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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16. 2019

SAMARINDA 기항

입항수속을 진행하며

 도선사가 승선할 거라고 알려준 지점에 새벽 0시에 도착했으나 그 세 시간 전부터 애타게 불러왔던 도선사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결국 도선사가 승선하여 직접 석탄의 선적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박지로 향하는 일은 불가하게 되었기에 그냥 자력으로 조선하여 대리점이 알려준 투묘지 구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측심기로 읽어 보는 수심이 70여 미터로부터 시작하였지만,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어 이런 곳에서 선적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까? 의심을 품게 하지만 지금 나한테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사용하고 있는 해도라는 게 원본의 해도를 회사에서 복사하여 pdf화면으로 변환시켜서 본선에 이멜로 보내준 걸 누더기 옷 기우듯이 조각조각 붙여내어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레이더 화면상에 무수한 점들로 나타나고 있는, 불을 밝힌 배들 사이를 뚫고 안 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처지이다.


 대리점이 알려준 삼각형 모습의 투묘 허용 구역 내로 천천히 진입했다. 수심은 그제야 55미터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더 이상 얕아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마음을 다잡아 닻을 천천히 역전시켜 한 샤클을 내려준 상태로 투묘 준비를 명한다. 


 렛 고 앵카! 를 명했을 때 별로 큰 충격 없이 닻은 내려졌다.  준 심해 투묘 방식을 사용하며 닻을 내려 준 것이다.


 물결도 잔잔하고 바람 역시 없으니 닻이 끌린다던가 하는 식의 이상 상황을 빚어내는 일은 없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무사히 도착했음을 서로 기뻐하는 덕담을 나누며 그렇게 투묘 작업을 끝내었다.


 그렇게 새벽 1118시에 투묘 완료하고 보고 할 곳에 모두 알려 주고 기다리니 아침이 되어 들어온 이멜에서 오후에 수속이 올 것이란 연락이 들어 있다.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오후로 들어 설 무렵 하역 인부들의 한 떼가 먼저 들어왔고 이어서 대리 점원이 세관과 검역관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기세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수속 실로 들어서는 관리들의 태도를 보면서,


 -아! 이들은 오늘 좀 무리한 요구로 내 속을 끓이게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퍼뜩 찾아든다.


수속실로 안내되어 자리에 앉기 바쁘게 검역관이라는 친구가 왜 검역기를 올리지 않았느냐고 힐난하는 태도로 물으며 수속은 시작되었다.


 이것을 꼬투리 삼아 과도한 선물을 요구하려는 것이로구나. 감을 잡는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접대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꼭 기분 상하게 꼬투리 잡아 강압적 태도로 선물을 요구하는 그들의 행태에 은근히 약이 오른다.  예전 인도네시아 기항을 처음으로 했었던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만났던 순수하고 경우 바른 이웃과 같았던 이나라 관리들 모습이 떠 오르며 대조되니 더욱 이들 모습이 마음에 안 차는 모양 아다. 


 검역관이 언급한 통상 검역기라고 하는 노란색 깃발은 영문자 Q를 나타내는 문자 기이다. 이것을 올리면 그 올린 배가 검역을 항만당국에 요청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든 선박들이 외국에 입항하면 따로 있는 검역묘지에 투묘한 후 이 기를 꼭 올려서 검역을 신청하여야 했지만 요즘 같이 무선 검역으로 수속이 되는 상황의 선진국에서는 필요에 의한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거의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깃발인 것이다.


 유독 후진국을 자처하기나 하듯이 유난을 떨면서 이 깃발의 게양을 요구하는 관리를 가진 나라들은 중국의 일부 지방을 비롯하여 동남아의 모든 나라가 거의 다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검역기를 올리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는 관리의 태도를 보면 이들이 무엇인가 요구할 사항이 있다는 걸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차피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일을 진행함이 결과적으론 본선의 입항수속을 평온하게 끝내는 길이니, 큰 소리로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아니지만 온갖 욕설을 한데 몰아서 푸짐히 퍼부어 주면서도 최대의 공손한 태도로 수속을 진행한다.


 예상했던 대로 그가 원하는 것은 다른 항구보다는 좀 무리하게 많은 양의 접대품의 요구와, 아울러 BLUE BOOK이라 알려진 INDONESIA HEALTH BOOK의 교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책자가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나라만의 독특한 서류로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무료로 주던가, 최소한의 경비를 받는 선에서 배포해야 하는데 내 경험으로 봐서는 이 나라에 입국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책자로 보완되었다며 강제로 보급하며 돈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것도 적은 돈이 아닌 3~500달러의 금액을 징수하며 간단한 영수증을 주는데 그럴 때마다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칼자루 쥔 도둑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 웃는 얼굴로 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더 시끌벅적하니 머무르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 어느 정도 만족한 결과를 가지고 떠나갔다.


 그런 데 나 자신을 살펴볼 때, 1990년대에 보르네오 근해를 야간 항해 중에 해적-해상강도-을 만나 결박을 당하며 금품을 털려 본 기억을 가지게 된 후부터, 인도네시아에 기항하는 일 자체가 반갑지 않은 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조건 없이 짝사랑을 했던 이가 스스로 변하면서 지독한 배반을 보여주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온 모습에 서럽고  씁쓸한 여운을 받는 게 이런 마음일까? 싶은 것이다.


 지금도 <구담 가람>이라는 인도네시아 담배가 뜬금없이 생각날 때가 있다. 아주 독특한 향과 타닥타닥 타들어 가며 종종 튀는 작은 불꽃이 옷에 구멍을 내기도 하던 담배이다.


 그러나 입안으로 빨아들인 담배 연기가 칼칼해진 목구멍을 오히려 시원하게 쓰다듬어 주는 듯한 풍미를 주었기에 아주 순하고 상큼한 담배로 추억을 키우며 생활하던 그 시절은 이 나라를 사랑하든 마음이 최고조에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입항하면 처음으로 대해야 하는 수속관리들이 저지르는 몰염치한 행동으로 인해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현실에서 다시금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각없는 이런 관리들의 모습이 이 나라에서 사라지는 날이 빨리 와야 되겠고, 그런 때가 오게 되면 인도네시아는 부활한 신흥의 살기 좋은 당당한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다시금 해본다. 

 이렇듯이 그리되기를 간절히 빌어보는 마음은 예전의 이 나라를 사랑했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음 이럴라.  


 외항에서 투묘 중이지만 잔잔한 날씨는 마음을 조용하고 푸근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선적 작업은 본선의 크레인과 그랩으로 시행한다.

투묘 중인 본선의 옆에 와서 접안한 후 선적작업을 하는 바지선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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