

이산 가족이 만난 것만큼 반갑고 아쉽고


 싱가포르를 향해 가라던 용선주의 지시가 이곳 달림풀베이로 바꾸어서 달리라고 했을 때, 현지 대리점에서 온 전문은 약 15일에서 20일 정도는 외항에서 투묘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예상을 통보해 주고 있었다.


 한밤중 도착한 현지의 항만 VTS에서 지정해 준 투묘지로 가서 닻을 내렸을 때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밝히고 있는 것들은 모두 배로서 마치 새로운 수상도시가 생겨나 있는 것 같았다


 캄캄하게 어둠을 만들고 있든 브리지 속에서 레이더 화면을 통해 흰 점으로 나타나는 것 역시 모두 배로서 옆동네인 헤이 포인트 투묘지에 있는 배들까지 합쳐서 그 숫자를 헤아리니 모두 88척이었다. 

레이더 화면을 꽉 채운 선박들의 영상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름 안에 들어간다는 예정은 매우 빠른 선택된 환경임을 알겠다.


 사실 4월에 들어와 어언 2개월째 기다리고 있는 배들도 수두룩한 상황에서 그런 배들을 모두 뒤로 돌려세우며 앞으로 나서는 빠른 예정을 보여주는 배를 타고 있다는 마음은 그런대로 흐뭇한 우월감을 품을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이틀에 한 번씩 알려주던 밀고 당기던 접안 예정이 그런대로 다른 배들 보다는 앞서서 진행되어 도착한 지 만 보름 만에 부두에 접안하였다.


어느새 18개월로 접어든 신조 이후의 기간에 호주를 너 댓 번 기항했으면서도 아직까지 PSC 검사를 받지 않고 있어서 늘 목안에 가시가 박힌 듯 한 껄끄러움을 가지고 항상 그 준비에 다른 할 일이 미루어지던 형편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부두에 접안하자마자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


 드디어 접안이 되어 작업을 시작하던 날이 다행히 휴일을 피해 입항이 되면서 이번에는 하고 기다리던 점검이 있으리라 예감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이나 되는 인원의 PSC 서베이어가 승선한다. 다행히 그중 1명은 그들 자체의 내부감사를 위한 점검관이라고 하여 한시름 놓았다.


 각각 갑판 기관으로 나뉜 점검관의 세밀한 승선 점검이 진행되었지만 점검 사항별로 대비한 본선의 작업 결과가 효과를 가져 수검 상황도 만족스러운 상태로 끝을 보아서 그간의 노고가 빛을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도 그 결과에 대하여 수고했음을 이야기하며 축하해 주는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상륙할 생각도 반납한 채 준비하면서 무사히 끝낸 수검 결과에 만족하며 드디어 짐을 다 싣고 출항을 기다리게 되었다. 


 앞쪽 선석에서도 터그 보트들이 밀어내듯 보낸 자리에 어느새 교대하여 들어온 배가 선적 작업에 빠져들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출항에 대비하여 들고 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몇 장 찍 어 본다. 


 이른 저녁 무렵이라 마지막 태양의 광선이 그대로 카메라와 내 눈을 파고드는 역광 속의 배 모습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눈에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는 실루엣에 다시금 자세히 살펴보니 진짜로 우리 배와 너무나 흡사한 자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선체는 검은색이라 우리와 같지만, 하우스의 색깔은 아주 밝은 흰색이고 굴뚝 마저 온통 하얗게 칠해진 모습이 마치 순백의 유니폼을 차려 입고 열심히 환자를 돌보고 있는 정결한 모습의 간호사를 대하는 것 같은 상큼한 느낌마저 주는 모습이다. 

1번 선석에 좀 전에 들어와 작업을 시작하던 M/V BATTERSEA의 모습


선미의 배 이름을 쌍안경을 들어 찾아본다. 맨 위쪽에 배 이름 BATTERSEA, 그 아래 선적항은 MAJURO, 맨 밑에 IMO NO.9457402로 적혀 있다.


 선명 BATTERSEA, 선적항은 MAJURO, 배의 고유번호는 IMO NO.9457402라는 뜻이다.  

이 세 가지 중 IMO NO. 는 우리들의 주민등록 번호와 같이 그 번호 하나로 그 배의 모든 이력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관련 책자를 얼른 뒤져 본다.  2009년 목포의 대한조선에서 신조 건조한 벌커라는 출생지부터 시작하여 편의치적상 선적은 마샬 아일랜드로 되어 있다. 역시 짐작한 대로 우리 배 <씨. 윈너> 와는 태어난 곳이 같은 대한조선이니 자매지간이 맞다는 이야기이다. 

 작년에 진수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우리 배가 몇 달 빠른 언니 배인 셈이다.


  동형의 크기도 같은 배로서 그야말로 같은 조선소에서 아마도 같은 도면으로 지어진 자매선이지만, 태어나자마자 각각의 선주에 이끌려 헤어져 버린 운명이므로 다시 만나기는 좀처럼 힘든 게 이 바닥의 생리이다.


 어쩌면 영원히 포기하고 있었던 잃었던 쌍둥이를 우연찮게 길에서 조우하여 만나 본 기분을 상상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비록 몇 시간도 안되는 짧은 스쳐 지나는 만남이지만 야릇한 감흥을 가지고 그 배의 옆을 지나치며 출항에 임하며 본선과 비교되는 몇가지 사항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흰색이라 우리 배보다는 어딘가 약해 보이긴 하지만 그 대신 깔끔하고 정결해 보이는 모습에 호감을 가지며 이제 짐을 한창 싣느라고 발라스트를 배출하는 모습을 흘리듯 지나치며 언뜻 한 가지 사항을 확인하러 선수 쪽을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배의 선수 마스트가 배의 기관사용의 증감 때마다 떨리는 진동이 심해서 마구 흔들리는 상황을 막아보려고 선수 마스트에 스테이(와이어로 된 지지구조물)를 설치하려고 와이어를 신청하고 있는데 그 배의 형편은 이미 설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건데 그 배도 설치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우리 배의 선수 마스트 위쪽 부분에는 스테이를 설치할 수 있게 페드 아이가 이미 붙어 있었기에 그 배 역시 그런 게 있는가를 보려고 다시 열심히 쌍안경으로 살펴보았지만 그것까지 알아보기에는 좀 먼 거리이다. 

우리 배가 떠나기 바로 전에 앞쪽 부두에 접안한 M/V BATTERSEA의 모습



우리와 같은 DARLYMPLE BAY 부두에 접안한 M/V BATTERSEA의 모습. 그 앞쪽은 HAY POINT 부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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