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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04. 2019

아이 참! 소리가 절로 난 어느 새벽

움직이는 배를 닮아 선내의 새벽은 늘 바쁜 시간이다.

- 움직이는 배를 닮아 선내의 새벽은 늘 바쁜 시간이다.-


 나는 원래가 새벽잠이 없는 편이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 시계를 보며 네 시임을 알았지만, 그것은 선내 시간을 이틀에 한 시간씩 전진하여 온 때문에 더욱 기상시간이 빨라진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하선할 때가 다 되어가니 그동안 열심히 덮고 자던 이불을 그래도 깨끗이 빨아서 교대할 다음 선장에게 인계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즉시 이불을 주섬주섬 걷어 들고 한층 아래에 있는 세탁장을 향하기로 한다.


 계단을 다 내려가서 세탁장이 있는 곳으로 꺾어 들어가려 는데 위~잉하는 고속 회전음이 들려온다. 누군가 이 새벽에 빨래 감을 넣어서 돌린 세탁기가 마지막 탈수 상황에 들어서서 고속 회전음을 흘려내고 있는 안간힘을 다한 소리임을 직감한다. 


 세탁장에 들어설 무렵 이제는 서서히 회전을 멈추어 가던 자동 세탁기가 작동을 멈추는 달칵! 소리를 내준 후 얌전히 전원을 꺼주는 상태로 들어섰다.


 얼른 다가서서 안에 들어 있든 세탁물을 끌어내어 옆에 있는 건조기로 바꿔 넣어준 후 스위치를 올려준다. 내 세탁을 수행하기 위해 할 수 없이 행하게 되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해보게 된 친절한 행위이다.


 달까닥! 소리를 내며 전원을 받은 건조기가 스타트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스쳐 보내며, 들고 내려간 이불을 비워낸 드럼 세탁기에 넣어 주기를 시도한다.


 그런데 세탁기의 드럼 크기가 얇은 이불 정도는 가능할 거로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드럼은 세탁물의 수용을 거부하고 있어 도저히 세탁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게 만든다. 할 수 없이 이불을 다시 얌전히 개키어 든 후 물러서 방으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어차피 세탁을 하리라 맘먹었던 새벽시간이다. 생각을 다른 세탁이라도 해야겠다는 것으로 바꾸면서, 사용하고 있던 모든 수건을 몽땅 거두어서 빨아 보리라 작정하며 방을 향한 계단을 다시 오른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재차 침대 위에 올려놓은 후, 즉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쓰던 수건들을 하나씩 거두어서 한 보따리를 만들어 들고 세탁장을 향한 층계를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불과 수건들을 울러 매고 오르락내리락 한 왕복의 순간들 사이가 길어도 5분을 넘기지 않은 시간이었고, 아무리 봐도 10분을 넘기지 못한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세탁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전원을 끄고 올라갔던 세탁기가 그 시간 중에 재사용에 들어서서 돌아가고 있음을 본다. 누군가 방금 하얀 침구 커버 한 장 만을 달랑 세탁기에 넣어 놓은 채 작동시키고 자리를 떠난 모양이다.


 행여 이 새벽에 빨래를 한다고 세탁장을 찾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내 편한 대로 떠올렸던 생각이 철저히 배신(?)당한 상황이 되고 보니 맥이 탁 풀린다. 그렇다고 남이 시작한 세탁물을 강제로 정지시켜 가면서까지 빼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잠시 흰 거품을 머금고 열심히 돌고 있는 세탁물의 모습을 물끄러미 세탁기 창틀 너머로 들여다보다가 마음을 다독이면서 수건들을 다음 세탁 순서에 기다리고 있도록 내 나름대로 배치해 놓은 후 방으로 돌아왔다.

아이 참! 소리가 절로 났던 항해 중의 어느 새벽 이야기이다.

빨래를 시도했던 이불

  

매일 아침마다 한 번씩 열리는 마른 부식 창고 내부의 모습



 ps: 배안에서는 자신들의 당직시간을 시작하기 전에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어 놓고 당직이 끝날 때 세탁이 끝난 세탁물을 거두어 가는 형태가 많기에 밤 당직을 서는 사람들의 세탁물로 인해 한밤중에도 세탁기는 돌아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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