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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an 22. 2019

막힌 수채 구멍 뚫기

                                                        <주기관의 모습>

파이프를 들어낸 프랜지 부근에서 쏟아져 나온 오물을 닦아내는 모습


 엊그제는 일요일이라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는 모처럼 물을 써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내 하수구가 막혀 주방에서 배출하는 개숫물이 빠지지 않는 비상상황이 발생하여 모든 청수 사용이 일단 금지되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구름이 잔뜩 끼고 강풍이 계속 불어 주면서 거세어진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선체 롤링에 맞추느라 몸의 자세를 따라주다 보니 짜증 역시 곱으로 늘어나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휴일이니 수리 작업은 하지 않고 평일인 다음날로 미루기를 하며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을 어제로 미뤄주었던 하수구 재개통 작업이 바라는 대로 하루 만에 끝내질 못해 오늘도 계속 세면기 사용을 금지당한 채 한나절을 더 보내고 있다.


점심 식탁에서 만난 기관장에게 수리 작업 현황을 들어 보기로 한다.

-어떻게 작업은 잘 되고 있습니까?

-그게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꽉 막혀 있어서….

 꽉 막혔다는 대목에서 입을 다물어 심란한 표정을 만들면서 길게 늘이는 대답을 한다.


사실 내가 듣기를 원한 대답은 일이 잘 진행되어 오늘 중에는 끝이 나서 얼마든지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대답이었는데 더 이상 말도 안 하고 기다리게 만들고 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 기분 좋게 설명하며 대답해도 될 것인데 마치 큰일을 하니 그 수고를 알아달라는 태도가 섞여서 일까? 입안으로 꾸물거리며 생색을 달아내는 태도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일순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러나 내 일방적인 생각으로 기분 나빠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니, 더 이상 독촉해서 말을 거들지 않고 입 다물고 가만히 기다리기로 한다.


-막힌 곳을 풀어내니 고였던 물이 쏟아져 나와….  

 다시 계속하는 말은 고생한 이야기로 좀 뜸을 들여진 후 이어져 나온다. 


-그렇죠. 냄새는 또 어찌나 지독한지… 기관실에서 제대로 냄새가 빠질지 모르겠네요.  

  옆에 있던 일항사가 수고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여운을 주는 말로 거들어 준다. 


-그래도 오늘 중으로 끝은 나겠지요?  

-글쎄요. 어쨌든 끝내도록 해야지요.


 식사가 끝난 후 오후 과업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기관실을 찾아 나섰다. 아직 한참은 더 뚫어내는 작업을 하느라 바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간 작업장소에는 쏟아져 나왔다는 오물질 들을 닦아내는 걸레질이 한창으로 작업은 거의 다 끝난 상태로 보인다. 


-어느 정도 되었어요? 

 마침 현장 청소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갑판장이 보이기에 물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여기에 이 파이프만 붙이면 다 마무리될 겁니다. 

3미터가량의 양쪽 끝단에 플랜지가 붙어 있는 옆에 놓여 있는 파이프를 가리키며 갑판장이 대답한다.


 시끄러운 기관 소리에 귀가 멍해서 잘 들리지 않으니 가까이 다가와서 큰 소리로 대답을 해주는 갑판장은 데이 워크 팀의 갑판 부원들을 데리고 수리 후 마지막 뒤처리 청소를 해주려고 기관실로 내려와 청소 지휘를 하고 있던 중이었으리라.

들어내어 속을 모두 닦아낸 하수 파이프의 모습

 그 플랜지가 달린 파이프는 주방에서 내려와 기관실을 관통해 나가는 메인 하수배수관의 사이에 붙여져 있는 거라는데 그곳의 이음 부분이 막혀서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다. 


 하수구에서 풍기는 독특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사정없이 자극하며 주위에 퍼져 있다. 쏟아져 나오면서 흩어진 오물의 잔재들이 주위의 파이프와 메인 엔진 배출가스 연돌 커버 등에 검은 자국을 만들어 준 것을 열심히 닦아내는 모습들도 보인다.


 조금은 일찍 내려와서 그 터져 나오는 오물과 함께한 사람들의 모습도 봤어야 하는데, 작업이 좀 더 걸릴 것이라 여긴 내 생각이 너무 안이했던 모양이다. 


 하긴 내 방에서 기관실 그곳까지는 최소한 8층 이상이 되는 높이라 마음먹고 찾아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꾸물거린 것도 그런 작업 상황을 직접 못 보게 된 원인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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