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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an 23. 2019

아직 차항(次港)에 대한 소식은 없고

선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갑판 및 선창 청소는 기본적으로 행해지는 일과이다
선속 15노트의 속력은 벌커선으로서는 빠른 편에 속하는 상황이다. 뒤로 빠지는 스크루 와류의 모습이 시원하다.
저녁 무렵 지나가는 바다, 하늘의 모습은 구름이 색칠을 받으며 화려하게 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통상적으로 벌커(BULKER)-(*주1)가 선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당지 대리점으로 ETA를 통보해 주면 즉시 화물은 어떻게 선적할 것인지 PRE-STWAGE PLAN과 LOADING SEQUENCE를 물어 온다.


 본선에서는 그럴 때면 용선주(또는 선주)가 알려준 항차 지시서에 있는 내용에 따른 주어진 흘수에 적합한 최대의 화물량을 싣도록 PRE-STOWAGE PLAN을 짜서 보내주곤 한다.


 이번 항차에도 도착 예정을 통보하니 즉시 선적 예상도를 알려 달라고 회신이 왔지만 안타깝게도 즉시 회신을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용선주가 선적에 대한 확실한 지시서를 보내주지 않고 자신들이 싣고 싶었던 양이나, 흘수 제한에 의한 두 가지 선적 예상도를 본선에 물어오곤 더 이상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으니 어떤 컨디션으로 선적을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서너 번 선적 예정 상황에 대해 알려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커녕 아무런 회신이 없으니 도대체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회사에 연락하여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회사 역시 별 뾰족한 소식이 없는 형편이라 이젠 두고 보기로 약속이나 한 듯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일방적인 추측으로 떠 올리는 생각들은 근래 해운시황이 나빠져서 아직까지 확실한 화물을 확보하지 못한 용선주가 계속 화물을 찾아보느라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들이 빠져들 수밖에..... 


 -우리 배 이러다가 혹시 브라질로 가라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휴 그런 김새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요.

-아, 그만두세요. 이번에도 호주 포트 헤드랜드를 향해 가라는 말이 나올 뻔하지 않았어요.


  같은 시간 같은 식탁에서 얼굴을 함께 하는 기관장이나 일 항 사 등과의 대화가 종종 이런 식으로 진행되며 길어지기도 한다. 혹시 지금 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라고 갑자기 행선지가 바뀌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를 품은 이야기들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긴 얼마 전, 이번 항차 순다 수로를 빠져나오기 전후를 한 시점에 호주 포트 헤드랜드를 가게 될 경우에 대한 검토를 급하게 지시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아직 선창 청소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있었던 때문에 만약 그곳을 향해 가라고 한다면 너무나 바빠지는 사전 준비사항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는 좀 난감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선적지는 결정되어 도착 6일 전이 되어, 모든 서류를 미리 준비하며 끝내야 할 시점에 다가서고 있는 데, 아직도 와주지 않은 선적 관련 지시서를 기다리느라고 매시간 열어보는 이멜을 확인하려고 브리지를 자주 드나들고 있는 거다. 


 -아직 소식 없는 거야?

-예, 용선주한테서 온 소삭은 아직 없지만....

-대리점에서 온 이멜은 하나 있습니다.

-그래 무슨 내용인고? 


 열어 본 이멜은 ISPS관련 통보에 대한 입항 전 보고를 가지고 입항수속에 임하겠다는 대리점의 회신이 온 것이다.


 선적을 위한 입항은 예정대로 틀림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를 대리점의 회신에서 찾았지만, 아직 그곳에서 실은 짐을 풀어줘야 할 양하지에 대한 모자라는 정보로 인한 궁금증을 삭이느라 마음만은 여전히 바빠있다.

얌전하게 지는 저녁 해를 보면서 내일도 해는 떠 오를 거라는 사실을 확인은 받지만.....


*주1- 벌커(BULKER) : 벌크 화물선(Bulk Carrier) 또는 살물선(撒物船)이나 산적화물선(散積貨物船)이라 일컫는 통상적으로 곡물,광석,석탄 등의 화물을 포장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선창에 싣고 수송하는 전용 화물선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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