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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09. 2019

부산, 또 하나의 내 고향

부산을 찾는 또 한 번의 기록을 더하며


 이제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하는 일을 상의받기 위해 부산을 찾아야 했다. 이른바 승선 전 미팅을 하기 위한 발걸음이다.

 

  비바람이 한 번씩 몰아치며 황사까지 나타났다는 서울을 떠나,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을 찾으려고 새벽에 집을 나선 발걸음에는 아직 걷히지 않은 어둠의 시간이 싸늘하니 머물러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침 여덟 시에 떠난다는 KTX가 정시에서 몇 분 늦게 떠나기는 했지만, 진짜 다행하게도 차창밖으론 가을 햇살이 가득히 찾아오기 시작하여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는 예감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에게 부산이란 도시는 제2의 고향으로 손가락 꼽아주는 곳이다. 굳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란 의미로 추가하게 되어 다시 순서가 밀리더라도 제3의 고향 안에는 꼭 들어가야 하는 도시이다. 그런 연유로 언제나 부산을 찾아오는 때에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회는 그 때마다 늘 제가끔의 다른 느낌을 품으며 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걸음에는 경부선의 종착역으로 나서면서, 항도 부산은 역사 내부가 훨씬 넓혀진 공간에다 찾아오고 가는 북적이는 인파를 품어주어 더욱 풍채를 키운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건만, 내 마음 한편에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로 맞이하고 배웅해주던 예전 어느 세월의 부산역 추억을 가늠하며 빠져나오든 정서를 쥐어주고 있었다.

 

 밤이면 WELCOME TO PUSAN이란 사인의 등불을 품에 품고 있는 역사 앞의 구조물 앞에 오후 들어 한가해진 시간 누군가 망중한을 즐기듯 앉아 있다.

 

 지하철 역에서 본 역 앞 광장으로 나서게 하는 지하철 부산역 8번 출입통로의 모습.

 

 부산역 앞 광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의 앞쪽 모습 

 

 역 앞 광장에 세워진 <생명이 출렁이는 부산> 기념비 뒤에 새겨진 <부산 찬미>이다. 

 

 이글이 쓰인 연대를 보건대 이미 내가 현직을 떠나야 했던 세월에 세워지고 쓰인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라도 내 살아온 내 직업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풀이를 주류로 이루고 있는 내용이라 여겨져서 절로 흐뭇한 심정에 한참이나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중앙동 회사 빌딩의 닦아내지 못한 먼지들로 흐려있는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지금은 없어진 부산항 옛 중앙부두 부근의 모습.

 

가깝게 보이는 바다를 매립하고 있는 곳은 옛 중앙부두가 있던 곳을 더욱 넓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인데 항구를 넓히는 게 아니라 녹지공간으로 임해 생태공원을 조성하려는 뜻이 있단다.

 

 옛 부산항 내항 방파제 양쪽에 우뚝 세워진 탑 같은 구조물은 왼쪽의 용당과 오른쪽의 영도를 이어 줄 긴 다리의 중심축이 될 교각 탑이다. 

 


 영도 쪽 사진 왼편 끝에 보이는 둥근 삼각형 모습의 섬이 <한국 해양대학>이 들어서 있는 조도(아치섬)이고 큰 배가 접안하고 있는 곳은 조선소이며 안테나가 뾰족이 보이는 것은 절영도의 봉래산이다. 그 산정 이름에 고갈산이라는 이름도 있었지만 그건 일제가 우리 지명을 폄하해내며 지어준 이름이란 말 때문에 나는 쓰기를 꺼리지만, 역사를 위해 기록하는 심정으로 적어 놓는다. 

 

 개인적으론 해양대학 합격 후 생각지도 못했던 내무 훈련이란 명칭의 입학허가 훈련 중 이 산을 오르기 위해 육중한 맷트를 짊어지고 올랐던 1961년 3월의 어느 날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왼쪽 교각 탑 쪽은 신선대 컨테이너 부두가 있는 용당 쪽이고 그 건너편인 오른쪽은 영도이다. 

 

  어김없는 세월 따라 가을 정감은 찾아와 있었다. 오고 가는 나그네의 심정에 아련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부산역 광장의 단풍 든 나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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