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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03. 2019

기항지의 변경

이따금 겪는 Tramper(부정기선 *주1)의 비애

 

 나흘 앞으로 다가 온 입항에 대비한 마지막 서류 점검도 끝내고,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ETA를 열심히 체크하여 연락을 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기항 목적 항이 바뀌었다는 통보가 용선주로부터 왔다. 


 우선 새로운 곳으로의 ETA부터 산출하여 알려주기 위해 관련된 해도가 제대로 있는 지부터 조사해본다.


 현재 우리가 달리고 있는 남중국해 남부에서부터 새롭게 가야 한다는 FANGCHENG을 가기 위해 필요한 해도는 BA41, 3988, 3989, 3990, 3991번의 다섯 장의 BA CHART가 필요한데 그중 원래의 목적 항이던 GUANGZHOU로 가면서 필요해서 이미 가지고 있던 3991을 제외한 나머지 해도는 한 장도 없다.


 순간적으로 암담한 마음이 들어서며 느닷없이 행선지를 바꾸는 용선주의 운항 형태를 향한 신경질적인 노여움이 X새끼들! 이란 욕부터 중얼거리게 만들지만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그들이 가라고 한 곳을 향해 두말없이 가야 하는 입장인 것을. 


 회사 영업 파트에 전화를 걸어 행선지가 안 바뀌고 원래대로 갈 수 있는 기미는 없는지를 알아보지만 이미 기대는 가질 수 없는 형편임을 재삼 확인받으며 전화를 끊는다.


  이제 해도를 구하기 위한 방법은 해무 부서에 연락을 하여 관련해도를 조각조각 스캔하여 이멜로 송신해주면 그걸 수신받아서 모두 이어 붙인 복사본 해도를 만들어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급한 상황을 감지한 담당자가 퇴근시간을 미뤄가며 항박도인 41번 해도와 접근 도인 3990번 해도를 우선 보내왔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해도의 작성을 완성하려고 수신하는 대로 이어 놓고 보니 카피할 때 조금씩 어긋나면서 크기가 차이가 나는 곳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선은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필요한 부분을 위주로 하여 이어 놓기를 하고 보니 원래 해도 크기가 반장 형태의 것인 41번 해도는 두 군데의 항구를 한 장에 기재한 것 중 FANGCHENG항 부분부터 수신하고 보니 그런대로 완성된 해도를 볼 수 있다.

투묘 지를 향해 가는 항정을 레이더 화면에 입력해 놓고 접근에 참조하고 있다.

 

 그러나 3990번은 전장 크기의 해도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필요한 접근로를 중심으로 카피한 결과 전부가 아닌 반쪽만을 보내온 것이었다.


 우선 접근 해도인 3990번을 살펴본다. 기재된 수심의 숫자들이 현재 우리 배의 흘수인 17미터를 감당할 등심선 부분이 어지간히 육지 쪽으로 접근하면 끝나버리어 41번 해도와 연결될 부분까지 마음 놓고 항해하기가 불가 한 거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반장 부분만 날아온 해도라 오지 않은 부분에 그 해도에 대한 설명 부분이 있었기에 수심의 단위를 알아볼 수가 없어 우선 설명 부분까지 다 온 41번 해도를 살펴보았더니 수심이 미터로 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였다. 


 워낙 마음에 안 드는 행선지 변경인 데다가 새롭게 맞추어 해결해 가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막히는 일이 생기니 차분히 다시 정리하며 살펴볼 생각은 못하고 흥분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번 광저우 기항도 흘수 제한으로 인해 외항에서 LIGHTERING 작업을 해야 하는 예정이 있었기에 그런 사항을 염두에 깔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긍정적이기보다는 그냥 흥분부터 먼저 해댄 셈이었다.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며 해도를 살폈으나 카피한 형편이나 해도 개정 상황으로 봐서 도저히 그 상태의 것으론 입항 작업이 불가능할 거로 생각되어 재 스캔하여 보내 주도록 회사에 요청하였다.


 그렇게 하루 밤이 지나서 다음날 다시 보내져 온 해도를 오려내고 붙이며 짜깁기를 다시 해놓고 보니 41번 해도나 3990번 해도 두장 모두 다 이번에는 최신 개보판의 해도를 카피하여 보낸 것이다.


 41번 해도를 보니 역시 SOUNDING IN METERS 써져 있어 수심의 숫자는 미터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도 마저 확인하자는 마음에 어제와 달리 모두 카피 되어 온 3990번 해도의 기사란을 보니 SOUNDING IN FATHOMS라는 알림 글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좀 전까지 FATHOM 단위를 미터로 착각해서 생겼던 우리 배의 흘수 문제는 아무런 걱정거리도 아닌 일로 된 행운(?)을 찾아낸 셈이다.


 1 FATHOM은 1.83미터이니 17미터 흘수라면 9.29 FATHOM까지의 수심은 안전한 셈이니 12라는 숫자를 미터로 생각해서 어두웠던 마음이 그냥 개어버린 것이다.


 확 트이는 마음에 새롭게 ETA를 산출하여 20일 12시로 보내 주었다. 조금은 그보다도 더 빠를 수도 있을 거로 짐작하면서 그렇게 재 통보해 준 것이다.


 그러자 즉시 들어온 대리점 이멜에서 BERTHING이 빨라질 수 있다며 처음 26일 출항으로 내줬던 예정을 25일로 당겨서 알려온다.


 예년 같으면 이미 열서너 개는 족히 생겼을 정도로 바빠 있을 태풍의 영향권이 될 수 있는 이곳인데 금년에는 얼마 전 4호 태풍이 겨우 우리나라를 지나간 형편으로 날씨가 좋은 셈이니 그들이 세워준 예정은 그대로 될 공산이 클 것 같다. 그러면 내 교대도 24일쯤이 되지 않을까 가름하며 이제는 변경된 기항지를 순응하는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다.

안전하게 투묘지에 닻을 내리고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주1 :Tramper(부정기선) - 정기적으로 일정항구를 기항하여 운항하는 Liner(정기선) 에 대비되는 운항형태를 가지고 화물등에 따라 기항지가 변할 수있는 패턴으로 운항하는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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